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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6일 11시 31분 등록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었다. 대국을 적으로 하는 전쟁에서 이처럼 현격히 이질적인 행동과 사상의 습관을 고려해야 할 필연성에직면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미 1905년에 일본과 싸운 제정 러시아처럼 미국 역시 서양의 문화 전통에 속하지 않는 완전히 무장되고 훈련된 국민과 싸웠던 것이다. 일본인은 서양 여러 나라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전시관례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이 때문에 태평양에서의 전쟁은 섬 해안에서의 일련의 상륙 작전이나 병참술에 관한 극히 어려운 문제들보다도 그 이상의 것, 즉 적의 성질을 알 필요성이 더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적의 행동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적의 행동을 이해해야 했다. 9

이 책은 일본인의 종교나 경제 생활, 정치 혹은 가족 등 어느 특정 일면만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생활 방식에 관한 일본인의 가정을 검토하는 책이다. 당면한 활동이 어떠한 것이든 그 속에 이러한 가정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기술한다. 이 책은 일본을 일본인의 나라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룬 책이다. 23 

그래서 이 책은 일본에서 예기되고 당연한 것으로 보여지는 습관에 관해 기술한 것이다. 일본인은 어떤 경우에 예의를 지키고 또 지키지 않는가, 어떤 경우에 수치를 느끼고, 당혹감을 느끼며, 자기 자신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가 등에 관해 기술하였다. 이 책에 기술된 사항의 이상적 전거는 이른바 서민일 것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각각 특수한 경우에 행한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나 그러한 조건 아래서는 그러한 행위가 행해진다고 인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구의 목표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상과 행동의 태도를 기술하는 데에 있다. 설령 이 책이 거기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여하튼 그렇게 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26

일본이 이번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전제 자체가 미국과는 정반대였다. 일본은 국제 정세를 다른 방법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추축국의 침략 행위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일본, 이탈리아, 독일 3국이 부당한 정복 행위로 국제 평화를 침해했다. 추축국이 권력을 쥔곳이 만주국이든 에티오피아든 폴란드든 그것은 그들이 약소 민족을 억압하는 사악한 길로 나아갔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공존 공영', 또는 적어도 자유 기업을 위한 '문호 개방'이라는 국제간의 규약에 대해 죄를 범한 것이다. 32

반면 일본은 전쟁의 원인을 이와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 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내의 통일과 평화를 달성하였고, 폭도를 진압하였으며, 도로, 전력, 철강 산업 등을 건설하였고, 또 공표된 숫자에 의하면 공립 학교에서는 청소년의 99.5퍼센트가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전제에 따라서 뒤처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쫓아내서 '자기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일정한 위치가 주어져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와 같이 계층 제도에 높은 가치를 둔 것이 일본 문화에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일본이 만들어 내기에 알맞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일본에게 불행한 일은 일본 점령하게 있었던 나라들이 대동아의 이상을 일본과 같은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까지도 일본은 대동아의 이상이 도덕적으로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일본인 포로 중에 주론적 색채가 가장 희박한 자들까지도, 대륙과 서남 태평양에서의 일본의 목적을 전혀 규탄하지 않았다. 아마도 앞으로 오랫동안 일본은 이 본래 태도를 계속 간직해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계층 제도에 대한 신앙과 신뢰이다. 그것은 평등을 사랑하는 미국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층 제도라는 것으로 일본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또 그제도에 어떠한 장점이 있다고 여기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았다. 33

미국이 시종일관 물량의 증대에 전력을 기울인 것처럼 일본은 비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는 데 시종일관하였다. 일본도 미국처럼 생산 증강 운동을 일으켜야 했지만, 그 운동은 일본의 독특한 전제 위에 바탕을 두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정신은 전부이며 영구 불멸한 것이다. 물질적인 사물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들은 이차적일 뿐 영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라디오는 자주 '물적 자원에는 한도가 있다. 물질적인 사물이 천년도 가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라고 외쳤다. 35

일본인의 태도에 관한 문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황 폐하에 대한 그들의 태도이다. 천황은 신하에게 대체 어느 정도의 지배벽을 갖는 것일까? 미국의 몇몇 권위 있는 학자들은 천황은 일본의 봉건 시대 700년 기간을 통해 그림자와 같은 존재, 단지 이름만의 국가 원수에 불과했다고 지적하였다. 각자가 충절을 바치는 상대는 직접적으로 그의 영주, 즉 다이묘였고, 긔 위로는 군사상의 대원수인 쇼군이 있었다. 따라서 천황에 대한 충성은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황은 고립된 궁정에 유폐되어 있었고, 궁정의 의식이나 행사도 쇼군이 정한 규정에 의해 엄중한 제한을 받았다. 때문에 아무리 신분이 높은 영주라 할지라도 천황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쇼군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일반 민중에게 천황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다. 

일본은 해부한 미국 학자들은 일본의 역사를 통해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현재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로 가까운 시대에, 가까스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천황이 어떻게 일본 같은 보수적인 국민의 참된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단 말인가? 일본의 정치 평론가들은 되풀이해서 천황이 그 신하에 대해 갖는 불후의 지배력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과장된 말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그토록 힘주어 주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근거의 빈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전시 정책이 천황을 미온적으로 처리할 필요는 전혀없다. 차라리 일본이 최근에 이르러 조작해 낸 사악한 지도자 관념에 대해 우리는 가장 맹렬한 공격의 칼날을 겨누어야 할 필요가 있다. 천황이야말로 인본의 근대 국가적인 신토의 심장이므로 만약 우리가 천황의 신성성의 밑바탕을 파헤쳐 여기에 도전한다면, 적국 일본의 모든 기구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43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천황을 비판을 초월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회의적인 조사와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미국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패전 때에 천황 비판의 초월성이 일본의 목소리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46

천황에 대한 이러한 무조건, 무제한의 충성은 천황 이외의 다른 모든인물과 집단에게는 여러 가지 비판이 가해진다는 사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본의 신문이나 잡지, 포로의 증언에서도 정부나 군 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볼 수 있다. 포로들은 그들의 현지 지휘관, 특히 부하병사들과 위험이나 고난을 함께 하지 않은 자들을 극력히 매도하였다. 그들은 특히 최후까지 싸웠던 휘하 부대를 버리고 비행기로 도망친 지휘관을 비난하였다. 그들은 보통 어떤 사관은 비난하고 또 어떤 사관은 칭찬하였다. 그들이 일본에 관한 일에 선과 악을 식별하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증거란 전혀 없었다. 일본 국내에서도 신문이나 잡지는 '정부'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더 강력한 지도력과 더 긴밀한 전쟁 노력의 조정을 요구하였고, 정부가 그러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비난하기조차 하였다. 48

미국인은 모든 구조 활동에서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 대한 모든 원조에 감동한다. 용감한 행위는 만일 그것이 '부상당한' 사람을 구한다면 한층 더 영웅적인 행위가 된다. 일본인의 용기는 그러한 구조 활동을 배척한다. 우리의 B-29기나 전투기에 비치된 구명 도구조차도 일본인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문도 라디오도 되풀이하여 이 사실을 화제에 올렸다.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태연히 감수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이지, 위험 예방책을 취하는 것은 경멸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태도는 부상병이나 말라리아 환자의 경우에도 나타났다. 그러한 군인은 말하자면 파손된 폐물이었다. 그 때문에 의료 시설은 극도로 불충분하며, 심지어 적당한 전투력 유지에조차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분야의 보급나 때문에 의료 설비의 부족은 극도로 심해졌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인의 물질주의에 대한 경멸이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일본군들은 죽음 그 자체가 정신의 승리이며, 우리 미국인같이 환자를 충분히 간호하는 것은 전투기의 구명 도구처럼 영웅적행위를 해치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51

일본인의 병력 소모의 이론을 가장 극단까지 이르게 한 것은 그들의 무항복주의였다. 서양의 군인들은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 중과부적이란 점을 알면 항복을 한다. 그들은 항복한 뒤에도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항복한 뒤에더 여전히 자기들을 명예로운 군인이라 생각하며, 그들이 살아 있음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명단이 본국으로 통지된다. 그들은 군인으로서도 국민으로서도 또 그들 자신의 가정에서도 모욕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경우 일본인은 사태를 전혀 다른 식으로 규정한다. 일본인에게 명예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 절망적 상황에 몰렸을 때에는 일본군은 최후의 수류탄 하나로 자살하든가, 무기 없이 적진으로 돌격하여 집단적 자살을 하든가 해야지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 만일 부상당했다든가 기절하여 포로가 된 경우조차도 그는 "일본에 돌아가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명예를 잃었다. 그 이런의 생활에서 본다면 그는 '죽은 자'였다. 53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take one's proper station)"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에 관한 일본인의 견해를 알아야 한다. 질서와 계층 제도에 대한 그들의 신뢰와,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리의 신념은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가 계층 제도를 하나의 가능한 사회 기구로서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계층 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야말로 인간 상호 관계 및 인간과 국가의 관계에 관해 일본인이 품고 있는 관념 전체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 국가, 종교, 경제 생활 등과 같은 국민적 제도를 살펴봄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인생관을 이해할 수가 있다. 59

몰론 서로간에 그렇게 형식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도 있다. 미국에서 그것은 자기 가족권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권 안으로 돌아오면 형식적인 예의는 일체 벗어 버린다. 그런데 일본에서 예의범절을 배우며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이행되는 것이 바로 가정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다닐 때부터 자기 손으로 아이 머리를 눌러 고개 숙여 절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아장아장 걷게 되면, 처음으로 아버지나 형에게 존경을 표하는 행위를 가르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식은 아버지에게, 동생은 형에게, 여자아이는 연령에 관계없이 남자 형제 모두에게 머리를 수그린다. 그것은 결코 내용 없는 몸짓이 아니다. 그것은 머리를 수그리는 사람이, 사실은 자기 뜻대로 처리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상대방이 자기 뜻대로 행동할 권리를 승인하는 것이며, 절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그 지위에 당연히 돌아가는 어떤 책임을 승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는 성별과 세대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 제도가 가정 생활의 근간이다. 65

어떤 사람의 계층 제도 속에서의 위치는 나이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일본의 부인은 남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사회적 지위도 남편보다 낮다. 때때로 양장을 했을 경우는 남편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혹은 대문을 나설 때 남편보다 앞서 나가는 부인일지라도, 일단 기모노로 갈아입으면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가정에서 딸들은 선물이나 사람들의 보살핌, 교육비 등이 모두 남자 형제에게로 돌아가는 거을 얌전하게 방관할 수 밖에 없다. 젊은 여성들을 위한 고등 교육 학교가 설립되었을 때도 거기에 규정된 교육 과정에는 예의 범절이 중시되었다. 본격적인 지적 교육은 도저히 남자들의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현재 이러한 학교의 한 교장이 상층 계급 출신 여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유럽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여학생들이 결혼하여 남편의 장서에 앉은 먼지를 턴 후 위아래가 바뀌지 않게 책장 안에 넣을 수 있도록 바라는 데 있었다. 71

천황이 정치적으로는 무력하였고, 이른바 '대원수의 국사범 같았던 존재'였을 때에도, 일본인의 정의에 따르면 계층 제도에 훌륭하게 '알맞은 위치'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천황이 속세의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적어도 천황의 신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 교토에 있는 그의 궁정은 일본인이 몇 세기 동안의 긴 세월에 걸쳐 세이이다이쇼군의 지배 시기를 일관해서 중요하게 지켜져 내려온 가치였다. 천황의 직능은 서구의 관점에서 보면 무용한 것으로 비치지만, 모든 점에서 계층적 역할이 엄밀한 정의에 습관화된 일본인은 그거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89

그러면 이토록 철저하고 평판 나쁜 개혁을 단행한 '정부'는 대체 누구였는가? 그것은 특수한 일본의 여러 제도가 이미 봉건 시대부터 육성시켜 온 하층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계습의 '특수한 연합' 세력이었다. 즉 그들은 다이묘의 어용인으로서 또 가로로서 정치적 수완을 익혀 공상업, 직물업, 판지제조 등 번의 독점 사업을 경영해 온 사무라이들과, 사무라이의 신분을 사서 사무라이 계급 속에 생산 기술의 지식을 보급시킨 상인들이었다. 사무라이와 상인의 동맹이 메이지 정부의 정책을 작성하고 그 실행을 계획한, 유능하고도 자신에 가득 찬 위정자들을 급속히 무대 앞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은 이 정치가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가에 있지 않고,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유능하면서도 현실주의적일 수가 있었는가에 있다. 19세기 전반에 겨우 중세에서 벗어난, 오늘날 태국 정도의 약소국이었던 일본이, 어느 나라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필요로 하는, 더군다나 놀라운 성공을 거둔 메이지유신이라는 대사업을 계획하고 수행할 능력을 가진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한 것이다. 이들 지도자들의 장점은 물론 또 그 단점까지도 전통적인 일본인의 성격에 깊이 뿌리 박힌 것이었다. 그 성격은 무엇이었고, 또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목적이다. 100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결코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취급하였다. 그을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목표란 일본을 세계 열강 대열에 서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상 파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봉건 계급을 욕하지도 않았고 무일푼의 상태로 몰아넣지도 않았으며, 이들에게 많은 질록을 주어 그 미끼로 메이지 정부를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으로 농민의 처우를 개선하였다. 101

메이지의 정치가들은 종교 분야에서 정치에 비해 훨씬 기묘한 형식적 제도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들은 마찬가지로 일본의 좌우명을 실천한 것이었다. 국가는, 특히 국민적 통일과 우월의 상징을 선양시키는 종교는 국가 관할에 속하게 되고, 다른 모든 종교는 개인 신앙의 자유에 맡겼다. 국가의 통제를 받는 영역이 바로 국가신토이다. 국가신토는 미국에서 국기에 대해 경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국민적 상징에 정당한 경의를 표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므로 일본은 서양의 신앙의 자유 원칙에 조금도 저촉됨이 없이 모든 국민에게 국가신토를 요구할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미국에서 성조기에 대해 경례를 요구하는 것이 조금도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단순한 충성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종교가 아니기'때문에 서양인의 비난을 받을 염려도 없이 일본인은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칠 수가 있었다. 국가신토는 학교에서는 신화 시대 이래의 일본 역사와 '만세일계의 통치자'인 천황의 숭배로 되어있었다. 국가신토는 국가에 의해 지지되고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다. 110

산업적 발전의 분야에서도 일본은 서구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길을 걸었다. 여기에서도 '각하'들이 계략을 세우고 순서를 정하였다. 그들은 계획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산업을 정부 돈으로 건설하고 자금을 공급하였다. 정부 관료가 그것을 조직하고 운영하였다. 외국의 기사를 초빙하고 일본인을 해외에 파견하였다. 그 후 이러한 산업에 대해 정부는 '조직을 정비하여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신장함에 따라", 그것을 민간 회사에 불하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산업을 선택된 소수의 자본가, 특히 미쓰이나 미쓰비시 같은 저명한 재벌에게 '형편없이 싼값'에 팔아 넘겼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산업개발이란 일본어 너무나 중요한 사업이므로, 수요 공급의 법칙이나 자유 기업의 원칙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결코 사회주의적 신조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결국 톡톡히 재미를 본것은 재벌들이었다. 일본이 이룩한 것은 실수와 헛된 소모를 최소한도로 줄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산업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116

일본인은 그들 스스로에게 요그한 일을 다른 나라에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들은 '각자 알맞은 지위를 받아들이는' 일본의 도덕 체계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다른 나라들에는 그러한 도덕률이 없었다. 그것은 특림없는 일본만의 산물인 것이다. 일본의 저술가들은 이 윤리 체계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기술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앞서 먼저 그 도덕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 121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이 지고 있는 모든 채무를 나타내는 '오블리게이션(obligation: 의무)'에 해당하는 일본말은 온恩이다. 

온의 여러 가지 용법 전보를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짋어질 수 있는 부담, 채무, 무거운 짐이다. 사람은 윗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다. 그리고 윗사람이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자기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온을 받는 행위는 불쾌한 열등감을 준다. 일본인이 "나는 누구에게서 온을 입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누구에 대하여 의무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들은 채권자나 은혜 입힌 사람을 그들의 온진恩人이라고 부른다. 125

온은 최우선이며 최대의 채무, 즉 '천황의 온'에 대해서 사용되는 경우에는 항상 무한한 헌신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천황에 대한 채무로서 사람들은 황은을 무한한 감사고 받아들인다. 일본인은 이 땅에서 태어나 이렇게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자기 신변의 크고 작은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기뻐할 때에는, 언제나 이것들은 모두 어떤 한 사람으로부터 주어진 은혜라고 느낀다. 일본 역사의 모든  시기를 통해 일본인들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그들이 소속하는 세계의 최고 윗사람이었다. 그것은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지방 영주, 봉건 영주, 쇼군 등으로 변하였다. 오늘날엔 그것이 천황이다. 그러나 위사람이 누구인가보다 중대한 의의를 지닌 것은 몇 세기에 걸쳐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의 습성 속에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27

일본의 거리에서 무슨 사고가 일어났을 때 모인 군중들이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발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 아닌 사사로운 사람이 제멋대로 참견을 하면 그 행위가 그 사람에게 온을 입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메이지 이전의 가장 유명한 법령의 하나에 "싸움이나 말다툼이 났을 때, 불필요한 참견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 분명한 권한이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은 무언가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받게 된다. 도움을 베풀면 상대가 크게 은혜를 입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이 좋은 기회를 이용할 법도 한데, 반대로 원조를 베풀지 않으려 애써 조심한다. 더욱이 형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경우 일본인은 온에 휩쓸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제까지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사람으로부터 단지 담배 한 개비 얻어 피워도 일본인은 마음이 편치 않다. 131

일본 효행의 특징인 가족 구성원간에 나타나는 뚜렷한 원한은, 효행과 동등하게 기무라고 여겨지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의무인 천황에 대한 충절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일본의 정치가들이 천황을 신성한 수장으로 받들고, 세속적 생활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는 계획을 세운 것은 정말로 타당한 조처였다. 일본에서 천황은 전국민을 통하여 반감 없이 국강에 봉사하도록 하는 수단으로서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천황을 국민의 아버지로 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였다. 왜냐하면 가정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모든 의무를 다하여 은혜를 갚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존경받을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천황은 일체의 세속적 고려에서 떠난 신성한 주장이어야 했다. 일본인 최고의 덕인 천황에 대한 중절, 즉 주忠는 속세와의 접촉에 의하여 더렵혀지지않는 하나의 환상적인 '선량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받들어야 한다. 156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세계는 이 주忠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 사실을 목격하였다. 일본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많은 서구인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아시아 대륙과 태평양 여러 섬 곳곳에 산재한 일본군들이 순순히 무기를 버리리라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일본군의 대부분은 아직 국지적 패배를 당하지 않았고, 그들은 나름대로 전쟁 목적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 본토의 여러 섬도 최후까지 완강히 항전하는 군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따라서 점령군은 전위 부대가 소부대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함포의 사정권을 넘어서 진격할 경우에는 전부 살육당할 위험이 있다. 전쟁중 일본인은 어떠한 대담한 일이라도 태연히 해치우지 않았던가! 그들은 호전적인 국민이다.

이와 같이 일본을 분석하고 있던 미국인은 주忠를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던 것이다.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되기 전에 완강한 반대자들이 궁성 주위에 비상선을 쳐서 정전 선언을 저지하려 하였다. 그런데 그 선언이 일단 읽혀진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그것에 승복하였다. 만주나 자바의 현지 사령관도, 일본에 있던 도조도, 누구 하나 그것을 거역하려 하지 않았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했던 것이다. 1주일 전까지는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기 위해서 죽창으로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이와 같은 태도에는 조금도 이상한 점이 없다. 그것을 뜻밖이라고 느낀 것은 인간의 행위를 좌우하는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인정할 수 없었던 서구인뿐이었다. 163

기무義務란 어떤 사람에게 그것이 아무리 곤란한 요구라 하더라도 적어도 가까운 혈육이나 조국, 그의 생활 양식, 애국심의 상징인 천황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이다. 그것은 출생과 동시에 맺어지는 강력한 고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현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것에 복종키 위해 해야만 하는 특정한 행위가 아무리 마음내키지 않는 것일지라도, 결코 기무가 '본의 아니게'라고 정의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리義理를 갚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 많다. 채무자로서의 여러 가지 곤란은 기리의 세계에 있어 극한에 달한다. 166

기리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종류로 나누어진다. 여기에서 '세상에 대한'-문자 그대로는 '기리를 갚는 것'-이라 부르는 것은 동년배에게 온을 갚은 의무이고, '이름에 대한 기리'라 부르는것은 대체로 독일인의 '명예'와 같은 것으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이 어떤 비난에의해 더렵혀지지 않도록 하는 의무이다. 기무는 태어나자마자 생기는 친밀한 의무의 수행이라고 느껴지는 데 비하여, 세상에 대한 기리는 개략적으로 말하면 계약 관계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167

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의무이다. 그것은 일련의 여려 가지 덕으로 되어 있다. 그 덕 가운데 어떤 것은 서양인에게는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일본인 입장에서보면 그것들은 어떤 것이든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갚음이 아니라는 점, 즉 '온의 범위 밖'에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일관성을 지닌다. 그것은 이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특정한 은의에 구애됨이 없이 자기의 명성을 빛내는 여러 가지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분수에 맞는 위치'가 요구하는 잡다한 모든 예절을 계속 지키고, 고통에 임해서는 태연 자약한 태도를 나타내며, 전문 직업이나 기능에서는 자기의 명성을 옹호하는 일을 포함한다. 179

일본인은 실패로 인해 치욕을 당하는 기회를 피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 모욕받은 오면을 씻는 의무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이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될 수 있는 한 모욕을 느끼는 기회가 적도록 일을 처리하게 한다. 이 점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오명을 씻는 데 중점을 두는 태평양 여러 섬의 많은 부족과 비교할 때 뚜렷하게 다른 점이다. 193

일본인은 실패나 비방, 배척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 따라서 타인을 괴롭히기보다는 너무도 쉽게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많다. 최근 수십년간 일본 소설 중에는 교양 있는 일본인이 빈번히 자아를 잃고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극단적인 우울에 빠져들기도 하는 모습이 거듭 묘사되고 있다. 이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권태를 느낀다. 매일의 생활에 싫증나고 가정에 싫증나고 도시에 싫증나고 시골에 싫증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마음에 그려져 있는 위대한 목표에 비하면 일체의 다른 노력들이 시시하게 보이는, 저 높은 이상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권태는 아니다. 즉, 그것은 현실과 이상간의 너무 큰 차이에서 생기는 권태가 아닌 것이다. 일본인은 중대한 사명을 꿈꿀 때 권태를 잊는다. 그들은 그 목표가 아무리 원대한 것일지라도 완전히 자취도 없이 권태를 잊어버린다. 202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만일 적절한 방법으로 행해지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판을 회복하는 구실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하여 절망에의 자포자기적인 굴복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해지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어떤 경우에 자살은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 방식이 된다. 설날에 빚을 갚지 못해 자살하는 채무자, 어떤 불운한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살하는 관리, 끝내 이루지 못할 연애를 동반 자살에 의해 성취하는 연인, 정부의 대중국 전쟁 지연 정책에 죽음으로써 항의하는 지사 등은 모두 시험에 낙제한 학생이나 포로가 되는 것을 피하는 병사와 마찬가지로 최후의 폭력을 자기 자신에게 가하고 있는 것이다. 204

일본인의 영원 불변의 목표는 명예이다. 타인에게 존경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목적을 위하여 쓰여지는 수단은 그때의 사정에 따라 취해지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도구들일 뿐이다. 사태가 변하면 일본인은 태도의 변경을 서구인처럼 도덕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210

극단적인 의무의 변제와 철저한 자기 포기를 요구하는 일본의 도덕률은, 당연히 개인적 용망은 인간의 가슴속에서 제거해야 할 죄악이라고 낙인찍을 것같이 생각된다. 전통적인 불교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도덕률이 그처럼 관대하게 오관의 쾌락을 허용하고 있는 이중성은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일본은 세계 유수의 불교 국가 가운데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그 윤리는 이런 점에서 석가 및 불교 경전의 가름침과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존인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죄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청교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육체적 쾌락을 좋은 것, 함양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쾌락은 추구되고 존경받는다. 그렇지만 쾌락은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물게 해두어야 한다. 쾌락은 인생의 중대한 사항의 역역을 침입해서는 안된다. 217

일본인의 인생관은 그들의 주忠, 고孝, 기리義理, 진仁, 인정人情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는 그대로이다. 그들은 '인간의 의무 전체'가, 마치 지도위의 여러 지역처럼 명확하게 구별된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생이 '주의 세계', '고의 세계', '기리의 세계', '진의 세계', '인정의 세계', 그 밖의 많은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표현한다. 저마다의 세계는 각각 특유하고 세밀하게 규정된 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완전한 인격의 소유자로 판단하지 않고, '고를 모른다'든지, '기리를 모른다'든지 하는 말로 판단한다. 239

'성실'이 미국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이 말은 모든 일본어 문헌에서 주의해야 할, 극히 유용한 말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로 표현되고 있는 사항은 언제나 일본인이 실제로 중점을 두고 있는 적극적인 덕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마코토는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 인간을 칭찬하는 말로서 끊임없이 사용된다. 이 사실은 일본인의 윤리가 이윤의 추구를 매우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이윤은 부당한 착취의 결과라고 판단된다.

또 마코토는 항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을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이것은 일본인의 자기 수양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 성실하다고 여겨지는 일본인은 싸움을 걸 생각이 없는 사람을 모욕하게 될 만한 위험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은 행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물론 행위의 파생적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본인의 신조를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코토가 있는 사람만이 '사람들의 머리에 서서', 그 수완을 유효하게 활용하고 심리적 갈등을 벗어날 수가 있다. 267

일본인의 생활에서 수치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치를 심각하게 느끼는 부족 또는 국민이 모두 그러하듯이, 각자가 자기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마음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다만 타인이 어떤 판단을 내릴까 하는 것을 추측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 방침을 정한다. 모두가 같은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여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은 쾌활하고 편하게 행동할 수가 있다. 그들은 그것이 일본의 '사명'을 수행하는 길이라고 느끼는 경우에는 게임에 열중할 수가 있다. 그들이 가장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것은 그들의 덕을 일본 특유의 선행 도표가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 외국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때였다. 그들은 '선의'에 의거한 '대동아'의 사명에 실패했는데, 중국인이나 필리핀인이 그들에게 취한 태도에 대하여 많은 일본인이 느낀 분노는 거짓 없는 감정이었다. 275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육체와 저신이 대립된다는 교의이다. 요가 수행은 욕망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욕망은 육체 속에 머문다. 그런데 일본인은 이런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인정'은 악마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관능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은 생활의 지혜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유일한 조건은 관능은 인생의 중대한 의무 앞에서는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291

일본인의 양육 방법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생활 곡선은 미국의 생활 곡선과 정바대로 되어 있다. 그것은 저변이 얕은 큰 U자형 곡선으로 갓난아이와 노인에게 최대의 자유와 제멋대로 구는 것이 허락된다.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구속이 커지고 바로 결혼 전후의 시기에 이르면 자신의 자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최저선에 달한다. 이 최저선은 장년기를 통하여 몇십년 계속되는데, 그 후 곡선은 다시 점차로 상승하여 60세가 지나면 유아와 거의 마찬가지로 수치나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 곡선이 정반대이다. 갓난아이 때에는 엄한 교육을 하지만 아이의 체력이 성장함에 따라 차츰 완화되어, 드디어 직업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자력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나이가 되면 거의 타인의 간섭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리의 경우에는 장년기가 자유와 자발성의 정점이 된다. 나이가 들고 늙어서 기력이 쇠하거나 남의 신세를 지게 되면 다시 구속의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국인에게는 일본인과 같은 형으로 조직된 생활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와 같은 일생은 우리에게는 전혀 사실과 상반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310

종래 모든 서구인이 묘사한 일본인의 성격적 모순은 일본인이 아이를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납득이 간다. 그것은 일본인의 인생관에 그 어떤 측면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원성을 가져다 준다. 그들은 유아기의 특권과 마음 편하던 경험에 의하여 그 후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에도 다시금 '부끄러움을 몰랐던'때의 편한 생활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미래에 천국을 그릴 필요가 없다. 그들은 과거에 천국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인간은 본디 선하고 신들은 자애로우며 일본인이라는 사실은 비할바 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유년 시대를 다른말로 표현한 것이다. 유아기의 경험은 모든 인간 속엔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다든가 인간은 누구든 죽음과 동시에 가미神가 된다고 하는 극단적인 윤리 해석의 바탕이 된다. 그것은 그들에게 자신의 말을 끝까지 주장하는 경향과 일의 자신감을 부여한다. 그것은 가끔 비록 그것이 그들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어려운 일인 경우에도, 앞장서서 부딪쳐 나가는 태도의 기초가 되고 있다. 348

이러한 그들의 정신적 자유를 증대할 수 있는 과도기에 처하여, 일본인은 두세 가지의 오랜 전통적 덕에 의지하여 평형을 잃지 않고 무사히 거센 파도를 넘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그들이 '몸에서 나온 녹'은 그들 자신이 처리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자기 책임의 태도이다. 이 비유는 자신의 신체와 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칼을 찬 인간에게 칼이 녹슬지 않고 번쩍이게 할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각자 자기의 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약점, 지속성의 결여, 실패 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를 승인하고 받아들여야한다. 일본에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은 자유로운 미국에서보다도 훨씬 철저하게 해석된다. 이러한 일본적인 의미에서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이상적이며 훌륭히 자기 행위에 책임을 지는 인간의 비유이다. 개인의 자유를 존종하는 시대에서 이 덕은 가장 훌륭한 평형의 역할을 한다. 더구나 이 덕은 일본 아이들의 훈육과 행위의 철학을 통해 일본 정신의 일부로서 일본인의 마음에 심어 온 덕이다. 오늘날 일본은 서구적 의미에서 '칼을 버리고 항복할' 것을 제의하였다. 그런데 일본적인 의미에서 일본인은 여전히 자칫하면 녹이 슬기 쉬운 마음속의 칼을 녹슬지 않게 하는 일에 마음을 쓰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어법에 의하면, 칼은 더욱 자유롭고 더욱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그들이 보존할 수 있는 상징인 것이다. 360

일본이 평화 국가로 출발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참된 장점은, 어떤 행동 방침에 대해 "실패로 끝났다"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한다는 점에 있다. 일본인은 양자 택일적인 윤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전쟁에 의해 '알맞은 위치'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들은 이제 그 방침을 포기할 수가 있다. 여캐꼇 받아 온 일체의 훈련이 그들을 방향 전환에 응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371

일본인은 침략 전쟁을 하나의 오류 및 실패한 주장으로 간주함으로써 사회적 변혁을 향한 최초의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평화로운 나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지위를 회복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평화가 실현되어야 한다. 만일 러시아와 미국이 앞으로 몇 년간 공격을 위한 군비 확충 속에 세월을 보낸다면, 일본은 그 군사 지식을 이용하여 그 전쟁에 참가하리라. 그러나 그러한 확실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는 결코 일본이 본래 평화 국가로 될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일본의 행동 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일 사정이 허락되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인류학은 인간의 행동을 관찰한다. 인류학은 행동과학인 것이다. 따라서 수많은 인류학자들이 인구가 많은 곳보다는 한 족속이나 민족의 숫자가 통틀어 몇백 명, 몇천 명쯤 되는 곳을 찾아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인류학자들은 역사에서 낙오, 소외된 민족들을 연구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를 연구했다. 386

이것은 미 국무성에서 베네딕트에게 요청을 해 쓰여지게 되었다. 당시 일본과 전쟁중이던 미국은 미국인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의 행동을 연구하고자 했다.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독특한 행동, 가치관을 그들의 입장에서 올바로 이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394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는 생각에서다.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그렇게 예의바르고 착하고 겸손하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일본 사람들 속에 무서운 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을 통해 일본사람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396

일본과 미국을 비교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베네딕트는 동양적인 것, 일본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했다. 또한 그 나름대로의리, 은혜 사상, 충의 개념이라든지 특히 의리 중에서도이름에 대한 의리, 친구와 사회에 대한 의리에 대한 복잡하고 댜양한 것을 이해하려고 매우 노력했다.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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