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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17시 29분 등록
 [월든]

- 자연의 예찬과 문명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긴 불멸의 책

(헨리 데이빗 소로우 / 강승영 역 / 이레, 1993)


* 저자에 대하여

1817년 7월 12일,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소로우는 생전에 자신의 저술로 어떤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월든>은 19세기 쓰여진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수감되었던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그의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요즘에 와서는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환경의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1862년 5월 6일, 폐결핵으로 4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845년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수로 와서, 소박하고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통하여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새로운 삶을 실험했다. 손수 통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2년 이상을 이 호숫가의 숲 속에 사는 동안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으며, 불후의 명작이 될 <월든>의 핵심 부분을 썼다.

그의 글은 도서관에 곱게 모셔진 채 현대의 독자로부터 외면당하는 사장된 글이 아니라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면서 그들을 꾸짖고 충고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가슴에 무한한 감동을 주기도 하는 살아 있는 글인 것이다.


** 소로우 연보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출생.

1833년 (16세) 하버드 대학 입학.

1837년 (20세) 하버드 대학 졸업. 잠시 콩코드에서 교사생활. <일기> 쓰기 시작.

1838년 (21세) 형과 함께 진보적 학교 설립, 운영. 성공적인 반응

1839년 (22세) 형과 함께 한 보트 여행,

               후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의 토대가 됨

1840년 (23세) 엘렌 슈엘에게 청혼, 그녀 부모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음

1841년 (24세) 형의 건강악화로 잘 운영되고 있던 학교 폐교.

               에머슨 저택에 관리인으로 들어감

1842년 (25세) 형 사망. 너대니얼 호손, 콩코드로 이사옴.

1843년 (26세) 에머슨이 편집하는 <다이얼>잡지에 수필 기고.

1845년 (28세) 월든 호숫가 살기 시작.

1846년 (29세) 멕시코 전쟁 발발.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 반대로 인두세 납부 거부, 하루 동안 감옥 수감됨.

               메인 주의 산악 지역으로 캠핑, 사후 <메인 주의 숲>의 토대가 됨

1847년 (30세) 월든 생활 끝냄. 장기간 유럽 여행을 떠나는 에머슨의 저택 관리인이 됨.

1848년 (31세) 감옥 수감 사건에 대해 ‘시민 불복종’ 강연.

1849년 (32세) <시민 불복종>이 잡지<미학>에 실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자비출판하나 반응 별로임

1851년 (34세) 측량으로 바쁨. 인근 마을에서 강연

1853년 (36세) <캐나다의 양키>의 일부분이 잡지<푸트남>에 발표됨

1854년 (37세) <월든> 초판 출간

1855년 (38세) <케이프코드>의 일부 잡지<푸트남>에 발표됨. 건강 악화되기 시작함.

1856년 (39세) 시인 월트 휘트먼 만남.

1857년 (40세)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 만남.

1859년 (42세) ‘존 브라운을 위한 탄원’ 연설. 같은 해 책으로 출간

1860년 (43세) ‘야생사과’ 강연(후일 책으로 출간).

               링컨 대통령 당선. 독감이 기관지염으로 악화됨.

1861년 (44세) 남북전쟁 발발. 폐결핵 판명됨.

1862년 (45세) 5월 6일 콩코드에서 사망.


***초월론 [ Transcendentalism , 超越論 ]

초절론(超絶論)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철학자, 기타의 문필가들에 의해 'Transcendental Club'이라는 것이 1836년 결성되었는데 그 그룹의 주장을 초월론이라고 한다. 그 대표자는 에머슨, 리플리(George Ripley, 1802~1880),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등으로, 주로 쁘띠 부르주아적 입장이었다. 'transcendental'(칸트의 용어, 선험적이란 뜻)이란 명칭도 칸트와의 연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그 주장은 플라톤, 영국의 칼라일, 프랑스의 루소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

사회관에서는 자본주의를 낭만주의의 한 경향, 즉 회고적인 입장에서 비판하고 개인의 도덕적 완성을 주장하며 자연에 친밀해질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미국의 흑인노예제에 대해서 반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들의 사상은 쁘띠 부르주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며, 대표자의 하나인 리플리는 푸리에의 설에 기초한 집단 거주지 'Brook Farm'을 만들기도 하였다(1841~1847). [출처 철학사전, 임석진 외 편저, 2009, 중원문화]


****초월주의 [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 

-19세기에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의 입장.

초절주의(超絶主義)라고도 한다. 1830년대부터 본격화된 산업혁명과 서진운동(西進運動)을 배경으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 미국의 전환기를 토양으로 해서 무한한 세계에의 동경을 웅변으로 훌륭히 정착시켰다.

36년 R.W.에머슨이 《자연론(自然論)》을 출간하여 새로운 시대의 신념으로 고전적인 표현을 부여하였다. 같은 해 보스턴에서 ‘초월주의자 클럽’이 결성된 것을 계기로 속칭 ‘콩코드 그룹’이 이 입장에 찬동하는 사람들과 F.W.J.셸링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F.헤지를 중심으로 모였다.

이 청년들은 기관지《다이얼》을 발간하고, 브루크 농장을 경영하는 등 새시대의 선구로서 눈부신 활동을 전개하였다. T.파커, 헤지, 풀러, H.D.소로, A.B.올코트 등을 주축으로 그들은 제각기 뛰어난 개성을 갖추면서 한결같이 현실세계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그 배후에 감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초월세계가 실재함을 믿음으로써 반대로 현실세계의 무한성을 찬미하였다.

사상사(思想史)의 계보로 따지면 신플라톤파나 칸트 철학의 영향을 받아 개인에 내재하는 신(神)에의 귀일,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 등을 기본적인 교의(敎義)로 삼았으나 이윽고 남북전쟁(南北戰爭:1861∼65) 전야,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한 사회의 진로가 명확해짐에 따라 점차 쇠퇴하였다.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대두될 때까지 미국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일정한 체계를 갖춘 철학사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명비평이나 문학운동에 가까웠다.

문학으로서는 에머슨의 《에세이집》과 시, 소로의 《숲속의 생활》 등으로 열매를 맺고 N.호손, H.멜빌, W.휘트먼 등에서도 그 영향이 인정된다. transcendentalism은 칸트나 독일 관념론의 경우에는 ‘선험주의(先驗主義)’로 번역되므로 이와 구별하여 영어에서는 New England Transcendentalism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출처] 초월주의 [超越主義, transcendentalism ] | 두산백과



* 내가 저자라면


  내가 받아들인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판단하라. 그 외의 모든 것을 최소화하라. 그것이 당신이 스스로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으로 사는 길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 남들의 시선에 얽매여 평생을 살기엔 삶과 자연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숲을 보라.”


  각 장을 살펴보자.

‘1장 숲 생활의 경제학’은 책을 쓰게 된 동기와 목적, 그리고 독자를 말하는 가장 핵심부분이다. 백 여 쪽이 넘는 가장 긴 분량을 할애해 ‘과연 문명이 인간을 자유롭게 했는가’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한다. 집, 의류, 식품 등 필수적인 생존의 조건에 대한 도가 넘는 욕망, 사치품 대한 어리석은 집착,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의식 등 인간이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것들에 대해 자신의 월든 생활에 경험한 수치적 자료를 들며 지적한다. ‘우리가 사고자 욕망하는 것들은 우리의 생명의 시간이다.’ ‘인간은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끝부분은 인간의 이기심이 바탕이 된 자선에 대한 이야기.    

‘2장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는 새벽에 대한 예찬과 깨어있음에 대한 이야기.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간소하게’ 살며 삶의 본질에 충실할 것을 수  많은 예를 들며 역설한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여기보다 거룩한 것은 없다.’

‘3장 독서’는 고전 읽기의 중요함을 강하게 말한다. 깨어있는 시간을 바치는 참다운 독서의 중요성과 지혜를 배우면 동시에 너그러움도 배우게 될 것이라는 주장.

‘4장 숲의 소리들’에서는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의 중요함,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의 여백에 대한 찬양, 집안일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부분이 나에게 들어왔다.

‘5장 고독’은 새벽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과 고독에 대한 이야기. 고독은 군중 속에서 더 느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숲에서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자신보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모여 사는 마을사람들이 더 고독하다는 이야기다.

‘7장 콩밭’은 스스로 농사짓고 수확하는 기쁨을 말하는데 이 장을 읽으며 육아가 떠올랐다. 소로우가 콩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며 콩들은 자신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묻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며, 아이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9장 호수’는 월든 호수의 아름다움을 아주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노래한다. 객체로서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고양시켜주는 평온과 순수로서의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10장 베이커 농장’에서 찾은 문구이다.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11장 보다 높은 법칙들’은 인간이 본능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야성, 육식, 식욕이나 관능, 정욕, 순결과 절제에 대한 소로우의 높은 이상들. ‘자기 내부에서 동물적인 요소가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신적인 면이 확립되어가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각자는 육체라고 불리는 신전의 건축가이다.’

‘17장 봄’은 월든 호수에 봄을 찾아오는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대자연의 생명력이 얼음을 몰아내는 것처럼 우리도 순수함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는다면 우리 이웃 안에도 순수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8장 맺는 말’은 주옥같은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 바깥이 아닌 자신의 내부를 탐험할 필요성, 타인의 상식 뒤에 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대로 존재의 높은 법칙을 만들라는 주장, 진실에 대한 강한 의지와 다짐들이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당신의 의무감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지 말고 진실로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말하라.’

그 외 ‘6장 방문객들’, ‘8장 마을’, ‘12장 이웃의 동물들’, ‘13장 집에 불 때기’, ‘14장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15장 겨울의 동물들’, ‘16장 겨울의 호수’ 등


<월든>의 아름다운 마지막 문장이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월든>의 가치에 대해 네 가지로 평가한다고 한다.

첫째, <로빈슨 크루소>같은 모험기로서 자연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만족감이 들어있다.

둘째, 생생하고 탁월한 자연묘사로 점차 사라져가는 동식물과 자연환경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최초의 ‘녹색 서적’이다. 

셋째, <걸리버 여행기>처럼 사회에 대한 통렬한 풍자서이다. 물질문명의 폐해와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반박이다.

넷째, 소로우의 정신적인 자서전이다.

이 네 가지 평가 중에서 나에게 가장 멀게 느껴졌던 부분은 두 번째 자연에 대한 묘사부분이다. 19세기 미국에 아직 남아있는 동식물들과 자연환경은 내게는 다소 멀고도 추상적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에서는 꼼꼼하고 세밀한 관찰력과 수려한 문장력에 감탄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연이 어떤 것인가 짐작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시 물질에 대한 욕망과 타인들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성공에 대한 끝없는 문제제기였다. 그의 주장 모두를 공감하진 않지만, 진실에 대한 소로우의 강한 집념과 인습과 고정관념에 대한 거부는 매우 강렬했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오늘날의 우리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 숲 생활의 경제학

불행히도 나는 경험이 부족한 탓에 ‘나’라는 주제로 한정되게 되었다.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10]


그들은 이런 모든 소유물들을 앞으로 밀고 가면서 어렵사리 한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12]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과도한 노동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따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노동으로 투박해진 그들의 열 손가락은 그 열매를 딸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것이다. [14]


가장 힘든 것은 당신의 당신 자신의 노예감독일 때이다. [16]


여론, 즉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에 의한 자체 평가에 비교하면 대단한 폭군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16]


오늘도 훤히 솟구쳐 오른 태양을 잊지 않는다. [17]


과거에 해놓은 일만을 가지고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인간이 시도해본 것은 너무나도 적기 때문이다. [20]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20]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 [21]


우리가 사는 이 온대성 기후에서는 인간 생활의 필수품은 식량, 주거 공간, 의복, 연료의 항목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다. 이것들을 확보하고 난 다음에야 우리는 자유와 성공의 가망을 가지고 인생의 진정한 문제들을 다룰 준비가 되는 것이다. [23]


‘자발적 빈곤’ [26]


철학자가 된다는 것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마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26]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삶을 직시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철학자가 된다.


먹고 사는 것을 마련하는 투박한 일에서 여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27]


사람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박는 것은 그만큼 높게 하늘로 솟아오르고자 함이 아닌가? [27]


자신의 현재 상황 속에서 자극과 감흥을 발견하며 연인들 사이에나 있을 법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28]


내가 말하려는 주요 대상은 인생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로, 자신의 운명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타고난 신세와 때를 잘못 만난 것을 한탄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28]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영원이 만나는 바로 이 현재의 순간에 서서 줄을 타듯이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29]


여러 해 동안 나는 눈보라와 폭풍우의 관찰자로 스스로를 임명하고 내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30]


사람들은 누구나 ‘가지고 할’ 그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그 무엇, 혹은 차라리 자기가 ‘되어야 할’ 그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헌 옷을 입고도 새사람처럼 느껴질 때까지는, 그래서 그 이상 헌 옷을 계속 입으면 낡은 병에 새 술을 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처신해왔거나 일해왔거나 또는 긴 여로를 밟기 전에는, 우리의 옷이 아무리 남루하고 또 더럽더라도 새 옷을 사서는 안 되겠다. [39]


바람직한 것은, 옷을 간소하게 입어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몸을 더듬어볼 수 있도록 하며, 모든 점에서 간결하고 준비성 있게 행동하는 것이다. [39]


대체로 보아 나는 우리나라에서든 또는 다른 나라에서든 의상이 예술의 경지에까지 도달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41]

동감! 의류 일에 십 년 넘게 종사했던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옷을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성스럽게까지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반짝이는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삶 때문인 것이다. [42]


인간은 집이라는 따뜻하고 안락한 장소를 구했던 것인데, 첫째로는 육신의 따뜻함을, 다음으로는 사랑의 따뜻함을 구했던 것이다. [44]


어떻게 하면 정직한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면서 동시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45]


하늘을 나는 새는 둥지를 가지고 있고, 여우는 굴을 가지고 있으며, 미개인들도 오두막을 가지고 있건만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는 가정은 반수도 안 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47]


비용이라는 것은, 당장에 혹은 궁극적으로 사려는 그 물건과 바꾸어야 할 ‘생명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48]


우리는 사치품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수많은 원시적인 즐거움의 면에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51]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51]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54]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54]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56]


학생들은 인생을 ‘놀듯이 보내거나’ 또는 인생을 ‘공부만 하지’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진지하게 ‘살아’보라는 것이다. [74]


빠른 여행자란 자기발로 가는 사람 [77]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 [78]


우리가 이사를 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런 가구, 이런 허섭스레기를 버리자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마침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도, 그곳에 새롭게 마련된 가구를 쓰며 이승의 것들은 태워버리자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덫들을 우리의 허리띠에 매달고 이것들을 질질 끌면서 우리가 숙명적으로 가야 할 거친 황야를 힘들게 가야만 할 것이다. [95]

가구로 표현되는 많은 물질들,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들. 동시에 스스로가 만든 의무와 허영의 노예가 된 사람들.


나의 가장 뛰어난 재주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니까. [100]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101]


나는 신념과 경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102]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102]


우리는 일정한 시일 안에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올바른 진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02]


협조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의미에서든 가장 낮은 의미에서든 생을 같이하는 것을 뜻한다. [103]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다. [104]


자선은 인류가 평가를 충분히 해주는 유일한 미덕이다. 아니, 그것은 지나친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의 이기심이다. [109]


내가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정직성과 자비심이 아니다. 이것들은 식물로 말하면 줄기와 잎사귀 같은 것들이다.

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 같은 것이 나에게로 풍겨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의 ‘착함’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끊임없이 흘러넘치되 아무 비용도 들지 않고, 또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어야 한다. [110]


우여곡절 끝에 당신이 어떤 자선 행동을 하게 되었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 그것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다음에는 묵묵히 구두끈을 매라. 숨을 돌린 다음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자유로운 일에 착수하라. [112]


2.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

경치에 관해서라면,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며,

 세상에 내 권리를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카우퍼의 시 [118]


아침은 언제나 나의 생활을 자연 그 자체처럼 소박하고 순결하게 지키라는 초대장과도 같았다. [126]


중국 탕왕의 욕조

“날마다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127]


하루 중 가장 기억할 만한 때인 아침은 잠이 깨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각에 우리는 잠이 제일 적다.

어느 하인이 기계적으로 흔들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천재성에 의해 깨워지고, 공장의 종소리 대신 천상의 부드러운 음악을 들으면서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새롭게 얻은 힘과 우리 내부의 열망에 의해 깨워질 때만 전날보다 더 고귀한 삶은 시작될 수 있으며, 어둠은 그 열매를 맺고 빛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입증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날은 그것을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나 별로 기대해볼 것이 없는 날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그가 이때까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운 새벽을 담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인생에 이미 절망한 사람이며 어두워져가는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이다. [127-128]


태양과 보조를 맞추어 탄력있고 힘찬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언제까지나 아침이다.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든, 다른 사람들의 태도와 일이 어떻든 상관없다. 아침은 내가 깨어 있고, 내 속에 새벽이 있는 때이다. 도덕적 개혁은 잠을 쫓아내려는 노력이다. ...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하며 그 깨어난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어떤 기계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고, 가장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는 새벽을 한없이 기대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128-129]

‘깨어있음’ 바로 전에 정리했던 <스님의 주례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것과 같다. 타인과 세상과 무의식과 습관에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깨어있는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음’이다. 


하루의 본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숭고하고 소중한 시간에 음미해볼 가치가 있도록 만들 의무가 있다. [129]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나는 인생을 깊게 살기를, 인새의 모든 골수를 빼먹기를 원했으며,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 삶이 아닌 것은 모두 때려 엎기를 원했다. 수풀을 폭 넓게 잘라내고 잡초들을 베어내어 인생을 구석으로 몰고 간 다음에,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압축시켜서 그 결과 인생이 비천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 비천성의 적나라한 전부를 확인하여 있는 그대로 세상에 알리며, 만약 인생이 숭고한 것이라면 그 숭고성을 스스로 체험하여 다음다음번의 여행 때 그에 대한 참다운 보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129-130]


우리의 인생은 사소한 일들로 흐지부지 헛되이 쓰여지고 있다. [130]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132]


왜 우리들은 이렇게 쫓기듯이 인생을 낭비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배가 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막아준다고 하면서 오늘 천 바늘을 꿰매고 있다. 일, 일 하지만 우리는 이렇다 할 중요한 일 하나 하고 있지 않다. [134]


사람들은 진리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진리가 우주의 외곽 어디에, 가장 멀리 있는 별 너머에, 아담의 이전에, 혹은 최후의 인간 다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영원 속에는 진실하고 고귀한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진실을 계속적으로 흡입하고 그 안에 적셔짐으로써만 비로소 숭고하고 고결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우주는 끊임없이 그리고 순순히 우리의 착상에 응답해준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우리의 길은 우리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구상을 하면서 보내도록 하자.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하든 또는 거르든 차분하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

왜 우리가 무너져 내려 물결에 떠내려가야 하는가? [139-140]


만약 당신이 사실과 직면하여 똑바로 선다면 마치 그것이 아랍인의 신월도인 것처럼 태양이 그것의 양면에 번쩍임을 볼 것이고, 그 날카로운 칼날이 당신의 심장과 골수를 갈라놓는 것을 느낄 것이며, 그리하여 당신은 행복감 속에서 삶을 마치게 되리라. 죽음이든 삶이든 우리는 오직 진실만을 갈구한다.

시간은 내가 낚시질하는 강을 흐르는 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 강물을 마신다. 그러나 물을 마실 때 모래 바닥을 보고 이 강이 얼마나 얕은가를 깨닫는다. 시간의 얕은 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영원은 남는다. 나는 더 깊은 물을 들이켜고 싶다. 별들이 조약돌처럼 깔린 하늘의 강에서 낚시를 하고 싶다. 나는 셈을 전혀 할 줄 모른다. 알파벳의 첫 글자도 모른다. 나는 태어나던 그날처럼 현명하지 못함을 항상 아쉬워한다. [141]

3. 독서

당신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몇 마디나마 고전 어휘들을 공부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어휘들은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당신에게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줄 것이다. 농부가 자신이 주워들은 라틴어 몇 마디를 기억하고 되뇌어보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닌 것이다. [145]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에서 나온 배우지 못한 아버지의 <<논어>>인용!


고전 연구를 그만두는 것은 자연이 낡았다고 해서 자연 연구를 그만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독서를 잘하는 것,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풍조가 존중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에게 힘이 드는 운동이다. 그것은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과,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독서를 하려는 마음가짐을 요한다. 책은 처음 쓰여졌을 때처럼 의도적으로 그리고 신중히 읽혀져야 한다. [146]


때때로 터져 나오는 웅변가의 열변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글자로 기록된 가장 고귀한 말들은 일시적인 구어보다는 훨씬 높은 차원에 있다. [147]


강연장에서의 능변이라는 것은 서재에서 보면 흔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연설가는 그때그때의 감흥에 몸을 맡겨 자기 앞에 있는 군중, 즉 자기 연설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평온한 생활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며, 연설가를 감흥시킬 수 있는 그런 사건과 군중을 만나면 오히려 정신이 산란해진다. 그는 인류의 지성과 감성을 향해서, 즉 모든 시대에 걸쳐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말한다. [147]


기록된 말은 역사적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이다. [147]


무식하고 냉소적인 장사꾼이 열심히 사업을 해서 바라고 바라던 여유와 자립을 이루면 그는 부와 유행의 일원으로 끼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더 높은 그러나 아직은 접근이 불가능한 지성과 천재의 사회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자기의 교양 부족을 통감하게 되며 많은 재산으로도 어쩔 수 없는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때 그는 뛰어난 양식을 발휘하여 자기 자식들만큼은 스스로 부족하다고 뼈저리게 느끼는 지적 교양을 갖추게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한 가문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다. [148]


우리가 고전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정도의 학문과 천재성을 갖추게 되면 그때 가서 고전을 잊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149]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150]


독서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양서를 읽지 않는다. [153]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계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155]


우리가 지혜를 배우면 그와 동시에 너그러움도 아울러 배우게 될 것이다. [156]


4. 숲의 소리들

아무리 잘 고른 책이고 고전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책에만 몰두하여, 그 자체가 방언이며 지방어에 지나지 않는 어느 특정의 언어들만 읽는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언어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

어떠한 관찰 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공부도, 훌륭한 교재도, 가장 모범적인 생활 습관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 앞에 놓여진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발을 내디뎌라. [160-161]


꽃처럼 활짝 핀 어느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체적 일이든 정신적 일이든 일을 하느라 희생할 수는 없는 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161]


이런 날에 나는 밤 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161]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dskg으면 안 된다. [162]


잡안일은 즐거운 소일거리였다. [163]

나의 집안일이 ‘해야만 하는 지겨운 의무’가 아니라, 여유와 사색과 쉼이 되게 하는 것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의 참된 성품을 알게 되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성품을 더 좋게든 혹은 더 나쁘게든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혀 갖지 않는다. [174]


5. 고독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8]


사람을 그의 동료들로부터 분리시켜 그를 고독하게 만드는 공간은 어떤 종류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무리 발을 부지런히 놀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압니다. 사람은 그 무엇에 가장 가까이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분명 아닐 겁니다.

우리의 온갖 경험에 비추어보아 생명이 분출되어 나오는 곳, 즉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가까이 살기를 원할 것이오. [191]

외로움, 고독은 옆에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생겨난다.


“덕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중용>>  [193]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193]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4]


우리는 너무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195]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공기를 마시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199]

이른 아침 단지 한 바퀴의 산책, 새소리 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나에게 필요한 딱 20분의 고요.


6. 방문객들


7. 콩밭

이 지속적이고 자존심을 요하는 노동, 이 ‘헤라클레스의 고난’의 축소판 같은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콩밭과 거기에 심어놓은 콩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바라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기는 했지만. [222]

‘헤라클레스의 고난’과 ‘나의 콩밭’에 대한 사랑. 마치 육아의 고통과 기쁨과도 같다

나는 콩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이며, 콩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23]


손으로 하는 노돌은 아무리 지리한 일이라 하더라도 가장 나쁜 형태의 게으름은 결코 아니다. 노동은 지속적인 불후의 교훈을 담고 있으며 학자에게는 고전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225]


내가 김을 매고 있는 것은 이미 콩밭이 아니었고 또 콩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 사람은 이미 내가 아니었다. [228]


탐욕과 이기심 때문에 그리고 토지를 재산으로 보거나 재산 획득의 주요 수단으로 보는 누구나 벗어나지 못하는 천한 습성 때문에 자연의 경관은 불구가 되고 농사일은 품위를 잃었으며, 농부는 그 누구보다도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237]

현대에 있어서 ‘집’도 그렇다. 집이 가진 본래의 소중한 가치보다 투기와 재산 형성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나는 어떠한가?

동시에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8. 마을

물론 나는 효과가 있든 없든 무력으로 저항을 할 수도 있었고, 사회에 대해 ‘미친 듯이 날뛸’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차라리 사회가 나에 대해 ‘미친 듯이 날뛰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246]


“그대 정치하는 사람들이여, 형벌을 쓸 필요가 어디 있는가? 그대들이 덕을 사랑하면 백성들도 덕을 사랑할 것이다. 윗사람의 덕은 바람과 같고 평민의 덕은 풀잎과 같다. 풀잎들은 그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고개를 숙이게 되어 있다.” [248] <<논어>>

논어를 읽어야겠다!


9. 호수

하루에 적어도 한번 이 평온과 순수의 표본 같은 호수를 보았다는 것을 그 기관사는(적어도 그의 본성은) 밤에도 잊지 않을 것이다. [278]

하루에 한번이라도 고요함과 자기 자신에 접속하는 일, 그리고 자연을 바라보는 일. 이것이 나의 하루를 절대 없어지지 않는 날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깨어있는 하루의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이다.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하자.


진정한 부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나는 그것을 원한다. [282]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287]


10. 베이커 농장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 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299]


11. 보다 높은 법칙들

나는 나 자신 속에 보다 높은, 소위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상스럽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본능을 발견하고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존중한다. 아는 야성을 선 못지않게 사랑한다. 낚시질에는 야성과 모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낚시질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어떤 때 나는 삶의 야성적인 면에 빠져들어 하루하루를 좀더 야생동물처럼 보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303]


그는 처음에는 사냥꾼이나 낚시꾼으로서 숲에 간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몸 안에 보다 훌륭한 삶의 씨앗을 지닌 사람이라면, 시인으로든 박물학자로서든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찾게 되어 총과 낚싯대를 버리게 된다. 이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마 영구히 그러할 것이다. [306]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고 일종의 본능인 것이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더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309]


우리가 육체에 먹을 것을 줄 때 상상력에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310]


나의 식사 취향과 관계없이 인류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육식의 습관을 결국엔 버리게 될 것이 인류의 운명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311]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고무하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벌레들의 양식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314]


우리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도덕적이다. 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순간의 휴전도 없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 [314]


우리는 우리 몸 안에 동물이 들어 있는 것을 의식한다. 그 동물은 우리의 고귀한 본성이 잠자고 있는 정도만큼 깨어 있다. 그것은 파충류이고 관능적이며, 아마도 완전히 축출해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살아서 건강할 때에도 우리 몸 안에 들어있는 기생충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물러설 수는 있으나 그것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어떤 건강마저 즐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되 순수하지는 못할 수가 있는 것이다. [315]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극히 사소하다. 서민은 그것을 곧 잃어버리나 군자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간직한다.” <<맹자>>  [315]


“정욕을 억제하고 육신의 외부적 감각을 억제하는 힘과 선행, 이 두 가지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신에 접근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베다는 선언하고 있다. 정신은 한정된 시간이나마 육신의 모든 부분과 기능을 전반에 걸쳐 장악하여 겉보기에 천박스럽기 짝이 없는 관능을 순결과 헌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생식력은 우리가 해이해 있을 때는 우리를 방탕케 하고 불순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절제할 때는 우리에게 기력을 주고 영감을 준다. 정결은 인간의 꽃이다. 소위 천재나 영웅적인 행위나 성스러움이라는 것들은 정결의 꽃이 맺은 여러 가지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 순결의 수로가 트일 때 인간은 곧장 신에게로 연결이 된다. 순결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비순결은 우리를 낙담케 한다.

자기 내부에서 동물적인 요소가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신적인 면이 확립되어가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와 결여되어 있는 저급한 동물적인 기질로 말미암아 부끄러워할 이유를 갖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으리라. [316]

모든 관능은 비록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하나인 것이다. 모든 순결도 한 가지다. 한 사람의 관능적인 행동은 그가 음식을 먹든, 음료수를 마시든, 누구와 동침을 하든, 또는 잠을 자든 똑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실은 한 가지의 욕망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관능주의자인가를 알려면 우리는 그가 그것들 중의 한 가지를 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순결치 못한 사람은 서거나 앉는 동작에도 순결성이 결여되어 있다. 파충류는 자신의 굴 한쪽 입구를 공격당하면 또 다른 입구에 머리를 내민다.

정결하게 되고 싶으면 여러분은 절제를 해야 한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나태로부터는 무지와 관능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은 마음의 게으른 습성이다. 깨끗지 못한 사람은 열이면 열 게으른 사람이며, 난로 옆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며, 해가 떠 있는데도 누워 있는 사람이며, 피곤하지도 않은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다.

깨끗지 않음과 온갖 죄악을 피하려거든 외양간의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을 하도록 하라. 천성을 극복하기 힘드나 극복되어야만 한다. [317-318]


각자는 육체라고 불리는 신전의 건축가이다. 이 신전은 자기 나름대로의 양식에 의거해 건축되며 자기가 숭배하는 신에게 바쳐진다. 이 육체 대신 대리석 신전을 지음으로써 빠져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며, 우리 자신의 피와 살과 뼈를 작품의 재료로 쓴다. 어떤 사람의 내적 고귀성은 즉각적으로 그의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비열함이나 관능은 그를 짐승처럼 추하게 보이도록 한다. [319]


그의 정신으로 하여금 그의 육체 속으로 내려가 육체를 구원하며, 점점 커지는 존경심으로 스스로를 대한다는 것이다. [320]


12. 이웃의 동물들

사념들이 어떤 제안을 해올 때, ‘생각 좀 해보지.’하고 말하는 게 현명한 일일까? 나의 사념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나는 다시 길을 찾을 수가 없구나. [323]


13. 집에 불 때기


14. 전에 살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우물을 덮는다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물을 덮을 때 아마 그 집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의 샘이 터졌으리라. [377]


나는 어느 너도밤나무나 노랑자작나무 또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소나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깊은 눈 속을 헤치며 8마일을 걸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380]


“인간은 환영함. 단 짐승 동반 사절. 여유 있는 평온한 마음으로 바른 길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은 들어오시오.” [386]


15. 겨울의 동물들

올빼미 우는 소리는 꽁꽁 얼어붙은 지구를 악기 삼아 적당한 활로 연주하면 날 것 같은 소리인데 월든 숲의 토속어라고도 할 수 있다. [390]


16. 겨울의 호수

상상력은 약간의 틈을 주면 자연보다 깊이 잠수하고 자연보다 더 높이 난다 [412]


우리가 탐지해내지 못했으며 그래서 보기에는 모순된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합치되는 무수히 많은 법칙들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조화는 너무나도 멋진 것이다. 개개의 법칙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과도 같다고 하겠다. 즉 길 가는 나그네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형태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415-416]


내가 호수에 관하여 관찰한 것은 인간의 심성에도 똑같이 통용된다고 하겠다. 그것은 평균의 법칙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마음의 깊이와 감추어진 바닥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의 호수가 어떻게 기울고 있으며, 그 인접 지역이나 환경이 어떠한지를 알기만 해도 될 것이다. [416]


어찌하여 한 통의 물은 금세 물맛이 변하는데 일단 얼면 언제까지나 싱싱한 것일까? 흔히 하는 말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애정과 지성의 차이점이라고 한다. [424]


17. 봄

인간이란 것이 얼었다가 녹고 있는 진흙의 덩어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438]


이것은 대자연이 내장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결국 대자연이 우리 인류의 어머니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얼음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봄이다. [439]


지구는 화석의 대지가 아니고 살아 있는 대지이다. 지구 내부의 위대한 생명에 비하면 온갖 동식물의 생명은 단지 기생적인 것일 뿐이다. [440]


“봄비의 부름을 받고 풀들은 처음으로 싹튼다.” [442]


사람의 생명도 풀잎과 다름없다. 목숨 자체는 시들어버리지만 뿌리는 살아남아 영원을 향하여 그 푸른 잎을 내뻗는 것이다. [443]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447]


저밖에는 봄이 와 있는데 우리는 겨울 안에서 머무적거리고 있다. 흔쾌한 봄날 아침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는다. 그런 날은 모든 악덕에 대한 일시 휴전의 날이다. 그러한 태양이 내려 비치는 동안은 가장 사악한 죄인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는다면 우리 이웃 안에도 순수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447]


날마다 고요하고 자비로운 아침 공기 속에서 피어난 선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덕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점에서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까워지게 한다. 그것은 잘라낸 숲에서 어린 싹이 터서 자라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루 동안에 자행한 악은 다시 싹트기 시작한 덕의 배아를 자라나게 하지 못하게 하며 이를 망치게 한다.” <<맹자>> [448]


18. 맺는 말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455]


우리가 농장의 나무 울타리를 헐고 돌담이라도 쌓으면 그 후로는 우리의 인생에 한계가 그어지고 운명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455]


우주는 우리들이 보기보다는 광대한 것이다. [456]


우리는 호기심 많은 선객처럼 우리가 탄 배의 난간 너머로 자주 밖을 내다보아야 할 것이며, 뱃밥만을 만들고 있는 우둔한 선원처럼 항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456]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456]


당신 내부에 있는, 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을 탐험하도록 하라.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 더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존경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애국심에 불타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그들은 자기의 무덤이 될 땅은 사랑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육신에 활력을 줄 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들의 머리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458]


옛 철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당신 자신을 탐험하라. 여기에는 맑은 눈과 굳건한 용기가 필요하다. 패배한 자,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자들만이 전쟁터에 간다. 그들은 도망쳐서 군대에 몸을 맡기는 겁쟁이들이다. [459]


사회에 대해 무조건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한 인간의 의무는 아니다. 자기 내부의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취하게 되는 태도를,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간에 견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 자세는 올바른 정부(만약 그런 정부가 있다면)에 대해서는 결코 반항적인 자세가 아닐 것이다. [460]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461]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 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큰길은 얼마나 밟혀서 닳고 먼지투성이일 것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자국은 얼마나 깊이 패었겠는가! 나는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나는 이제 배 밑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법칙이 확대되고 더욱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도록 해석되어 그는 존재의 보다 높은 질서를 허가받아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461-463]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쪽의 우리의 윤곽을 희미하고 막연한 것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의 그림자가 태양을 향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땀을 흘리듯이 말이다. [464]


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수준을 가장 둔한 통찰력에 내려 맞추고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찬양하는가? 가장 평범한 상식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며, 그들은 그것을 코고는 소리로 표현한다. [464]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이다. 자기가 왜소한 피그미족에 속했다고 해서 가장 큰 피그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서 목을 매야 한단 말인가?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465-467]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어떠한 표면도 진실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낸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거짓된 입장에 있다. 천성의 어떤 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사정을 지레짐작하고 우리를 그 속에 맞추어 넣어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사정에 처해 있으며,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두 배나 어려운 것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 우리는 사실만을, 즉 실제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응시한다. 당신의 의무감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지 말고 진실로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말하라. 어떤 진실도 거짓보다는 낫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의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468]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겸손은 어둠이 그러하듯이 천상의 빛을 드러나게 한다. [469]


나는 저울대에 매달려 자신의 무게를 달면서 균형을 잡다가 나를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정당하게 끌어당기는 것에게 인력에 의해 끌려가고 싶다. 저울대에 매달려 몸무게가 적게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 어떤 사정을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위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길을 가고 싶다. 단단한 토대를 쌓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는 따위의 짓을 나에게는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한다. 살얼음판에서 벌이는 아이들 장난은 그만두도록 하자. 어느 곳이든지 단단한 밑바닥은 있다. [471-472]


접합제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못을 완전히 다 박고 그 끝을 성심껏 구부려 밤중에 혹시 잠을 깨더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라. 그 일을 위해 시신時神을 불러도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 일에, 오직 그런 일에 신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당신이 주체가 되어 일을 해나가되, 박는 못 하나하나가 우주라는 기계의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대갈못이 되도록 하라.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472]


각 개인의 뒤에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대영제국쯤 나뭇조각처럼 띄워버릴 수 있는 조류가 밀려들었다가는 빠져나가곤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475]


우리 안의 생명은 강의 물과도 같다. [475]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가지고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저 아침의 성격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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