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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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구본형(1954년 1월 15일-2013.4.13 19시50분)
만 59세, 충남 공주시 | 말띠, 염소자리
베스트셀러 저자 구본형씨 별세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자기계발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대표가 13일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59세.
고인은 1998년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출간하면서 국내 서점가에 자기계발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등을 잇따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변화 경영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는 '구본형 변화경영 연구소'를 세우고 현대인의
자아 경영, 기업체의 변화 경영 등을 주제로 특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인문학과 경영학을 접목한 '직장인 멘토'로 평가 받았다.
1992년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제1회 '경영혁신대상' 개인 공로자상을 수상했으며, 신문과 방송을 통해 칼럼니스트이자 스타
강사로 이름을 알렸다.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서강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한국IBM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다가 저술가로 변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윤희, 장녀 해린, 차녀 해언씨가
있다.
빈소는 서초구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02-2258-5940.
참고: 나 구본형의 변화 이야기, 10년마다 자신의 삶을 결산하는 자아경영 프로젝트. humanist
[나의
의견]
이런
저자조사를 할 줄 몰랐다. 누구나 자신이 멸하는 때를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스스로도 모를뿐더러 타인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필멸의
존재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나의 스승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읽고 계시던 책이 "영혼의 자서전"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로 알려진 그리스 작가이다. 많은 사람의 로망인 조르바. 실존인물을 소재화한 책이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난 후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 했다. 서재 어디에 그 책이 있을 것이니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고 부인은 전한다. 병세가 짙어지면서 친구가 읽어주었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곳으로 영혼이 떠나기를 기도하는 것과 글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스승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알게 되던 날 병원을 나서며 신촌역에 있는 서점을 들렀다. 그곳에서 영혼의 자선전 1.2를 샀다. 그날 이후로 스승의 마지막을 지킨 영혼의 자서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나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 스승은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고 했다.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은 "그래, 길수"였다. 그
전에는 "내가 지금은 갑상선 암이라고 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고 있다." 숨이 차서 말씀을 이어나가지 못하셨다. 자신의 제자라고 생각하는 연구원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나는
그 마지막 제자들 중 하나이다. 연구원은 현재8기가 수료했다. 9기를 준비하다 소천하셨다. 우리들의 수료여행에 동참하지 못하셨다. 이제 나는 스승을 가슴이 담았다. 여기서 정지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내가 죽는 그날까지 마음 안에만 살아있는 나의 스승이다. 어쩌다 생각을 안 할지, 어쩌다 생각을 할지 잘 모르겠다. 이번 리뷰는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이다. 스승이 지금의 내 나이에 쓴 책이라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의식이 있다가 없다가 하면서 병원침상을 지키고 계시는 동안 읽은 책이라 그분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스승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책을 보게 되었다. 울기도 하면서 또 나와 많이 닮은 스승의 빛깔을 보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기질이 많이 다른 사람은 상대의 언어를 해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지 않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너무나
이해가 잘 되는 부분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와서 놀라면서 읽었다. 다시
10년이 되는 금년에 두 번째 자서전을 준비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초고
형태라도 준비중이셨지 않을까. 그리스인이야기도 이제 막 시작하셨는데....언젠가
여쭤본 적이 있다. "사부님은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돌아다니고" 이것이 스승이 가지고 있는 미래였다. 하루 하루가 인생이란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고 생각과 행동이 함께 하던 분이다. 이제 더 자유로운 영혼이 나의 마음에 살아 있을 거고, 내가 죽는
그날까지 나의 스승은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나의 스승, 나의
사랑 고인의 명복을 빌며....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책을
펴내며
1. 이
책은 나에 대한 기록에 기초한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이다.
2. 이
책을 쓰다가 쓰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덤을 얻었다. '자서전이란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3. 역사는
기록된다. 기록되지 앉으면 잊혀진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록함으로써 나의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범한 개인에게 있어 개인사의 편찬은 본인의
과제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 책은 바로 그 프로젝트다.
4. '나에 대한 이야기(me-story)'는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한 기록이다. 즉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을 그려보기 위한 시도이다.
5. 자서전은
나이 먹어 쓰는 회고록이고, 통상 죽기 전에 한 번 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10년에 한 권씩 나의 이야기를 편찬하려 한다. 조금
일찍 깨달았다면 더 빨리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6.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인생을 한 개인의 역사라고 인식했으면 한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다.
프롤로그
'모든
좋은 것들은 웃는다. 어떤 사람이 정말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그 걸음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걷는 것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니체
시간이
다 되어 그 많던 모래알들이 다 떨어지고 마지막 촛농이 숨을 다할 때....이때 인생을 돌아본들 무엇을
어찌 하겠는가! 후회 속에서 긴 한숨을 지어본들 갈 길을 재촉 받을 뿐이다.
이
책은 놀이며 유희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다. 그 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보려는 실험이다.
1장 지난 10년
'불행한 시기에 철학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오히려 행복할 때, 용감하고 성공적인 장년기의
열렬한 명랑함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니체
17 비와 바람은 서울의 모든
매연을 끌고 사라졌다. 구름 아래로 보이는 보현봉과 문수봉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저자의 자택에서는 문수봉이 바라보인다. 특히 주방에 앉으면 양면이
유리로 되어 있고 그곳을 통하여 바라보는 북한산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낭만주의자다. 이곳에서의 전망를 보고 집을 샀다고 했다.
18 마흔은 한 움큼 잡히는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육체는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힘줄처럼 질기다. 그러나 육체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안으로부터 비대해지고 느슨해진다. 모든 것의 궤멸은 늘 내부로부터 온다.
19 비대해진 육체와 달리 정신은
알 수 없는 불안을 감지한다. 내게 마흔은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20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예를 들어 비겁함이 주위에서 서성거리면 나는
조용히 혼자 있는 방법을 취한다. 방송이 나를 괴롭히면 출연에 응하지 않는다. 모임이 나를 괴롭히면 나가지 않는다. 원고를 써야 하는 강박감을
느낄 때는 언제고 거절한다. 어쨌거나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21 불면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모르던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파블로 카잘스가 타는 바흐를 듣다 보면 어느덧 잠이 들고
아침에 상쾌하게 깰 때도 있다.
23 중년의 금지된 사랑은 평범한
사람들조차 황홀하게 극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떨쳐버리기 어려운 유혹이다. '장미여관'은 만만한 것 하나 없는 현실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별 노력 없이 즐겁게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의 현장이다. 성이 사랑을 대신하는 침대만큼 쉽게 흥분하고 값싼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25 부드러운 피부 속으로 만져지는
뼈, 뼈도 아주 성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그녀와 함께 떠나자. 그녀와 함께 도망치자. 다시는
유럽으로 돌아오지 말고 그녀와 소박하게 살자. 태양이 있는 곳, 과일이
익는 곳에서 그녀의 육체와 더불어 살자. 다른 어느 것과도 연관을 맺지 말고 지나간 날의 모든 것으로부터
동떨어진 채,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입 속에, 그녀의 젖가슴에 묻혀 살자.'
26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이내 스스로를 함부로 던져 망가뜨리고'만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것을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모든 만족을 얻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함께 그녀를 배신한다.'라고
표현한다.
현실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려주고 싶다. 그들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 역시 한때의 꿈보다 더 영속적이지
못하다. 인생은 결국 짧은 꿈이었다는
것을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 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27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28 일상은 늘 다행스러운 일로
가득하다는 점이 여간 안심되는 것이 아니다.
29 무엇보다 가장 마흔다운 것은
건망증이다.
30 과거와의 연결, 심지어 미래와의 연결도 가끔 끊어버리고,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다. 나와 나의 불일치, 시간적
흐름에 대한 일탈과 소거는 아주 유쾌한 지구 탈출 같은 것이다.
31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문제에 끌려 다니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나는 문제를
일상에 던져진 예기치 않은 모험과 도전으로 인식하곤 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새로운
단면과 만날 수 있다. 최선의 해결책에 도달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가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여러 해결 방법 가운데서 내게 적합한 방법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니까. 물론 모든 문제들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안고 살면
되는 거지.
2장 마흔 살
'아직 밟아보지 못한 1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1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니체
38 그리고 또 다른 그는 일
속으로 도망간다. 일밖에 없는 일꾼은 성공한 실패자가 되고 부유한 노예가 되고 가족에게 미안한 가장이
되고 늘 바쁜 아비가 되어 무자비한 사다리의 꼭대기를 향해 질주한다.
39 이때 나의 마음은 박남준의
시와 같아 보였다.
'미루나무가 서 있는 강 길을
걷는다. 강 건너 마을에 하나 둘 흔들리며 내걸리는 불빛들. 흔들리는
것들도 저렇게 반짝일 수 있구나. 그래 불빛, 흘러 온 길들은
늘 그렇게 아득하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토록 나는 저 강 건너의 불빛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이구나.
41 아마 조금 더 젊었더라면
전직을 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다른 모색을 했을지 모르지만, 마흔 살이 되면 문제를 끼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니까 빼도 박도 못하는 시기다.
42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통찰력
있는 우화다. 하나님은 모든 동물에게 30년의 생명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당나귀와 개와 원숭이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중에 후반 몇 년을 깎아달라고 청했다.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모든 소원을 들어주었다. 마침 사람이 나타나 30년
세월의 짧음을 호소하자 하나님은 역시 친절하게도 동물들에게서 잘라낸 세월을 사람에게 얹어 주었다. 인간은
그래서 타고난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희망이라는
뽀얀 피부와 젊음 속에서 고뇌조차 달콤한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그 다음 18년은 당나귀로부터 받은 생애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다음 12년은
개에게서 받은 생이다. 양지에 엎드려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거나 졸며 지낸다. 그리고 나머지는 원숭이로부터 받은 생애다. 비로소 이때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든 관절이 녹슨 문짝처럼 삐걱거리고 겨우 걷고 먹을 수밖에 없게 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44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길인가!
47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실패와 무능력과 비겁함은 비난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
한계와 비극의 문제로 전환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강한 자에 대한 비난은 탄식과 슬픔이 된다. 겸손과 동정과 베풂은 이런 비극적 통찰에서 나온 변환이다. 이러한
자기수용은 자아통합(ego-integrity)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로 위로가 되는 시절이다.
48 마흔 살 너머의 창조는 학습과
훈련과 가벼운 정신적 태도의 산물이다.
마흔의 나이에는 철학조차도 실용적인 것이 된다.
이때 위가 얻게 되는 것은 삶의 지혜다. 지혜란 '숭고하고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삶을 위해 필요한 실제적인
통찰력을 의미한다.
50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대체로 이러한 갱생의 힘은 절망과 고통
속에 감추어져 있다.
51 쓰임을 받으면 애써 일하고, 버림을 받으면 스스로 즐기면 된다. 부름을 받으면 신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들이 잊으면 일상을 즐기며
스스로 벌어 궁색하지 않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다.
52 1막에서 엑스트라였던 사람이 2막에서 돌연 주연으로 바뀌는 연극을 본 적이 있는가? 마흔 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극의 지루한 2막이 아니다. 오히려 연극을
끝내고 진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파괴와 창조, 죽음과
재생이라는 이미지와 직결되며, 죽어야 살 수 있다. 이 치열한
반전을 사람들은 일부러 잊으려고 하는 것인가?
53 삶을 연극에 비유하는 것을 미워하는 이유는 삶을 극장 안으로 몰아넣고 짜여진 연극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를 원한다.
54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55 매천 황현은 1855년 전남 광양에서 출생했다. 서른네 살에 장원 급제했지만 부패한
정치에 환멸을 느껴 시골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 1910년9월, 나라를 잃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절명시가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네게 꼭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그러나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이 되었건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도 죽는 이가 없다. 다만 그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56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3장 직장생활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는
병이 낫지 않는다.' -니체
60 승진하고 작은 세계를 장악하고
발탁되어 피라미드의 전망 좋은 위치까지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잘 맞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직적인 사고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곳에서 내 청춘을 지나갔다. 나는 먹고 살았다. 그리고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서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61 그러나 변화경영은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관심사였다. 그들은 모두 현재의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현재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 R&D로서 현재의 일부를 투자할 수 없었다. 변화는 한가는
사람들의 과제였을 뿐이다. 변화는 바쁘지 않은 사람들의 일이다. 변화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진 불행한 자들, 혹은 불행을 인식하는 자들의 과제였다.
63 나는 혁명사를 전공하고 싶은
역사학도였다.
64 개선과 혁신, 그것은 혁명이라는 단어의 현실적 대체용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IBM에서 가장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 그 일이라는 것을 나는 뼛속부터 알고 있었다.
66 임시성과 비정규성은 방법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특성이 되고 있었다. 모든 신뢰의 수명은 단축되고 있었다. 단기적 전망과 사고가 변화와 돌변의 시대를 이해하는 경제적 키워드였다.
68 거품이 가진 속성, 화려함과 불안정성이 공존했다. 그들이 이미 사회의 한 현상을 주도했고, 세상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70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필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늘 그 처신에 특별한 공유점이 있었다.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세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73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하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 없는 정말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이다.'-카프카,
<돌연한 출발> 전문
74 자신을 팔러 다니는 그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나였다. 나는 그들보다도
걸음이 느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무척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의
관계는 가능하면 순수한 것이 좋다고 신봉하는 축에 속하는 숙맥이다. 나는 이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변하지 않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75 적극적 수동성, 즉 유혹은 늘 설득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고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사냥은 창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짐승에게 덤벼드는 것만이 아니다. 온몸에 쥐가 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 덮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덫과
올가미를 놓고 편안한 집에서 술 한잔하고 푹 쉬고 나서, 그 다음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덫과 올가미에
걸려 있는 짐승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사냥의 한 방법이다.
76 유혹은 설득 이전에 이미
설득 당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설득이란 언제나 스스로 이미 설득 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 설득할
수 있다. 이것이 설득의 제1의 법칙이다. 설득은 늘 미리 이루어진다. 미리 이루어진 설득, 무너진 자기방어를 유혹이라고 부른다.
77 1997년, 마흔세 살이 되는 여름 어느 날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당신
한 달 동안 포도 단식을 하고 있었다.
내게 천둥처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79 전문가는 학위와 자격증에
의해 증명되지 않는다. 전문가는 과거에 의해 전문성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며, 오직 끊임없는 자기학습에 의해 날마다 새로워질 뿐이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고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edge walker)'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 받을 자격이 있다.
81 어제의 나는 꽃처럼 낙엽처럼
죽어 흘러가고 사라졌다. 나무들은 가장 추울 때 그렇게 서 있다.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82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4장 페르소나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메이
사턴(May Sarton), <나 이제 내가 되었네>중에서
86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얼굴은 놀랄 만큼 유연한 물체다.
교교한 달보다 더 요염할 수도 있고 얼음보다 더 차가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우리 신체 중 늘 벌거벗고 나타나는 부위다. 햇빛이 너무 강한 날이면 선글라스를 끼기도 하는데, 가린 몸이 더
성적이듯 더욱 은밀해진다.
87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다.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화장품 가운데 으뜸은 역시 세월이다. 세월은
피부를 거칠게 하고 주름을 길고 깊어지게 한다.
88 생각은 머리를 통해 눈에
나타난다. 눈은 엄밀히 말하면 두뇌가 밖으로 나온 기관이다.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눈에 표현되게 된다. 눈이 인상을 결정하기도 한다.
89 별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숱이 많은 것이 좋다. 머리 역시 얼굴이고,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스타일을 바꿈으로써 전체의 인상을 다르게 해줄 수 있다.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스타일의 수가 대단히 제한적이라는 것을 말한다. 짧게
자르는 정도에 만족해야 하고 모자나 가발에 의존해야 한다. 난 가발은 실어한다. 가발을 쓰면 처참해질 것 같다. 다른 사람처럼 평균이 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머리용 가발이다.
91 아내는 모자를 싫어한다. 자기는 얼굴이 둥근 데다가 커서 모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내가 모자를 사는 것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물론 처음부터 관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모자를 사는 이유를
짐작하고 난 다음부터는 내가 새로운 모자를 사서 쓰고 들어오면 웃어준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구두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가 구두를 사면 웃어준다. 그래서
나는 모자가 많고 아내는 신발이 많다. 그래서 가끔 싸움도 하지만 더불어 잘 살고 있다.
93 아마 콧날이 굴곡 없이 반득하기
때문에 글줄이나 쓰며 남들에게 교양과 지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며 살게 되었나 보다.
95 쓸데없는 치장은 야심한 밤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온 여자들이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지워내야 하는 화장 같은 것이다.
96 나는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인생에 대하여 약간 시무룩한 편이어서 맥이 없어 보이는지도 모른다.
98 약간 돈 것은 아주 재미있다.
101 수필이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고 진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늘 째째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나는 이것을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생각한다.
102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도 팔지 않는다. 돈에 묶이지 않고 가볍기 때문에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인형은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을 얻게 된다. 생명은 내면에 있다. 우리의
내면은 늘 신과 만나는 장소다. 신은 복잡한 곳에 있지 않다. 바다
위에 머무는 햇빛, 푸른 하늘을 흐르는 구름, 미풍 속의
나뭇잎, 그리고 그 바람, 시냇물이 흰 바위를 스치며 내는
소리, 계류가 흐르다 모여 이룬 소(沼)속의 가을 물빛, 나뭇잎 하나와 거미줄 한 가닥에 매달린 작은 거미, 비 온 뒤 흙 길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지렁이 한 마리는 신이 가장 머물기 좋아하는 장소들이다. 아니면 고추 몇 개가 곁들여진 싱싱한 상추 한 접시와 된장이 놓인 소박한 여름 점심상에도 신은 머문다.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 있을 것이다.
104 '어제의 나'와 달라야 한다. 자기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나을 묶고 있는 줄 하나를 끊어냈다. 다른 줄도 끊었다. 나는
인형에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인이 가지는 자유와 책임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책임이 더 이상 구속이 되지 않도록, 일이 더 이상 밥벌이가 되지
않도록, 자유가 더 이상 방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다시
인형으로 돌아가서 수없이 많은 끈으로 조정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남의 얼굴들을 그리워하다
여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가고 규범을 배우고 문화 속에 던져지면서 의도적 왜곡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되어갔다. 내가 마흔이 되어 한 일은 그런 나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5장 가족
'진정으로 사랑했던 마음은
결코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 -토마스 무어
109 나는 갈등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 부른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113 함께 먹는다는 것은-아마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다. 먹고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이완을 위한 휴식이기 때문에 휴식 시간에 만난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114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작은 수고들은 이런 기쁨을
위해 동반되는 선물의 포장지거나 아름다운 포장 끈이나 리본 같은 것들이다.
115 다른 사람들은 나를 꽤 점잖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속에도 불 같은 것이 들어 있다. 나도 잘 모르고 있던 불길이 있어 나를 타오르게 하고, 저항하게
하고, 화내게 하고, 불만을 터뜨리게 한다. 뜨거운 기질은 옆에 있는 사람들을 가끔 괴롭히기도 한다.
116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고
나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어쩌면 이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먼 그림을 그려보려고 하는 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멀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118 아내가 송곳 같은 때를 만나면, 그저 '또 뭔가 화가 나 있군.'
정도로 넘어가고, 그게 터지지 않을 만큼 잠시 피해 있으면 된다. 심심하면 그걸 일부러 건드려 터트리기도 한다. 살면서 우린 무척
가까워졌다.
122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랑은 비어 있었고, 생명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미 생명이 없었다. 책임과 의무만이 무성한 잡초처럼 내 마음의 벌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살아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먼저 살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길이 있었다.
현실이란 그저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남들의 생각', 즉
다른 사람들의 견해일 뿐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머슨의
말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관이 그 사람의 성격임을 종종 잊고 지내는 것' 같다. 누구의 삶이든 그것은 늘 그 조인을 닮게 마련이다.
127 늘 반갑고 그리운 친구
가족처럼 매일 삶 속에서 서로의 인생 속으로 들락거리며 만나지는 않지만 내 일상의
또 다른 뼈대를 이루는 친구들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친구들은 외로움을 견디게 해준다. 우린 함께 술을 마시거나 함께 여행하거나 함께 산에 간다.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허전하다. 역시 술을 마셔야 좋다.
128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어려서 아이들이 친구 집 앞에 가서 이름을 부르며, "00야 노올자."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해보라. 서로에게 아무 부담이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129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지니스 파트너다.
나이가 들어 돈벌이를 하게 되면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 동안 나는
뭘 했나'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두움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즐거움 역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그래야 커진다. 즐거움에는 무게가 없다. 그것은 깃털 같아서
하늘을 날 수 있다. 즐거움은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친구이기 때문에 간혹 부담을 주기도 하고, 친구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두 번은 좋다. 그러나 한두 번으로
해결되는 어려움이란 별로 많지 않게 마련이다. 종종 반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십중팔구 관계가 멀어진다.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6장 자연
그녀가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 아님이
다시 내가 그녀를 안심시키는 힘이 되었다.
'자연과 신, 그 어느 쪽도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그 둘은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본성의 집행관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135 화사를 나와 내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2000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까지 남도를 한 달 반 정도 줄곧 걸은 적이 있었다. 봄은
햇빛과 바람이다. 그것처럼 언 땅을 녹이는 데 효과적인 것은 없다. 땅은
빨래와 같다. 언 것을 해동하여 물이 질 펀해지면 바람으로 날려버려야 한다. 그러면 따뜻하고 약간 촉촉하거나 고슬고슬한 봄 땅이 만들어진다. 걸으면
발바닥에 봄 땅의 부드러운 울렁거림이 느껴진다. 이내 물이 오르고 대지는 온몸을 열어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오게 해준다. 싹은 그때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남도를
돌며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바고 그 바람이었다. 바람은 어딜 가나 나를 따라다녔고, 나는 바람을 따라 떠돌았다. 그 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첫 번째 꽃이
매화였다. 3월 중순이면 다합리 매화가 절정을 이룬다. 이때
지리산 자락의 산수유는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한다. 노란색 꽃차례가 화사함의 극치에 다다르면, 하동 쌍계사의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136 좋은 동백은 너무 많이 꽃을
달고 서 있지 않는다. 두껍고 반짝이는 짙은 초록잎 사이에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꼭 맞게'꽃을 단다. 이때쯤이면
라일락이라고 알려진 수수꽃다리가 향기를 품고, 운이 좋으면 천리향의 향기도 맡을 수 있다. 진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관매도라는 아들다운 섬이 있다.
꽃은 작고 소박하지만 향기는 끝없는 유혹이다.
137 산과 가까워지는 공간
마흔이 되면서 산에 더 자주 가게 되었다. 언젠가
북한산의 노적봉이 마음에 들어 주말마다 그 봉우리를 찾았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바위 덩어리지만 아무
보조장비 없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오르는 길은 대략 세 군데 정도 된다. 정상 바로 밑에서 약 3미터 정도의 거의 수직 벽을 타고 넘거나, 밑으로 살짝 돌아 노적봉의 옆구리를 끼고 오르거나, 서북쪽에서 바위틈을
타고 오르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든 제법 만만하지 않은 장애물이 있어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봉우리다. 나는 이 점이 좋았다. 잠시 홀로
있을 수 있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이곳에 오르면 우선 옷부터 벗는다. 백운대가 바로 뒤에 높게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노적봉 정상에 사람 키 두 배 정도의 바위가 시야를 가져준다. 동남쪽은 시원하기 그지없이
터져있다. 옷을 모두 벗소 햇빛에 온몸을 말리며 홀로 조망하는 기분은 숨겨두고 두고두고 즐길 만하다. 누군가 다가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척을 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런 고요한 즐거움은 예사롭지 않은 경험이다. 홀로 산에 있으면 아름다움에 취하게 마련이다.
138 숟가락으로 먹는 모든 것들은
결국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동안 땀이 식고,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으면 노적봉 정상은 이내 아름다운 침상으로 변한다. 나는 신과 가까워진다. 나는 잠이 든다. 세상은 잠시 사라지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가 이내 되돌아온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이렇게 떠나기 전 입었던 옷을 입고 깨어나는 것이다. 언젠가 깨어날 수 없다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으면 가족들은 우리가 입었던 옷을 바꿔 입혀준다. 잠자기
전 우리가 떠났던 세상으로 똑같은 모습으로 다시 돌아 온다는 것 때문에 우리는 절망하고 또 안도한다. 한잠을
자고 일어나면 커지는 누에처럼, 우리가 젖먹이 어린아이였을 때처럼 한 잠을 자고 날 때마다 조금 더
커지고 조금 더 현명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끔 느닷없는 통찰력이 번개같이 머리를 후려쳐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늘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변화의 이유
140 우리가 당황할 만하면 아이들은
벌써 답을 알아차리고 팔랑팔랑 사라진다. 알량한 지식으로 무장한 우리는 무시간 채로 얼어붙고 아이들을
질문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놀러 가버린다.
얼마전 작고한 이오덕 선생이 늘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입니다."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사라지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석양의 호숫가에 오리 한 마리가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그녀의
존재가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습이 늘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간혹 사람을 바위처럼 단단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법의 미풍에 녹아 내릴 수 있을 만큼 불안한 것임을 예감하기도 한다. 포도주 빛처럼 매혹적이었다가 지독히
역겨운 상황으로 반전하기도 하고, 평화로운 푸른 바다 같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해일로 돌변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동반이기도 하고, 함께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사랑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드라마틱하고 가장 빠져들기 쉽고 가장 상처받기 쉬운 것이기도 하다. 그게 사랑의 매력이다. 사랑의 개념은 불변하는 것이지만 그 구체적 모습은 천변만화의 격정이다.
142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43 인간이나 사물의 연속도 꼭
이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과 생겨나는 것은 별개로 보이지만 지속되는 것입니다.
곽박(郭璞)의 시에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변화에 대한 묘사는 찾기 어렵다. "밖으로
자연의 조화를 본받고, 안으로 마음의 근원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마음에 담아둘 충고다.
145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가 "나는 스며든다.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 있는 물살에, 나는 깃든다. 죽지 않는 모든 것에. 나는 곧 생명이므로."라고 말할 때, 그녀는 바로 나였다.
'풀님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을 밟고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내가 지나갈 때 당신이 고개를 숙여야 할지라도
내가 죽으면
나 역시 당신의 자매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다. 풀과
나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다. 우리는 같다.
146 나는 나무다. 스스로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이 나으이 목적이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땅이지만 가야 할 곳은 하늘이다.
148 내가 가장 되고 싶은 나무는
산 속의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탁 트인 아름다운 곳에서 오래 자란 줄기 붉은 소나무다. 그 그윽하고
향기로운 모습이라니. 그 밑에서 땀을 닦으면 나도 잠시 그 정정함이 된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사람들이 종종 찾아주는 너무 깊지 않은 산 맑은 계류 옆의 커다란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이 되면 온몸을 다 열기로 띄워 분홍이 조금 섞인 흰 꽃으로 며칠 피다 바람의 결을 따라
흩뿌리는 그 멋진 벚나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벚나무들을 가끔 산에서 만나고 한다. 그 옆에 앉아 가지고 간 포도주를 한잔하거나 얼린 다음 젖은 신문지에 둘둘 말아둔 차가운 맥주를 단숨에 마시는
것은 차 멋진 일이었다.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어느 거리의 가로수로 잘 자란 느티나무였으면 좋겠다. 느티나무는 멋이 있다. 섬세한 여인 같은 나무다. 줄기도 잎도 모두 곱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이것이 나이테다.
그 외의 방법은 없다. 늘 자신의 시체를 내다버릴 수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일을 아주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낙엽은 나무의 지혜다. 혹독한 겨울에 살아남기 위한 창조적 해결책이 바로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이 나무의 멋이다. 가장 장엄한 문명의 단편이 장례이듯이 낙엽은 죽음조차 아름다운
삶의 과정으로 창조해낸다. 나무는 해마다 한 해의 삶을 기록한다. 한
겹의 나이만큼 줄기에 그 흔적을 남기고 두꺼워지고 키가 더 자라게 된다. 나무는 매년 죽는다. 이 상징적 의식이 나무가 자라는 방법이다.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하나.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52 나는 얼굴이 눈부신 '얼짱'이 아니므로 얼굴로 승부할 수 없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노래로 사람을 모을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하나의 씨앗처럼 날려보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생각인지, 나의 생각을 가장한 다른 사람의 생각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오리진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한 진실은 나의 것이 된 생각들, 즉 이미 '내게 귀화한 생각'들이라는
점이다.
153 로댕의 말을 잊지 마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어떤 것은 실종되고, 어떤
것은 시멘트 같은 마음속에서 죽을 것이다.
154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라.
7장 건강
아무런 긴박감도 없는 응급실은 마치 시체실과 같았다.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내 시체가 도랑에 버려졌다는 것도 그들을 알지 못했다.
'의학기술이란 자연이 질병을 치료해주는 동안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볼테르
158 놀이정신은 사라지고 반복되는
일상의 한 장면이 된다. 출근하듯 운동을 한다.
159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덥고
여전히 여름의 태양이 비치지만 나뭇잎은 이미 절정을 지나 빛을 잃고 있다. 물기를 잃고 낙엽의 바삭거림을
잉태하게 된다.
160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었을 때 "늙은이는 두려워하고 망설인다. 고약하고 이기적이며 겁 많고
차갑고 자괴감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늘 거만하고 제멋대로였다. 스승인 플라톤과 결별하고, 제자인
알렉산드로스에게도 배척을 받았다. 처세술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군계일학이어서 자꾸 머리통
하나만큼씩 돋보였던 것 같다. 아리스토테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물을 뛰어 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다시 늙은이로 되돌아가자. 플리니우시는 또 이렇게 말한다. "감각은 무뎌지고 사지는 뻣뻣해지고 시각, 청각, 치아 그리고 소화기관까지 우리보다 더 빨리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161 팰그레이브라는 사람이 <상인과 수도사>라는 책에서 한 말이 인용된 것을 본적이
있다. "섬유질이 형성되고 모든 기관에 생명이 부여되는 순간에 나타난 최초의 맥박 그 자체가
죽음의 근원이다. 신체조직들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그 조직들이 들어가 묻힐 무덤이 마련되는 것이다.
162 자연은 다산과 낭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163 모든 세포의 1차적 꿈은 '두 개'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분열하는 세포는 잠정적으로 종양세포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어떤 유전자는 손상된 DNA를 가지고 있는 세포가 불완전함을
수리할 동안 세포분열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심하면 자살을 명령하여 암의 씨앗을 숙청해버린다.
164 재퍼슨이 존 애덤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우리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무르익어 찾아올
때 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야 할 바로 그때가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쓴 후에 남의 것을 탐할 수는 없겠지요."
이러한 죽음에 대한 통찰이 의사자 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자나 문학자 혹은 역사학자, 그리고
치열한 삶을 살아본 위대한 인물들에 의해 훨씬 더 잘 해석되고 이해되는 것은 이런 동질성 때문인 것 같다. 철학의 의학을 선도한다. 생각이 늘
기술을 선도한다.
166 문명은 기본적으로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부모는 최초로 만나는 문명이다. 거역하면
패륜이 된다. 학교와 종교는 그 다음에 만나는 문명이다. 사회적
가치관을 만들어 정신을 지배하게 된다. 여론, 그리고 법은
문명이 정한 행동을 넘어서는 것을 제약하는 통제선이다. 이 선은 대체로 굵고 선명하기도 하지만 군데군데
모호한 구멍이 뚫려 있기도 하고 간혹 희미한 곳도 있다. 인생은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174 그러나 월급쟁이가 과로를
치료할 수 없듯이 심장도 자기 병을 치료할 시간이 없다.
175 생명을 읽으며 사라져가는
것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미 죽어버린 것들은 그 허망함으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처마 끝에서 떨어져 죽은 참새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죽은 지
며칠 지나 이미 바싹 마른 시체에서는 깃털이 빠져 나오고 몇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왜
그런 자세로 죽어 있는지 모르지만 새는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감겨진 눈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눈꺼풀이 내려와 회색의 반투명한 막이 눈동자를 가리고 있다. 두
개의 발이 하늘을 향해 벌려져 있다. 죽음은 모멸 속에 그렇게 놓여 있었다.
건드리자 교활하게도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죽은 척한다. 이런, 수를 스는 군. 나는
가지 끝에 힘을 좀 주어 밀었다. 그러다가 벌레의 몸이 터지면 먹었던 새의 시체와 골수와 진액이 흘러
나올 것 같아 힘주기를 그만두었다. 벌레가 없다면 저 새 역시 모든 걸 버리고 하늘로 가기 어려울 것이다. 남아 움직이지 못하는 저 애물 덩어리인
시체가 사라져야 영혼이 생전에 하늘을 날 듯 이렇게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은 애물 덩어리는 불구덩이에 밀어 넣게 하고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176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뒤로 돌리려는 부질없는 노력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고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고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8장 길에서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기에.
비 내리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니.
이 오후 시간을 즐겨라.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는 시간이니.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
-한 개의 시처럼 보이는 이
잠언들의 화자는 여러 명이다.
인용한 소절별로 패트릭 피어스(아일랜드
작가)
수잔 어츠(미국의 소설가)
애니 딜라드(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미국의 말썽쟁이)
183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185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186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혹은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187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쓴다. 말하자면 나의
이야기를 하며 산다. 글쓰기는 꿈을 현실로 데리고 오는 나의 방식이다.
나에게 책이란 꿈과 현실을 잇는 통로다.
꿈은 또한 목적지다. '지금'이란 늘 그곳에 가는 길 위의 어느 지점이다. 정신적 여행자에게 현재란
과거(추억)를 떠나 미래(꿈)로 가는 길 위의 어느 곳이다.
188 '내 속에 들어앉은 그들
그들 속에 섞인 나를 증오하다가 다시 그리워하며,
그러다가 아예 이쯤에서 길을 잃어야겠다.
아마도 이곳이 내가 살고 싶은 땅이 것이다.'
이것은 신경림의 시 <내가 살고
싶은 땅에 가서>에서 데려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통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증오와 그리움 사시에, 길 있음과 길 없음 사이에 나는 있다. 길을 잃어버림이 구도의 포기일까? 혹은 다른 차원의 길일까?
189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길을 가게 된다. 갈림길을 맞을 때마다 우리는 선택한다. 우리
마음속에 그 드물게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며 자신의 처함 마음을 따는 것이다.' -백석
'내 앞에 길이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네. 그 대신 내 뒤에서 수많은 길이 닫히는 것을 보았네. 이 역시 삶이 나를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네.' -파커
파머 <루스의 이야기>
달에 가고 싶었는데 그것은 차가운 얼굴로 멀리 떠 있었다. 그곳에
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190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나는 인생이란 답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훌륭한
인생은 정의될 수 있다.'는 가정이 나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따라서 무엇이 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디엔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이었다. 길 위에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191 간혹 무너진 건물의 특별한
부분이 잔해로 남아 쓸쓸함을 더하는 것처럼 앞뒤 연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영상들이 지나간 삶의 유물들이다.
'걸어온 것에도 길은 없고
걸어야 할 것에도 길은 없다.
그렇지만
걸어온 것과 걸어야 할 것 없이는
길 또한 없다.'
-나가르주나(대승불교의 스님)
192 항해 자체가 인생이다. 그것이야말로 비옥한 정신적 토양이다. 사는 동안 생명을 모두 소모하므로
죽음이 찾아왔을 때 완전히 비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아갈 수
없으리라.
그러나 정말 내 인생은 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에서 표현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내 하루하루였다.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개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193 술을 곁들이고 웃고 떠들며
식사를 끝내면, 수북한 설거지 그릇이 쌓이게 된다. 먹고
나면 뼈만 남은 생선처럼 허망한 것을 그렇게 공을 들여 하루 종일 장만한단 말인가?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먹고 살 수도 있다. 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늘 마음 설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쁨은 그 잔치의 기름냄새와 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과 웃음과 섞인 식기 부딪치는 소음들 사이에 있었다.
194 이제는 나를 다른 사람과
바꾸고 싶지 않다. 수십 년을 다시 길들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주어진 나를 즐기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50년 가까이 살다 보면 때 타고 더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깨달음이 없지 않은 나이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러 늦게깨달음-인생에는 깨달음이 중요하다-같은 유치한 깨달음
말이다. 깨달음의 내용은 없고 그저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깨달음 정도가
50년을 산 나의 깨달음이다. 참 모자라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꽤 괜챦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머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깨달음이 없으면 인생의 반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 여든다섯 살 된 병든 할머니가
쓴 쪽지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금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여행을 할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건널 것이다. 또 아이스크림도 원 없이 먹을 것이다. 그 대신 콩은 조금 덜 먹을
것이다. 오! 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난 나에게 속한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니고 싶다.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고 더 많은 일출을 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 것이다. 내가
다시 한번 살 수만 있다면.'
196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사소한 일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면 언제나 행복할 수 있다.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자신을 용서하고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198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플루타르크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9장 집, 공간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그 주인을 닮는다.' 징기즈칸
201 그 집에는 작은 뜰이 있었으면
좋겠다. 뜰에는 단아한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밑에 작고 예쁜 평상 하나를 놓아 두었으면 한다. 그 옆으로 약간 분홍빛이 도는 줄기를 가진 마가목
두 그루를 심어두었으면 좋겠다. 정원의 가운데 쯤에는 작약과 모란 몇 그루를 심어두고 꽃을 보고 싶다. 그 옆으로 약간 치우쳐서 꽃이 작고 진한 벽돌 빛 당국화를 두 그루쯤 심어두고 싶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의 꽃밭에 그 국화가 있었는데 그 붉은 꽃의 빛깔 때문에 내 마음 또한 알 수 없는 열정과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가끔 꽃이 너무 많이 달려 무거워진 가지가 비가 와서 처지면 몇 줄기
잘라 꽃병에 꽂아두셨다. 작은 국화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분이셨다.
국화 옆으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싶다. 두어 평이면 족할 것이다. 봄에 고추를 열 대쯤 심고 조금 크면 버팀대를 해줄 것이다. 매일
아침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랄 텐데, 한 끼에 댓 개씩 따다가 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 아작거림이 매콤함과
섞여 비할 바 없을 것이다. 물론 상추도 조금 심을 것이다. 케일
같은 이국적인 야채도 두세 뿌리씩 심어둘 것이다.
마가목/기침과 가래를 없애는 약.
목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좋다.
당국화/국화과. 취국이라한다. 꽃말은 '나의 사랑은 당신의 사랑보다도 믿음직하고 깊다" 파우스트에서 마가렛이 이 꽃을 가지고 사랑의 점술을 쳐서 유명해짐. 느티나무아래 평상 마가목 작약과 모란 당국화 텃밭 상추 케일 스승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작은 기쁨을 즐기는 사람이다.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이다. 느티나무 그늘아래에 있으면 마음은 한없이 여유로워지고 솔솔 잠도 잘 온다. 책을
안고 졸고 있는 스승의 모습이 그려진다. 졸면서 스승은 다시 여행을 한다. 생각여행을 하며 이승과 다른 세상에서 자유로이 놀다가 잠에서 슬그머니 눈을 뜬다. 이곳과 저곳에 동시에 존재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느껴진다.
205 서재는 꿈을 꾸기에 좋은
곳이다.
살다 보면 탐욕에 젖을 때도 있다. 이
방은 탐욕의 때를 벗는 곳이다. 살다 보면 인간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감정적 변이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 방은 분노를 죽이는 바이고 질투와 자만을 죽이는 방이다. 살다
보면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이 방은 무기력을 툴툴 털고 걸어 나오는 방이다. 살다보면 무서워지고 비겁해지는 때도 있다. 이 방은 그것들을 벗어버리는
방이다. 그리하여 용기를 얻는 곳이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슬픔을 줄 때도 있다. 이 방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곳이다.
이 작은 방은 늘 내가 새롭게 태어나게 도와주는 공간이 될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 이 방을 '기도의 방'이거나 '면벽의
방'아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방에서 나는 늘 나와
만나고 싶다. 이것이 오랫동안 내가 바라던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207 내가 배운 최고의 교훈은
집은 다시 지울 수 있지만 터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터를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210 어머니 나무에서 나와 가지
위에 핀 꽃들은 모두 나무의 자식들이다. 끙 하고 힘을 줄 때마다 한 놈씩 나와 가지 끝에 달려 있다. 아름다움으로 꽃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213 어느 날 잡초를 뽑다가 문득
잡초 역시 생명인데, 내가 생명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에 움찔한 적이 있다. 생명을 죽임으로써 나는 자연에 반하고 있다. 갑자기 문명의 어원에 '재배하다. 양육하다'라는
뜻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문명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다. 잡초
역시 번성하고 스스로를 퍼뜨릴 권리가 있다. 인간은 그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아 잔디를 보호해준다. 재배한다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다. 이것을 문명이라 한다. 잡초 뽑기는
그러니까 문명인 셈이다.
자연 속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어디에나 이런 사이비들이 있게 마련인데 생존의 목적은
똑같다. 비슷하게 보여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가장무도회에서처럼
비슷하게 변장하는 것이다. 가면의 뒤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있다.
214 유사한 욕망들로 점령된 밭을
묵정밭이라고 하고, 그 밭의 소유자를 게으른 농부라고 말한다.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보았다.
215 내가 만일 소나무라면 아름다운
소나무를 자라는 것, 만일 느티나무라면
아주 정정한 느티나무가 되는 것. 이것이 내 욕망이었다.
217 높은 곳에 사는 맛이 이렇다. 멀리 있는 수많은 진달래들은 내 집 뜰의 진달래들과 교감한다. 이곳에
몇 그루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그 구체적 모습을 가슴에 안고 앞산 뒷산의 진달래들을 완상할 수 있다. 멀리
그들이 있고, 먼 자태는 가까이 있는 이 모습에 의해 생생해진다. 멀리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그 자태가 그리우면 가까이 가서 만져본다. 멀리 두고 그리는 마음은 그리움이고 가까이 두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워하고 또 볼 수 있으니 이처럼 다행일 수 없다. 모든 사물의 이치가 그럴 것이다. 이 때 아내는 가끔 진달래로 화전을
부쳐준다.
219 어쩌면 밝고 화려한 성격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적 불활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거나, 재치 있고 다소 수다스러운 밝은 벚꽃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고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며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그 꽃잎에는 어찌할 수 없이 작고 여리고
앙증맞고 환한 귀여움이 가득하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이유다. 일주일이면
잎사귀들이 나오고 꽃잎은 분분히 거리에 떨어져 내리고, 이내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떨어지고 난 후에도, 배설물을 보이지 않는 고양이처럼 심한 봄바람에
날려 조용히 햇빛과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221 손잡이가 긴 전지가위를 사와
두 시간에 걸쳐 나무 하나를 손질해 보았다.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것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노동은 노동
안으로 우리를 불러들인다. 노동 자체가 참선이고 수련이다. 다만
전혀 수련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게 하는 정신적 수련이다. 나는 빠져들었고 몰두했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노동처럼 그 성과가 눈에 잘 뛰는 것도 없다.
224 개 역시 사랑과 싸움을 통해
자라난다.
10장 학습
책을 통해서만 사상을 더듬는 일당들.
책을 짓눌러서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일당들.
머리를 종이 위에 처박고 있는 일당들.
부디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니체+&
229 나는 비로소 풀려났다. 위탁한 권리를 되찾았고, 무진장한 시간을 돌려받았다.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의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는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 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내가 잘하지 못하면 수업의 대부분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사회적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가족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질 것이다. 인세를
제외하면 고정적인 수입도 없었다. 자유는 또한 불안이었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 하는 부담을 안겨주었다.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하면서 완전히 내 손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는 외로움과 불안과 대변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30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보았다. 내가 가진 모든 물질적인 것, 집,
가구, 돈, 그 밖의 모든 소유물을 상실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책을
읽다가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라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발견했다. '씨팔.' 어쩌면 말을 이렇게
잘한단 말인가? 욕! 그거 참 좋은 것이다. 속에 콱 막혀 있다가 가래처럼 올라오는데 뱉고 나면 후련하다.
231 동서양을 막론하고 '씨팔'과 '퍼크 유'는 설명이 필요 없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투명하기 그지없는
통렬한 동물적 으르렁거림이다. 하고 나면 어쨌든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는가!
수 없는 암기와 화살을 단 하나의 검으로 쳐내며 하늘을 날 듯 종횡 무진하는 무협의
세계는 자질구레한 일상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심함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아주 쉽게 읽히는 판타지는
피서 방법의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서게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협지를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 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니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를 보호해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자유와 두려움 그것은 양면의 얼굴이다. 얻는 것과 놓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그로 인한 모든 책임은 선택한 자에게 있는 것이니까.
23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취미가 여전히 취미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취미가 직업으로 바뀌면서
순수한 호기심과 재미를 잃어버린 전문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경계해야 했다.
234 논다는 것은 순수하며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는다. 경제적 계산을 넘어 빠져들게 한다.
나는 나를 찾아오는 어떠한 것들과도 가능한 한 싸우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매우 호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싸움조차도
즐기려 하는 경우가 있다. 적과 논다는 것이 싸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심심하면 친구가 그립고, 그래서 그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고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235 개는 본능적으로 약한 자를
식별해낼 줄 안다. 그것이 바로 야성인 모양이다. 그때마다
나는 문화를 모르는 개에게 씩씩대기도 한다. 정말 화가 나서 그럴 때도 있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잘못을 그냥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짐짓 화를 낼 때도 있다.
236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처럼 가슴 뛰는 일이 없을 때 그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밥 한 사발에 즐거워하고
산 속을 걷는다는 것 때문에 털 하나까지 긴장하고 살아 있는 개...그 개를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38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240 학습은 가장 자기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어떻게 배우는지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옭다.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학습의 하위기능일 뿐이다. 학습의 핵심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답에 접근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다. 답은
이 탐험의 끝에 나타나는 보물이다.
241 차례를 보고 몇 장 넘겨보면
매력을 살살 풍기는 책들도 있다. 나는 그런 책들을 본다. 그러나
그들이 쳐놓은 사유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살금살금 걷듯 본다. 나는 단번에 매혹시키는 도약을 즐긴다. 물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도약을 만들어놓은 책을 애써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의 눈으로 책을 본다. 이미 마흔이 넘은 사람이다. 이미 삶의 웬만한 구석들은 혀로 핥아본 사람이다. 저자의 권위에 눌려 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해한 것을 생활
속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바쁜 일인데, 언제 그들의 중언부언을 들어줄 시간이 있겠는가?
243 낯선 소리, 낯선 얼굴, 낯선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학습의 즐거움이다. 나는 모든 배움을 삶의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삶이 아니면 음악도 아니고 소설이 아니고 철학이 아니고 경영이 아니고 이윽고 삶도 아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되었든, '우리가 결국 한 작품 속에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지적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244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245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허물을 벗을 줄 모르는 뱀은 죽어버린다. 생각을 바꿀 수 없도록 방해하는 인간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들은 이미 정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미친놈이었다.
248 니체를 읽는 것은 그러므로 피 끓는 방랑의 유혹이지만, 그를 알기는 어렵다. 잡았다고 생각하는 그곳에 허물만 남기고 이미 빠져나가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과거의 니체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읽어버림으로써
자기를 생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니체라는 이름은 어떤 정체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스스로를 불지르고 그 재 위에서 새로워지려고 한 사람이었다. 니체는
그러므로 '미래의 아들'이었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 받고 있는 시간'이다. 즉
니체의 미래는 어느 시대이든 '적절한 때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는 늘 '너무 일찍 와서'이해 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249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한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 거듭 짧게 전율해보았으면,
마침내는 박차(拍車)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 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그리하여 말 모가지도 말 대가리도 없이.'
-프란츠 카프가,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전문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버렸으면,,,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 내 삶이 되었으면
20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네
내가
허비한 20년
그렇게
애를 썼건만
내
노력은 매번 적혀 새로운 시작이 되고
매번
전혀 다른 실패였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하여,
떠나야
할 곳에서 떠나기 위하여,
황홀함이
없는 곳을 지나야 한다.
-T.S. 앨리엇
250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불가에서의 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의 삶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고 홀로 살고 정진하는 삶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
속에서 하루가 꾸려진다. 혁명은
늘 하루를 바꿔줌으로써 스스로를 실현한다. 속인의 일상을 버리고 스님의 일상을 취하는 것이 출가다. 이것은 일종의 개인 혁명이다. 그러나
출가가 깨달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심을 지키는 발심의 끊임없는 자기개혁이 구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암자에 앉아 참선에 빠지는 일상의 의무적 반복에 의해 영혼이 해탈하는 것이 아님을 뼈아프게 느끼곤 한다.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한 곳에 짐을 풀고 편히 쉬더라도 그것은 길 위에서의 숙박이다.
254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선비의 섬세함이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의 기분을 읽을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햇빛이 환하고 바람 살랑거리는 5월, 깨끗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온 여자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그 오묘한 뜻을 깨닫게 되어 기뻐하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빗소리를
듣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첫사랑 그녀에게 데이트하자고 말했을
때 환하게 웃던 그 웃음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던 그때 오후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눈이 오는 날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만년필의 잉크를 다시 넣고 아끼는 노트를 펴서 정성스럽게 옮겨 적을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무사처럼 선이 굵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마음속에
이는 두려움에 지지 않으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달랑 칼 한 자루를 메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면 바위 같아진다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작은 일에
구애 받지 않아 관대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때때로 무리 속에 있지만 그들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하나의 물방울이 이내 바다 속으로 합쳐지듯 자연 속에서 그대로 바람이 될 수 있다면 가히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선이 굵다 할 수 있다.
그가 묵묵하면 더욱 그렇다.
11장 일
261 멕시코시티의 큰 시장 그늘진
구석에 포타 라모라는 나이든 인디언이 앉아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놓았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인이 노인에게 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두 줄은 얼마요?"
"20센트 입니다."
"세 줄은 얼마요?"
"30센트."
"세 줄을 사도 깎아주지 않는
군요. 세 줄을 25센트에 주실래요?"
"안 됩니다."
"그럼 20줄 전부를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겁니다."
"안 판다니요? 당신은 양파를 팔기 위해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붉은 서라피 모포를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페드로와 루이스가 와서 '브에노스디아스'라고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버리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263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시장에 나와 하루에 20줄의 양파를
파는 것, 이 초라하고 궁핍한 일은 돌연한 에피소드를 통해 통쾌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초라한 미국인과 거대한 인디언 노인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철학의
힘이다. 나는 이 양파장수처럼 살고 싶다.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변화경영이라는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스스로의 변화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자격요건이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통렬한 아픔이었다. 변화경영전문가로서
나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규율을 만들었다.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품지기준이다. 지식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내 원칙이다.
265 글쓰기는 우선 모방이다. 많은 글을 읽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수가 없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 두루두루 알아보는 것을 게을리 할 수 없다. 사업가들은 그것을 정보를 얻는다고 표현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책읽기라고 부를 뿐이다.
사업이든 글쓰기든 가슴이 설득 당하지 않고는 자신의 철학이나 깨달음으로 전환하기
어렵다.
266 모방의 또 하나의 요령은 '한 작품을 모방하면 표절이고, 여러 작품을 모방하면 연구다.'라는 노회한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다. 많이 보고 많이 감동하는 것은
사업이든 글쓰기든 훌륭한 성과를 내기 위한 근면한 배움의 요결이다.
269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상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이야기가 되어야 실천할 수 있다.
271 나는 개인에게 있어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본래의 자기란 무엇일까?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275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276 기름진 얼굴과 거대한 뱃살
뒤에는 거대한 식탁이 있듯이,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278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279 세일즈와는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음이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아주 작은 나라는 소우주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쉬지 않고 시그널을 보냈다.
289 인기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챦은 것이다.
290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탐이
나더라도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295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목표여서는 안 된다. 내 목표는 그 이상이다.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적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296 그가 왜 화를 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그를 화나게 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내 일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짝 덮고 있는 행복의 껍질을
뜯어내는 것이 매우 적대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의 불행은 행복이라는 초콜릿으로 살짝
덮여 있었다. 그들은 그 초콜릿 덮개가 벗겨지는 것에 분개한다. 그리고
적대적이 된다. 솔직한 것이 위험한 이유다. 내 일은 예민한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 의무를 주고 할 일을 주고 숙제를 내줌으로써 그들을 못 견디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떤 압력이 부풀어올라 자신을 압박하는 것을 느끼고는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무지를 가장한 끝없는 질문을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게 하거나 결국은 분통을 터뜨리게 한 경우와 유사하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산파술이라는 약 올리는 방식 때문에 기소를 당했고 사형에 처해졌다. 적절한 적대감은 결국 본인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사용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공격하지 않고는 과거를 떠날 수 없다. 자기의 창조와 생성은 어쨌든 스스로를 공격해야 한다. 씨앗을 쪼개야
싹이 나올 수 있다.
299 그들은 더 불행해지고 불편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내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시시한 삶, 평범한 일상에 대한 분노의 불길을 부추기고 타오르게 하는 묘한 입김으로 속삭이는
자여야 한다.
변화 속에는 늘 피의 냄새가 난다.
300 혁명은 언제나 기존의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당황스럽고 길을 잃게 하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 과정에서 늘 과거와의 분쟁이 그치지 않는다. 사랑만큼 우리를
달라지게 하는 것도 없다. 사랑에 빠지면 눈조차 멀게 되니까 말이다.
하지마 사랑이야말로 많은 흥분과 미움과 증오와 눈물로 짜여진 옷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변화는 자신에 대한 치열한 사랑이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301 내 강연의 목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그들이 되어 그들의 마음으로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속에서 그들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내 비지니스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이때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03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대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일을 30년이나 했다는 사람이 투자를 그렇게 하나! 이는 내 마음에 꽂아준 최고의 칼날이었다. 타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한
가족으로 부터 날라든 한 마디. 누구는 가족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도 한다.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문이 닫히는 데에는
말 한 마디가 결정적 역할을 할 때가 있다. 말은 받은 들이는 사람의 몫이라고도 한다. 아직 나의 그릇은 분리가 가능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305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처럼
꽃은 여성의 은밀함이다. 환한
대낮에 자신의 성기를 온 세상에 활짝 펼쳐 보인다. 이 대담함이 식물의 생존과 번영의 비법이다.
306 꽃씨와 불씨가 되는 것.....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하는 비즈니스다. 내가 자연으로부터 배운 방식이다.
세 개의 에필로그
310 하루는 물결처럼 사라지고
물결처럼 다시 생성된다. 모든 하루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상징이다. 이
속절없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물결은 부침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바다로 남는다. 질서와 변화는 바다와 물결처럼 공존한다. 이것이 바로 그것들의 존재방식이다. 또한 우리의 존재방식이다. 그날 잠에서 깨어나자 아름다운 충동이
거부할 수 없이 나를 덮쳤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이 물결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창조는 바로 그 물결처럼 내 발로 일어서는 것이었다. 나의
하루, 나의 역사, 이것이 바로 그 물결이었다. 이제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311 나는 세 가지 종류의 시간의
강줄기를 만들어냈다. 하나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나는 읽고 생각하고 자연과 만나고 쓴다. 이것은 고독한 시간이다. 알지 못하는 것들의 시간이며, 그들의 정체를 눈치채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해 날마다 추측한다. 상상한다.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나는 그
세계가 움직이는 법칙을 깨닫게 된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는 내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 흐름 속에서 나는나의 세계를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며 즐긴다.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나는 이 달콤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또
하나의 시간의 강줄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늘 시간을 남겨놓았다. 친구들을 위해서도 늘
시간을 남겨놓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언제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건달이다. 낮에도 술을 마실 수 있도록 그들과 만나는 다음
시간은 비워두었다. 나도...
312 다만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들과 함께 인생의 길고 지루한 길을 웃고 떠들며 지나곤 했다. 그들은 고독한 여행의 주막이었고, 따뜻한 머물 곳이었고, 굶주린 배를 채우는 식당이었으며, 현란한 도시였다. 또한 내 외로움 옆에 서 있는 동반자였다.
세 번째의 시간의 강줄기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313 나는 '트리맨(treeman)'이다. 바람이
불면 '솨아'소리를 내며 온 잎들을 있는 대로 바람에 실어
날리는 나무다. 봄이 되면 꽃을 주렁주렁 피우는 나무다. 여름
소나기 끝에 햇빛이 다시 쨍 해질 때 초록색 물방울을 달고 서 있는 싱싱한 이파리로 뒤덮인 나무다. 때가
되면 꽃보다 더 진한 단풍으로 깊어지는 나무다. 아, 그리고
그 나무, 겨울 그 강풍에 아무 소리 않고 죽은 듯 서있는 그 나목.
그것이 바로 나다. 나는 온몸 안을 꽃으로 가득 채운 채 꽃 터지는 봄날을 기다리고 있다.
317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일이란 놓치면 '다시 튀어 오르는 공'같은 것이다.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때 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22 목적을 가진 야심작이 아니라
내가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었다. 내 생각들을 내 언어로 옮기고 정리한 것들이 내 책이다. 그러니까 하루의 흔적이다.
결과와 목적을 늘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러나 정말 나의 목적을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어떤 하루도 목적-그런 것이 있다면-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324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돈만 추구하는 기업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번 돈의 일부를 사회기금으로 내
놓았다고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더 큰 범죄를 위한 사소한 속죄의 형식일 뿐이다. 돈이 면죄부 역할을 하는 것을 타락이라
부른다. 본업으로 사회를
도와야 그 일 자체로 의미와 보람이 된다.
3. 목차와
뼈대
차례
프롤로그
1장
지난 10년
2장
마흔 살
3장
직장생활
4장
얼굴-페르소나
5장
가족
6장
자연
7장
건강
8장
길에서
9장
집, 공간
10장
학습
11장
일
세
개의 에필로그
[나의 의견]
저자가 50세가 되던 해 3월에 발간한 책이다. 그는 말한다.
'성공한 CEO만이 자서전을 쓰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쓰는 위대한 일상의 기록!'
이
책을 놀이며 유희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 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다. 그 동안 배운 학습의 노트며, 읽었던
책들의 주석이다.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 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보려는 실험이다.-
뒷면에 적혀있는 내용이다. 9권의 책을 쓰고 10번째 쓰는 책이기도 하다. 10년에 한번씩 쓰고자 하는 자선전이다. 2013년 올해가 지나면 두 번째의 자선전이 나오지 싶다. 그러나 이제 저자의 책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억으로 나오는 책이 있을 뿐이다. 이미 완성해 놓은 유고집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 동안 자신이 쓴 책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책이라고 적혀있다. 자전적 소설, 소설적 자전이라고 적고 있으나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리라. 남자나이 마흔, 고용인 인으로서의 직장인, 그리고 자유, 가족과 자연, 공부에 이르는 생각을 정리해놓았다. 거실에서 보이는 전망을 보고 집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짧은 고통속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아직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는 잘 살다 간다고 했지만 남은 이들에게는 잔인한 4월을 만들어놓고 갔다. 흐드러지는 벚꽃을 마주보기 힘들게 만들어 놓고 갔다. 꽃이 아름다워서 반짝이는 4월의 햇살이 눈부셔서 슬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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