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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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세

2012년 1월 8일 20시 44분 등록

부모님이 주신 나의 이름 : 박준영

세상에 Login할 나의  ID  : 자람속 행복 전문가

 

300일차, 평생 습관으로 가는 간이역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은 "知行合一"

 

자신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긍정 및 치열함과 여유의 변증법.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

 

1. 하고싶은일(기상시간 : 04:30)

  - 100拜 하기

  - 100일 Essay 쓰기

  - 책 읽기(고전 10권)

 

2.  300일차를 하면서 얻게될 것

 - 천직 "자람속 행복전문가" 컨텐츠 확보

 - 부족원과 평생갈 인연으로 만들기

   .부족장을 맡아 부족원님들 100% 성공에 공헌하기 위해 뛰겠소 Olleh!

 - 건강다지기 : 11시 이전에는 잠에 듦.

 - 출석부의 글귀 메모를 통한 글쓰기 발상력 증가

IP *.206.196.59

댓글 103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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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1:14:38 *.46.85.69

늘 멋지십니다~

'자람속 행복전문가'...부족장님의 꿈을 지원하는 부족원이 되겠소 Ol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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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3:26:36 *.45.80.202

이미 행복전문가입니다.

부족장으로 봉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다양한 경험과 도전이 행복을 키우고

생생한 콘텐츠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새벽에 뵙겠습니다.

날마다 홧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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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2012.01.09 08:26:57 *.246.69.27
멋진 준영님과 함께 새벽을 달리게되어 무한 영광입니다^^매일 새벽 글귀에 힘이되었고 무한 에너지가 늘 부럽답니다 300일차 새벽글귀 모쪼록 잘 부탁드려요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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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0 23:25:08 *.85.42.183

부족장님 준영님 짝짝짝 멋져요 간이역 또한 멋진표현이에요

크크 화이팅 기운찬 300일 올레 ! 항상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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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04:42:24 *.10.226.4

일지 1일차 04:30 ~ 06:30

활동내용 : 책읽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간담이 서늘한 책이다. 어쩌면 이책은 젊은 시절의 누군가에 대한 동경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모호함.

 

아내가 독일여행가는데 필독서라면서 그리 예쁘지 않은 표지의 평범한 제목의 에세이 집을 가져왔다.

여행준비도 같이 못한탓에 여행안내서를 뒤지기는 재미가 없고, 무언가 묘한 이책이 끌렸다.

처음에는 독일의 좋은 여행지를 찾기위해 포스트잇의 북마크 스티커를 사용했다.

"뮌헨, 슈바빙, 레오폴드 거리, 여행의 시"

하지만 책을 읽고난 지금 촌스러운 색색이 스티커에 붙여진 이름은

순간, 의무, 신비, 존재를 앓고 있다., 지상의 양식, 회색노트.. etc.

 

책한권을 통해 수만개의 활자를 기록했음에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에 끌림이 온다.

 

서른한 두살의 나이 어떠한 의도에서 자살인지 모르나, 1965년 1월 10일 세상을 떠난 천재 작가 전혜린.

이제 서른세살이 된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자신을 다시한번 채찍질 하게 되는 순간이다.

 

간담이 서늘함은 스쳐가는 문구들이 내가 잠시 멍하고 있을 때 혹은

집에 들어가는 순간,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을 때

무언가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 때 밀려오는 그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참 맞 닿아있다는 점이다.

 

이룰수 없고, 나의 선택에 따라서 모든 자유를 가질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진짜 자유로움인지도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상황.

 

톰소여의 모험을 쓴 작가 마크트웨인의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의

허탈함과 수미쌍관법처럼 묘하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저,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기계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부모에게 부여받은 기질과

그가 경험한 모든 찰나에서 형성되는 것에 불과하며, 자기 의지는 전혀없다.

누군가 선행을 하고, 착한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환경에 의해 형성된 자기만족을 위한 기준에

부함하는 행동을 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불쌍한 노파가 추운 겨울날 어두운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마차를 타고 가던 건장한 젊은이가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그가 선의지를 행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에 그것이 더 만족스럽기 때문이라는 논리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의 편함보다는 노파의 불쌍함을

지나치게 되어 나타나는 불편함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자기 만족의 논리이다.

 

인간이 단지 기계가 불과하던, 혹은 모든 것을 다 결정할 수 있는 소우주이던

우리는 그렇게 철학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고, 환경과 반추할 시간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하루를 살아감에 일을 할때 부담감이나,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하나 하는 안도감도

같은 마음의 자리에서 수만가지 사람이 동거하듯 오만가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면서 자신의 삶을 내던진 작가 전혜린

그가 남기고난 유작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중들에게 지금까지도 울림을 주고는 있으나,

그의 가장 소중한 생의 동반자 그의 남편, 가족, 부모에게는 씻을 수 없는 슬픔의 첨탑을 가슴에 드리운 것

 

삶이 "살아간다." "사람"이라는 것을 참 닮아있는 닳고닳은 단어라는 미묘한 줄다리기 속에서

현재 내가 바라는 삶이라는 것이 나의 자유를 위해 살아가고, 삶의 간섭과 회절이 없는 그 누군가의 만족을 위한 삶의 기준이 될 것이가. 아니면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살아야하는 기준에 삶이 될 것인가.

 

그 가늠할 수 없는 해답과 일관성 없는 나의 선택들 속에서

생의 고민을 다시한번 묵묵히 해본다. 그렇게 글이 마음대로 쓰여지지 않음은 어색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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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04:59:03 *.10.226.4

일지 2일차 활동: 없음.

 

단군의 후예 게시판에는 11시에 잠들겠다고 잘도 써놨구만!

지엄하신 나의 와이프께서 나에게 고한 이야기.

생의 고민을 하던 1일차와 다르게 11시 잠들시간에 술자리를 옮겨서 이동한 나의 잘못

술에 쩔어서 겨우 일어나기만 했다가 비몽사몽 출근한

지행합일이 아닌 무지랭이같음.

 

부쩍 추워진 날씨에도 작은 스토브 하나에 무선 인터넷이 안되는 컴퓨터를

회색빛 랜선에 외줄타기로 기대어 책상에 앉았다.

스토브는 "강"으로 틀어놨다. 이 스토프가 있는 쪽은 가끔씩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도 같고

의자가 혹시 녹아내리려라? 하는 이상한 착각속에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스토브의 자리가 어쩌면 손에 잡힐듯 이뤄지지 않는 삶과 참 비슷하다.

내 몸의 왼쪽 오른쪽에 놓으면, 그 쪽만 복사열을 받아 따뜻할 것이고 다른 한쪽은 나의

몸을 돌리지 않으면 상대적인 열의 박탈감과 추위에 떨 것이다.

그렇다고 몸의 뒷편에 스토브를 놓으면 의자 받침대에 걸려서

사용하는 전기값 대비, 높은 효율의 복사열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몸의 정면에 두어서 회전을 하자니, 컴퓨터를 놓고 그 가운데 자리하기엔

나의 그리 길지않은 팔다리에 한숨을 쉬어본다.

 

그래서 벽걸이 형으로 스토브도 나왔고, 이동을 쉽게하려고

가볍게 만들거나, 바퀴를 끼워넣은 스토브들도 나오나보다.

 

무지랭이 같은 2일차를 반성하면서 쓰린 속을 달래본다.

한시간 남짓 지금 됐을까? 지금 몇시일까 궁금해진다.

 

스토브의 위치만큼이나 발만 동동구르는 나의 모습에

한번쯤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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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2012.01.11 07:37:13 *.158.38.150
준영님~~ 반갑습니다! 100일차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0일차입니다. 준영님의 간이역에 저도 동행하는 기분입니다. ㅎ 부족장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해요^^ '자람속 행복' 너무 좋아요~~ 닉네임처럼 늘 일상이 행복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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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희
2012.01.11 07:44:14 *.158.38.150
수정이 안되네요.ㅠ 글쓴이가 궁금하실거 같아서..ㅎ 정은희 예요. 준영님~~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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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1 23:45:46 *.44.190.25

언제나 그랬듯,

준영님은 300일을 통해 더욱더 강해지시겠어요.

200일차에도 그랬지만 깊이를 더해가는 준영님의 일지를 보며

나아가는 일에 대한 확신을 얻고 갑니다.

응원합니다! 함께하니 새벽이 든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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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2 23:15:43 *.119.39.217

부족장님~!

300일차 함께해서 반가워^_^

함께 화이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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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04:49:37 *.10.226.205

일지 3일차 활동내역 : 일지쓰기, 책읽기 (잊혀진 질문)

 

단군일지 두개를 끄적거렸다. 약간 정신없는 속을 달래며,

지난번에 읽었던 책 뒤에 무엇을 읽어야 하나 책장을 보다가

손에가는 "잊혀진 질문"

 

나의 귀중한 멘토가 얘기했던 "시장, 비즈니스와 눈높이 맞춤"에는

전혀 동떨어진 책들. 인간이란 무엇인가. 잊혀진 질문, 그리고 아무말도.. etc

 

생에대한 진지한 고민은 내가 하루를 살아가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찬물 한바가지요.

그래도 제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는 어린아이 떼쓰기 같다.

 

하지만, 회사에서 작은일 하나, 단순한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해

얼굴이 찌푸려지고, 크게 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인간이기에 코앞에 현실과 먼 미래를 잘 구분해야겠구나 생각된다.

 

"행복" 이라는 것은 내가 예전에 지금도 얼굴 벌게지는 군인시절

친구들과의 꾹꾹 눌러쓴 편지에 초코파이 하나와도 같고

정신없이 일어나는 남편에게 크린백 봉지에 쌓여있는 사과 두쪽과도 같다.

 

Happiness - Happen의 어원을 가진 것.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획득은 어려워도 발생은 쉽다. 그냥 웃고, 그냥 행복한척 하는 것

 

예전에 물에 빠져 죽을 뻔했을 때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매몰차게 차였을 때

갑자기 어떤 스펙트럼처럼 오만가지 사진들이 나만의 극장에

필름을 삽시간에 흩어놓았다.

 

그 기억들이 그 시절 아픔과 후회의 순간이 었지만.

지금은 그게 나에게, 혹은 나에게 그것이 있었기에

몇년된 사진의 색깔이 자연의 풍화작용으로 뿌옇게 되었을 때

좋은 기억으로 생각의 물꼬를 띄우게 되었다.

 

'잊혀진 질문'에 답을 달기는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기억마저, 자신마저 조절하기 어려운 사람이

인간관계속에서 주도권을 갖고, 지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임에도

인간에게서 관심과 주의를 받았으면 하는 역설.

 

나만의 프리즘이 중요하다고 하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머리와 영혼을 자극하는 좋은 말들 덕분에

책들의 귀퉁이가 두툼해지고, 본문에 색색이 도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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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05:01:10 *.10.226.205

단군일지 4일차 활동상황 : 회사에서 일함.

 

휴가가 딱 하루 남았다. 그동안 정신도 없이 휴가 준비도 하지 못하고,

꼼꼼하게 하나하나씩 챙기는 마누라 덕에 호강한다 싶다.

휴가를 적절하게 가기 위해서 회사수첩에 이리저리 할일을 적는다.

 

밤 늦도록 맥주를 먹었던 탓에 4시간도 잠을 자지 못했지만,

난 정말 놀러 가기 좋아하는 것 같다. 4시40분에 부랴부랴 집을 나와서

회사 버스 타기 위해 양재역으로 향한다. 보통 새벽에 출근을 하면

회사 버스가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생각의 두바퀴 자전거가 나의 뇌를 계속 질주하고 생각의 꼬리를

물고 뉴런 시냅스 신경전달물질을 동시다발적으로 내버린다.

 

가장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남의 힘을 빌려 하는 사람이다.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돛단배같은 자신의 능력만이 아닌

항공모함과 같은 크고, 다양한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전하는 나의 멘토에게 다시한번

부탁에 미안해하는 나에게, 합리적이며, 긍정적인 부탁은 관계를 돈독하게 혹은

서로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머리속 생각의 흐름을 다시 정리한다.

 

정말 부랴부랴 일을 마쳤다. - 지금 생각해보니 두개정도 메일을 덜 보내고 왔더구만!... - 이런...

 

이 회사라는 조직에서 내가 배우게 되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

그 체계에 큰 영향을 받아 나의 체계가 어느정도 틀을 만든다.

언제고 누구에게 싫은 소리하나 못하던 나는

아전인수격 혹은 자위와 같이 돛단배가 되면 안되기에

합리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전화통에 불이 나게 싸우기도 한다.

끊으면 어짜피 월급 쟁이인데 뭘 이렇게 눈을 부라리고 침을 튀기면서

관계를 이용한 부적절한 논쟁을 벌이고, 마음을 후벼파는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합리적 긍정과 근거없는 낙관은 구분되어야 한다.

나에게 가장 커다란 생각의 변화 방법.

미래를 밝게 보지만, 일분일초 행동하는 나에대한 긍정적 비판.

합리적 요구를 함에도, 수용과 포용할 수 있는 능력

 

회사가 나에게 정말, 연봉보다 오만배 중요한 것들을 가져다 준다.

 

감사할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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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1:52:43 *.253.23.194

단군일지 5일차 활동내역 단군일지쓰기, 책읽기, KPop Star 영상보기

 

오늘 벌써 여행가는 날이다. 어제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상쾌하던지

아침에 절로 눈이 떠졌다. 며칠 연속 피곤한 시간이었지만.

13일 금요일은 다르게 시작했다.

이런저런 채비를 했다. 아내는 역시 여행에도 패션을 중요시한다.

원래 가벼운 몸을 좋아하는 나는 짐을 최대한 줄이고자 했으나, 캐리어를 두개 가져가지

안을수 없는 상황이다. - 이제 와서 알았는데 짐을 줄인다고 아내께서 속옷과 양말을 확 줄이여서

매일 화장실에서 빨고 있다. ;;;-

 읽고 갈 책을 한권씩 가지고 공항버스에 올라탔다. 잠이 들어깨보니,

금요일 공항가는 버스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있고, 짙은 안개때문인지 인천공항은 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12시간 가까이 되는 비행시간, 패키지 여행을 온사람, 무슨 일이지만 어두운 얼굴을 한 사람

아이패드, 맥북등을 사용하는데 정신 없는사람, 시작부터 잠에 들어 기내식이 나옴에도

정신없는 사람. 기내식을 먹고 우리 부부는 잠이 들었다.

 Air Show 기준으로 울란바토르 - 정말 가고 싶은곳 - 10km 상공쯤 일어나 주섬주섬

책을 읽기 시작했고, 아내는 여행일정을 다시한번 보기 시작했다. 150page 남아있던 "잊혀진 질문"

  이 여행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목적성과도 많이 연결되는 여러가지 문구들이 나온다. 근래 읽었던 책들중에서

가장 페이지마다 표시, 1/3정도 페이지 귀를 다 접어 놓았다.

 너무 좋은말들의 향연이 지속되었다. 신은 존재하고, 인간의 자신의 존재가치가 있다. 영속적인 질문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공자님 말씀이었지만,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비유덕에 참 쉽게 읽히는 어려운 주제의 책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죽을 때 신부에게 물어봤던 수십가지의 질문들. 예를들어, 왜 악인이 성공하는 경우도 많은가?

테러나 살인 같은 중대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등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가지는 질문들이다.

 "자유의지" 신이 인간을 너무 사랑해서 주었다는 "자유의지"로 인해 인간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되었다.

그때부터 어쩌면 비극은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세상에서 자유의지의 올바른 - 올바르다는 가치평가기준은 쉽지않다. -

활용만 한다면, 영속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나름의 대답이다.

 

 여행에서 얻고자 했던 행복 이라는 단어와 자유라는 단어

여행이 곧 자유임에도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불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행복임에도, 무엇이 일어날지 모름에 대한 걱정

 

 12시간의 긴 시간을 거쳐 도착한 파리, 12시간을 훌쩍 날아왔음에도 아직 여기는 해질무렵

인간이 알 수 없는 오묘한 자연의 세계, 낮과 밤, 엘니료와 라니냐가 공존하는 세계.

 무슨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불어가 나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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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2:34:05 *.253.23.194

단군일지 6일차 활동내역 책읽기, 여행지 검색하기

 

프랑스에 대한 인상은 기내에서 부터 시작했다. 내 옆에 앉아있는 남자둘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 여자 한분이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아무말없이 기다리고 있는다.

 

 샤를 드골공항에 내렸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해는 이미 지고 없었고, 많은 불빛들이 함께했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파리. 그 공항의 깔끔함과 예술적인 멋스러움을 기대했지만, 역시 기대한 바와는 차이가

있었다. 짐을 찾고, RER을 탔다. 그리 깔끔하지 않고 여기저기 그래피티가 있고, 동양적인 잘못된 인종관이

남아있는지, 흑형들과 히스패닉이 대부분인 기차안에서 짐을 단단히 부여잡지 않을 수 없었다.

 Gare de Nord(북역)에 내렸다. 예상보다 지저분한? 도시의 모습에 그리 정돈되지 않은 길거리

파리의 첫인상이었다. 역전앞이라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자유여행에서 항상 느끼는 첫날의 부담감.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많은 짐들을 어여 숙소를 찾아 옮겨놓고 이동해야할텐데.. 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멀게는 숙소반대편 500m 이상까지 걸어갔다. 점점 주소와 거리가 익숙해지고, 규칙을 찾아

 파리의 숙소 ibis 호텔에 도착했다. 어후,기운빠지네. 도쿄만큼은 아니어도 작은 도시의 좁은 체인호텔의 모습을

보여줄만한 깔끔한 곳이었다. 5층 건물 건너편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똑같이 생긴 건물이 하나 서있다.

 오늘의 목표는 아내의 가방 사냥. 8시가 다되어서 나온 숙소근방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고.

호주에서 느꼈던 도시의 고요함, 안락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반면 활기차서 기분이 좋았다.

파리의 지하철은 예전모습 그대로, 흡사 놀이동산 모노레일과 같았다. 분위기는 그다지 깔끔하지 않았지만,

가방을 사기 위한 - 현금을 빨리 써버려야했다. - 부부의 노력은 Alma Marceau 라는 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흘렀다.

헤매다가 매장을 겨우 찾았더니, 이미 닫은 시간.. 아쉬운 마음을 부여잡고

 조금 걸어서, 그 유명하다는 샹젤리제 거리에 입성했다. 9시가 훨씬 넘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파리에게 가장 넓은 도로라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의 패션은 외국에서 보기드물게 세련된 느낌을 받았다. 단색의

모직코트 - 여행객이 아니고는 두툼한 패팅잠바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 에 높은 구두를 신은 사람들.

 밝은 거리의 조명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활보하니 이제서야 파리에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푸조매장등 깔끔한 인테리어의 도시를 감상하다, 역사적이라는 개선문 앞에 섰다. 생각보다는 웅장한 크기에 놀랐고

도로 한가운에 개선문을 중앙에서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 한컷 발사했다.

 파리의 도로는 여기저기가 아주 잘 뚫려있었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즈벨트역을 사이에 두고, 광장이 잘 연결되어 있었고,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숙소에 들어왔다.

 파리의 첫날.

 다양한 인종과 똘레랑스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좋은인상과 더불어,

 생각보다 정신없는 도시의 모습, 깔끔한 주택가는 전혀 없이 냄새 - 오줌냄새, 담배냄새, 향수냄새 - 가 겨울임에도

독특하게 스며지는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겨우 첫날 저녁 2시간 남짓, 그것만이 파리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는

아닐 것이다. 그 다양성과 더불어 멋진도시라는 이유는 내가 조금씩 찾아내야할 풍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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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13:11:07 *.253.23.194

단군일지 7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정리하기, 경로찾기

 

 호텔에서 처음 아침을 먹었다. 여행자가 가득한 호텔이라 그리 기대하지 않았지만,

육해공 모든 음식이 맛깔나다는 프랑스에서 저렴한 호텔이었지만, 명성에 걸맞게 괜찮은 맛이었다.

06:30 동양인의 부지런함인지, 시차적응의 실패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식당문을 열고 들어간 첫손님이었다.

주섬주섬 음식들을 먹고, 프로마쥬라는 프랑스 치즈를 몇개 입에 넣었다. - 한식이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여튼 맛나게 음식을 먹고, 크로와상 두개를 몰래... 챙겨서 가지고 나왔다.

 오늘은 오르세 미술관에 가려고 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 대부분 전시된 곳으로

루브르 - 유명하다는데 가야할지 정확히 모르겠다. - 박물관 보다 더욱 친숙한 작품이 많다고 들었다. 멋스럽게

지도를 펼치고 퐁네프다리쪽으로 향했다. 오늘부터 사용하기로한 로밍무제한 기능으로 와이프의 갤럭시 탭이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간지성에 대한 침해와 발달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내가 파리에서는 이방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오르세 박물관을 가는 멋진 방법을 구글지도에 맡겨서

열심히 찾아 볼 수 있었다.

 토요일의 한적한 아침. 겨울날씨이고, 8시넘어서 해가 뜨는 탓에 우리는 퐁네프다리에서의 일출 비스무레한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영화화되고, 그 유명하다는 퐁네프다리는 아침이라 차가운 돌의 모습을 간직했지만 사방이

멋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쌓여있는 괜찮은 풍경을 간직했다. 여기서 한껏 키스라도 해야할까 상상만 하다가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서 이동했다. 조금 헤맨탓에 조금만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정말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의 이 장소는

유럽여행에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여러가지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갱 고흐 세잔 드가 마네 모네, 그림이 점점 사실위주에서 해석위주로 바뀌어가는 모습

시대적으로도 절대왕정이 지나 공화정이 들어서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욱 늘어가던 이시기. 정말 잘 그리고,

사실처럼 그리는 모습이 상징주의를 시작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기만의 화법을 가진 - 내 ID가 무엇이냐, 그것도 역사와 기억의 망각조차 이겨내는 그 작품과 스토리 - 작가들

물감을 정말 많이 사용했다는 고흐, 강렬한 색채를 가진 고갱 - 솔직히 그림보니, 못그렸던데.. - 색의 변화를

민감하게 나타낸 마네(?)맞나..

 여튼 그런 화가들을 보고, 이제 나에게 멋진 화가가 누구인가를 찾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나에게 비치는 인상적인 작품은 보통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진 그림이었다. cain 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성경에서 나오는 카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나타나 그림이었다.

- 지금 메모를 봤는데 이게 작품이름인지 작가이름인지 알 수가 없네. - 해석상으로 자연주의라는 단어를 가진

이런 보통사람들을 나타내고, 진솔한 모습이 보여지는 그림들이 내 맘에 와닿았다. 나야 전혀 그런 그림 지식은

없는 사람이지만, 나에게 끌린다.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라는 그림은 나의 살아가는 방식과도

어느정도 상관이 있다고 하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안에 고통이 있다라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생의 소중함과 고단함은

그 어떤 꾸밈에도 저촉될 수 없는 삶의 전체이며 끝자락이다. 그것을 어떤 왕족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

이리저리 꾸며낸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해석이 들어가야하는 그림들이 아닌,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지는

그림들이 참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미술사 적으로, 혹은 지금은 당연하지만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 평민을

그린다던지 하는등 - 일들을 처음으로 그려낸 것이 선구자적 화가들이 었다니, 그들의 상상력과 자유함에

부러움을 느낀다.

 이런저런 마음의 감동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이번 여행의 중요 목표지점 몽테뉴가의 가방 매장

오늘은 열었더라.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정말 사람이 많았다. 이 비싼 것을 사려고 이리도 사람들이

많다는 말인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받았던 어떤, 안락함과 사람냄새와는 크게 대비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한비야가 7급공무원이 되고싶다는 젊은이에게 꾸지람을 주어 갑론을박을 샀던 사건을

비교했을 때, 내가 얼마나 세상적으로 큰일을 하고, 의미가 있는일을 하느냐도 참 중요하겠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다른 것으로 봤을 때,

 반대로, 나의 가정을 행복하게 영위하고, 나의 가장 사랑하는 와이프의 희망을 이뤄주는 것도 그 못지않게

- 혹은, 그보다더 훨씬 - 중요한 것이 당연하다. 밥과 존재사이에서 갈등할 때, 너무나도 존재만을 찾아가다

나중에 그것을 함께할 사랑하는 가족이 없다거나, 나의 부족함을 보듬어줄 따뜻한 아내가 없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삶인가를 다시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여튼 그런 1초도 안되게 정리가 되버린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 그 가죽으로된 가방을 사고나니

복대를 더이상 찰 필요가 없었다. 가진 현금의 95%가 소비되는 시점이었고, 인증샷까지 찍는 아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건네지 안을 수 없었다. 일단 너무 허기지더라. 돈도 나가고, 하도 오래 걸었더니.

 그래서 아무대나 찾아간 레스토랑.

고즈넉한 분위기에 안락한 파리의 레스토랑 다웠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점원의 인상이 참 멋스러웠다.

무엇을 시킬까. 불어로만 가득한 메뉴판을 들었다. 음... 일단 스파게티 하나 시키구.

아! 푸아그라가 있네! 이거 시켜야지.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거위간 요리 푸아그라.

대체 어떤 맛일까. 우리나라 순대의 간과 어떤 차별화 포인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음식이 도착했다.

맛있는 음식은 아내에게, 토마토 파스타는내가, 푸아그라는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가 한입 잘라주었다.

음... 괜찮네, 살살 녹아.. 음... 근데..좀......

뒷맛이 석연치 않았다. 아내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얘기를 많이하거나. 나의 것을 먹거나 해서

양이 줄지 않는다.

음..푸아그라 내가 먹어볼께.

한입을 더 썬다. 음.. 부드럽네.... 움.....

점점 더 약간의 동물 비린내와 결부된 설명하기 힘든 맛이 시작되었다.

딴청을 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에서 푸아그라 요리를 좀 찾아보라고 했다.

콜라를 한모금 먹었다. 입이 조금 청소되나 싶었다. 한 반정도 먹었다.

아내가 사진을 찍어준다기에 한껏 푸아그라를 잘라서 먹었다.

잘나왔다.

사진도 잘나왔는데

음식물을 먹다가 입에서 나왔다.. 욱!

옛날에 낙지 대가리를 덜 익혀서 먹을 때 그 트라우마와 비슷했다.

어... 도저히 못먹겠다...

이렇게 허기진 배인데로 불구하고 멋스럽게 찾아간 레스토랑의 푸아그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가까스로 목숨만은 구해주었다.

소주를 3병은 마시고 난뒤 다음날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계산하자.. 아내도 걱정이 되었는지.. 알고보니, 푸아그라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더라.. 그렇구나..

여러 상황상 숙소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방의 도난위험, 나의 상태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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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2:51 *.10.226.54

단군일지 8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여행의 셋째 날, 오늘은 파리라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는 절대왕정의 부유와 사치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을 찾아갔다. 30분 정도 연착된 열차에 약간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곳의 똘레랑스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 외국인이 많긴 했지만 - 기다렸다. 1시간 남짓 교외로 나가서 베르사유궁전 앞으로 갔다. 역시 명불허전답게 시작부터 금테를 두른 문과 루이 14세 자신의 멋진 모습을 조각한 동상이 나왔다. 성 내부는 3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색깔을 유지했다. 그렇게 영원할 것 같은 절대왕정은 루이 14세 ~ 루이 16세 겨우 3대만 이어지고,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세운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앙뚜와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며 - 참 익숙한 표현이다. -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는 항상 역사를 보며 교훈을 얻고자 한다. 태평성대일 때가 가장 큰 위기이고, 가장 큰 부패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그렇게 된 줄을 알지 못한다. 내가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는 주변에서의 평가와 찬사, 대적할 상대가 없을 때 인간이 가져오는 공허함과 함께 자리하여서, 다른 것을 탐닉하게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렇게 황금을 두르고, 귀중한 대리석을 가져다가 호사롭게 지어졌던 왕궁은 그들이 계속 사용하지도 못하고, 후세에게 잘 물려주어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후세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웃지 못할 광경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내부는 너무 넓었다. 동양이 폭포라면, 서양은 분수라고 하듯 동양은 자연의 힘 중력에 순응하여 경치를 만들어 냈다면, 서양은 자연을 이겨내고, 응용해서 경관을 만들어 냈다. 분수라는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유명한 발명품, 베르사유에도 빠지지 않았다. 또한, 조경. 지금까지 봐왔던 어떤 조경보다 각이 제대로 서있었다. 나뭇잎 하나, 가지하나라도 줄맞춰져 있었다. 나무의 아픔은 전혀 알지 못하고, 나무의 모양을 삼각형, 둥근 원반모양으로 잘 가다듬었다. 냇가가 아닌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운하가 가운데 자리하고, 그 위로 조정선수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간 걸어가 입장료를 더 내고 들어간 소위 별궁을 찾았다. 이곳에서 베르사유만의 멋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쁘티 트리아농 - 루이15세가 자신의 정부를 위해 만들어준 궁전, 나중에 루이 16세가 마리앙뚜와네뜨에게 선물함 - 과 이어진 서민의 생활모습이 너무나도 감동적이었다. 소위 왕비의 촌락이라는 넓은 자리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왕비의 시중을 들기 위해 모여 있는 장소로 생각되었고,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었다. 쁘티 트리아농에서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자마자 약간의 연못과 함께 농장과 서민풍의 집들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때마침 비춰온 지는 햇살이 색깔을 더 아름답게 해주었고, 눈부시도록 깃털이 하얀 커다란 닭과 울음소리가 들리고, 여러 가축 떼가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이 모두 짜여놓은 각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라지만, 이것이 현재 프랑스 농촌의 모습이라면 다시 한 번 시간을 내어 그 모습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오솔길을 따라 주욱 걸어가니, 한겨울에 푸른색 풀밭이 나왔다. 만화에서 볼 것만 같은 커다란 나무들과 함께 펼쳐진 녹색의 풀밭. 감춰진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고, 참 괜찮았다.

 나오는 길에 어디로 가야할까 고민을 했다. 원래 가던 길로 갈 것인가. 혹은 지도에 나온 다른 길로 한번 행군할 것인가. 왕궁 근무자에게 물어보니, 다른 쪽으로 가게 되면, 파리로 돌아갈 교통편이 없다는 것이다. 역시. 그 다른 길로 가기로 바로 결심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남들과는 다른 여행길을 찾는 두 번째 시간이었다. 베르사유궁주위에 살고 있는 파리교회의 삶은 어떠할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아.. 이곳이 정말 파리구나’ 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파리의 깔끔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 여기다 있었다. 파리는 정말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참 건물들도 낡고, 오래되고, 좁았다. 여기서 그 국민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다 살고 있을까?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서? 그게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일요일 오후, 한가롭게 조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가족들과 공원에서 애완동물과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쓰레기 하나 없는 거리와 깔끔하게 잔디와 도로로 잘 구획된 마을의 형태. 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금은 추운날씨여서 동네를 구경하다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2주 동안 프랑스 세일기간인지 가족단위의 쇼핑객들이 줄을 이었고, 여기서 우리도 프랑스에서 싼 몇 가지 브랜드를 구입했다. 또한, 지금도 여행하면서 유용한 과자도 샀다. 재미있는 것이 정말 대부분이 백인들이라는 것. 경제학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구획을 이루면서, 자기들만의 촌락을 이루며 산다는 것을 한눈에 확인 할 수 있었다. 어떤 프로세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파리의 복잡함은 이제, 생업에 종사할 때나 하는 것이고, 가족을 위해서 - 안 그래도 6시가 되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 는 좋은 환경의 주거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안쪽까지 구경을 갔다가. 다시 RER을 타기 위해 몸을 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그냥 가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복습도 물론 중요하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평생에 대사 오기 힘든 곳이라면 얼마나 소중하고 애처로운가. 여행할 때마다 중간중간 뒤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 앞선 모습 말고 내 뒤편의 경치가 훨씬 더 아름답지 않을까? 우리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시간이 빨리 흐른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타자니 않고, 예전의 기억들이 추억거리가 되기 때문에 한 것 없이 시간이 지나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중에 아내와 내가 여기의 쓰여진 여행기들과 잘 선택해서 인화된 사진을 보며 추억을 이야기 한다면, 그 시간의 공유와 나눔만으로도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잠시 생각해 보고, 지난번에 썼던대로, 한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세상 모두를 다스리는 것보다 훨씬 소중하다. 오르세 박물관에서 봤던 인상주의화가 혹은 사실주의 화과 구스타브 쿠르벵은 세계의 기원이라는 작품에서 세계의 기원을 여성의 생식기라고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근데 그게 사실이다. 여성이 없었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수십억의 인구를 이루고, 기술을 발달과 지구적인 삶을 가져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그러한 생명의 근원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작은 사회, 가정을 잘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정을 올바른 가치관을 이끌어야만, 그것들이 결합되어 촌락을 이루고, 나라와 세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요새도 매일 고민하는 것 혹은, 균형을 어찌하면 잘 맞출까 고민하는 것이 그러한 가정과 일사이의 균형과 상향 고도화이다. 내가 태어나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불가분의 관계임은 극명한 사실이다. 어째서 이 둘이 따로 갈 수 있겠는가? 다시 한 번 가정의 소중함을 따져본다.

 여튼, 그렇게 안락한 프랑스 모습을 뒤로 한 채, 낯설게 다다른 곳은 프랑스의 새로운 도심지 라데팡스이다. 라데팡스.. 나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단어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곳인가? 아니면 뭐 다른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인가? 생각하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프랑스에서 새로운 도시를 예술가들의 창조력과 결부시켜 만들어낸 곳이라고 했다. 정말 복잡한 지하철에서 나와 지상으로 올라가니, 끔찍이 조용한 도시가 나타났다. 이곳은 모든 차들이 지하로 다녀서 절대로 소음이 나오지 않았다. 가끔씩 지하에서 들리는 덜컹 소리가 있을 뿐, 정말 잘 구획된 이곳. 110m의 신개선문이 하얗게 드리워진 곳

 신개선문과 신상젤리제 거리를 멀리 진짜 개선문과 연동시켜놓은 정말 명소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도심지. 높은 건물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고, 참 시원한 새로운 도시의 모습이었다. 마천루들마저 너무나도 잘 디자인 되어있어, 파리의 독특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시간이 많이 되어, 사진찍기가 참으로 어려웠지만,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고 재미있게 보냈다. 도시의 소음이 이렇게 없다면, 도시 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서울을 떠올려보자, 7시만 되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과 경적소리, 사람들의 바쁘고도 바쁜 발걸음소리 이것들이 잘 만들어지고, 풍악을 울려 하나의 도시의 소리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로 따지자면, 심벌즈(경적소리)와 바이올린(엔진소리)이 없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람의 소리로 대체하고 있으니, 그것도 하나의 매력이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파리 최고의 야경 에펠탑이었다. 예술가들이 그렇게도 반대했다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이것들은 예술가들의 고집스러움으로 반대되었지만, 그런 인프라를 갖추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변모는 가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일을 할 때에도, 어떠한 시스템과 인프라를 내가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모든 정보들이 여기에 쏟아질 것이고, 참 정말 대단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날씨 8시가 다되는 시간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을 찾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정말 거대한 크기의 에펠탑. 이것이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 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이렇게도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니 상상 이상이었고, 그 빛깔이 참 아름다웠다. 가까이서 볼 때 - 카메라에 한번에 담을 수 없을 때 -, 한걸음 떨어져 볼 때 - 에펠탑이 사진 한 컷에 들어올 때 - 모두 정말 멋진 모습이었다. 정말 이것을 만든 뒤에 벌어들인 그들의 놀라운 비즈니스효과는 차지하더라도, 정말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고 조형물인가. 파리에서 돌아오는 그 날까지 가장 잊혀지지 않는 에펠탑의 모습은 아내와 나의 사진을 잘 찍기 위한 도전에도 잘 나타났지만, 그 자체 존재만으로도 참 귀중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연신 셔터를 눌러댔고, 행운스럽게도 8시 정각에 에펠탑에서 빤짝이 쇼를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 처음으로 동영상 기능을 찍을 정도로, 보존하고 싶은 기억이다. 그렇게 즐겁게 한때를 보내고 늦은 귀가를 통해 파리의 아쉬운 마지막 밤을 마무리 했다. 돌아오는 길 피곤했을지라도, 여정이 힘들었다는 것은 보람되었다는 것과 연결될 것이다. 일의 수고함과 소중함, 생의 고통에 대한 연단과 극복.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일까? 하도 평화로워서 혹은 하도 풍요로워서 행복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의 역사가 아닌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할 때, 어느 한 곳을 더 본다는 것은 강력한 끌림과 도전임에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삶의 모습에서도 이러한 긍정의 효과들이 잘 어우러지길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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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4:27 *.10.226.54

단군일지 9일차 활동내역: 여행기 쓰기

 

 이제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어딜가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프랑스하면 루브르 박물관이다 싶어 그곳으로 행선을 정했다. 숙소의 짐을 정리하면서 파리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아쉬움과 설렘을 고스란히 모아놓았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은, “정말 잘 만들었구나“ 였다. 어느 하나 정성을 드리지 않은 곳이 없는 건물의 벽체와 현대식 피라미드 구조물의 소통 속 조화. 역시 이름값을 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잘못 길을 들었다간 길을 잃을 정도로 넓은 구역이었고, 내가 봤던 그림인가 잘 모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주로 유럽의 회화를 중심으로 보았고, 나는 추가로 원시미술 작품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갔다. 물론 우리가 꼭 봐야하고, 사진에 남겨야 한다는 루브르의 자랑 모나리자 그림과 비너스 조각은 인산인해를 조금이나 피해서 충분히 잘 봤다. 그 두 가지 작품에는 정말 겨울이고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왔고, 특별히 줄을 서서 관람하라는 안내까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이 미술사 적으로 혹은 서양의 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나에게 큰 감동이나 느낌을 주기에는 어려웠다. 나의 마음을 두드린 첫 번째 그림은 전쟁의 장면을 묘사한 그림. 갑자기 말 좋아하는 프랑스 큐레이터가 와서 계속 말만 걸지 않았다면 - 그는 한국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한국영화를 많이 봤는데 참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계속 이 그림에 대한 느낌이 어떤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고, 그는 친절하게도 계속 자신의 얘기를 해나갔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그림을 계속 지켜봤을 것 같다. 전쟁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삶에 대한 갈구를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얼마 전부터 보고 있는 사극에서 전쟁을 시작하려는데, 왕이나 장군들은 ”그 후연의 왕에게 나의 무서움을 꼭 알리리라“ 혹은 ”이번에는 기필코 복수해주마“라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애민정신이나 부국강병은 중요하지만, 그 전쟁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수많은 병졸들의 삶은 과연 무엇인가? 현재 60억 인구 1명의 삶이 1/60억 만큼의 중요도가 아니라 삶은 all 아니면 nothing의 가치를 가진 것이다. 그림 속에 서로의 머리와 입을 물고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의 모습에서 삶의 가치와 진정성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었다. 아수라장의 전쟁터에서 그 시간만큼은 어떤 병법이나 전략도 통하지 않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램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도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의 모습부터 늙어서 주름진 모습까지 한사람의 일대기를 보는 것과 같은 그림의 배열이 볼만했다. 그는 늙은 자신의 모습에 불만족해서 추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그의 모습이 어땠던지 솔직하게 그려낸 것이 감동적이다. 삶의 어려움, 진지함에 대해서 그려낸 몇몇 그림들은 나의 마음에 남았고, 사진으로 몇몇을 남겨놓았다. 귀중한 시간이었다.

 루브르를 나와서 향한 곳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다는 몽마르뜨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언덕에 위치한 몽마르뜨를 가기 위해서 오르막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했다. 그 길목에 자리한 것이 집시족이었다. 아내가 이미 검색을 통해 알아본 정보로, 불우이웃돕기 성금모금을 한다면서 돈도 뜯어내고, 그 사이에 주머니속에 nfrjs등을 갈취한다는 것이었다. 불쌍해 뵈는 소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강단도 꽤나 있었다. 내가 강하게 뿌리치자 되려 나를 한대 때리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는 절대로 선택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집시족들에게 크게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영위할 것인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가치이다. 그들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인정할 수는 없다. 그들도 모두가 다 그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고, 명백한 범죄행위를 낮은 도덕적 잣대아래서 그들의 합리화로 풀어나갈 수는 없다. 아내는 선진국이 왜 이러냐고 한마디를 했다. 프랑스에 대한 인상이 아주 안 좋아졌다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솔직히 나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몽마르트의 중심에 있는 성당에 들어갔다. 어찌보면, 이슬람사원과도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중앙에 십자가와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점에 있다는 멋진 건물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당아래 위치한 언덕의 공원은 겨울임에도 파란 잔디를 가진 멋진 모습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흑형들의 팔지 세례 - 팔지를 손에 걸어주면서 돈을 요구했다. -를 잘 피해서 몽마르뜨의 다른 곳을 찾아갔다. 몽마르뜨 묘지와 고흐의 집. 결론은 두개다 찾을 수 없었다. 고흐의 집은 있다는 장소에 전혀 없었고, 묘지는 코앞에 두고 찾지 못하다가 버스를 타고 나서야 길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몽마르뜨에서 짧은 관광을 마치고 이제는 가보지 않은 어딘가를 찾기 위해서 버스를 이용했다. 파리여행에서 버스가 조금 더 유용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 번째는 지하철과 버스의 차이점인 밖을 볼 수 있다는 것. 파리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도난이나 소매치기의 위험이 훨씬 적다는 것. 버스에 타보니 대부분이 여기 현지인으로 생각되었다. 소매치기가 분명히 여행객의 확률이 적은 버스에 올라서 소매치기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자리에 앉아서 파리에서 비치는 마지막 햇살을 받으며, 우리의 발자국이 머물렀던 곳이나 아닌 곳이나 둘러보면서 여유를 즐겼다. 버스를 계속타고 가다보니, 많은 사람들의 흔적들이 뭍어 있는 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할 수 있었고, 파리교외의 깔끔한 곳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트램도 있었고, 석양도 함께 했다. 이제 한 두시간 뒤에 파리를 떠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골목골목 거리를 구경하고,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은 아름다운 건물들의 연속, 내 기억어딘가 작은 용량으로 가려진 커튼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참 보기 좋았던 것은 어느 역에선가 오른 다운증후군 아이들 2명을 보면서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많은 시설이 만들어 지고 있다. 하지만, 인식까지 그런가 하면 쉽지 않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오거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먼저 아주머니들이 쯧쯧쯧하고 혀를 찰 것 같고, 우리는 스리슬쩍 피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분명히 그렇지는 않겠지만, 장애인인지 인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참 좋은 문화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퐁네프의 다리를 다시 갔다. 파리의 첫 아침을 열었던 장소. 그때와는 대조적으로 해가지고 있었고, 너무나도 새로움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마지막으로 인증샷을 찍었다. 이제는 조금 더 익숙해진 카메라와 파리, 내가 이곳에 없었다면 파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아내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평생 가져갈 추억 속에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다.

 Cafe du Pont Nepf에서 따뜻한 커피한잔과 토스트를 시켰다. 유난히도 유쾌한 웨이트리스 덕에 재미도 있었고, 서로의 짧은 영어실력 덕에 계산할 때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파리만의 매력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남의 것, 서양의 것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새롭다는 것 자신들이 발달시켜온 문화의 고즈넉함이 참 보기 좋았다.

 다시 짐을 들고 Gare du E'st(동역)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탑승해보는 침대차를 향해 갔다. 파리의 역은 항상 긴장감이 넘친다. 잠깐 졸기라도 하면 누군가가 내 짐을 가져갈 것 같다. 한 시간정도 동역에서 차를 기다리다가 저 사람 이상하다. 라고 아내와 눈짓을 보내기도 하면서, 우리는 깔끔함과 정직함이 크게 기대가 되는 독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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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5:57 *.10.226.54

단군일지 10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침대칸은 생각보다 안락했다. 이미 어렸을 때 누렸어야 할 경험일 수도 있지만, 서른이 넘은 순간에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니, 지금까지 경험에 아울러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점점 열차의 속도는 빨라지고, 우리의 눈꺼풀은 감겨왔다. 가볍게 채비를 하고, 단단하게 걸어 잠근 침대칸에서 독일 제2의 도시 뮌헨으로 향하는 아침을 맞이했다. 검소한 아침식사를 대접받고, 일어나 뮌헨에 내렸다. 뮌헨의 첫인상은 이제 동이 터오는 아침이었고, 그에 맞춰 아름다운 하늘색이 인상적이었다. 아내가 굉장히 역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숙소를 예약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역에서부터 상쾌함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여행기를 쓰는 현재, 뮌헨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기차 안에서도 깔끔하고, 단단함 이라는 단어가 계속 생각난다. 파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조금은 더 편서풍이 약한 대륙성 기후이기 때문에 차가워진 날씨와 바람. 짐정리를 하고 바로 나선 뮌헨의 아침


 첫날부터 참 잘 왔구나 생각을 하고, 여행계획을 세운다. 어디를 가야할까. 이제 우리는 유럽의 많은 건축물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와..하면 그게 끝이었다. 독일 여행부터는 무언가 다른, 좀더 우리만의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은 뮌헨에서 30분정도 떨어진 다하우 유태인 집단 수용소였다. 독일패스 5일권의 첫날을 개시하고 S-bahn을 타기위해 역으로 다시 갔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표를 끊지 않는다는 것, 아내에게 들어보니,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데, 만약 무임승차, 잘못 승차했을 때는 엄청난 비용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하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하우 수용소는 그 입구에서부터 무채색 나무로 만들어진 Information 건물부터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숙연해지는 공간, 역시 기운이라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역할을 한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것 같았고, 예전의 엄청난 규모를 축소하고, 솔직한 역사에 대한 반성할 만큼의 전시물들만 자리에 놓여있다. 이 솔직하고 진정한 반성이 독일이 새롭게 일어나게 된 시대정신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진에도 몇 장 찍혔지만, 대부분이 독일 관광객이었고, 중고등학생들의 수업시간에 현장학습으로 나온 몇몇의 팀도 있었다. 다들 진정성 있는 눈빛으로 듣고 있었다. 여튼 다하우 수용소에서 상영하는 20분정도의 영상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극악해질 수 있고, 도덕선을 낮출 수 있고, 집단의 무서움을 가질 수 있는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살인을 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닐 수 있다. 법과 죄의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 시절의 독일은 모두가 정당한 논리에 의해서 움직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서 생겨난 세계2차대전과 유대인 학살. 그 모든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지만, 돌이켜서는 안 되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다.

 가스실, 그리고 화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화로를 보면서 약 3만 명이 죽어갔다는 이곳. 다른 곳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 흔적을 남겨두었다는 것에 존경을 표한다. 다하우 수용소를 나와서 간 곳은, BMW박물관과 얼마 전 읽었던 책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 의 장소 Schwabing(슈바빙)과 레오폴드거리였다. 먼저 BMW박물관은 깔끔하게 정리된 곳이었다. 세련된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바로 자리한 BMW 공장에서의 활기도 느낄 수 있었다. 유럽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와 부품들이 외화벌이를 할 수 있고, 그 소득으로 유로화의 부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며칠 전 뉴스에서도 독일이 결단을 하지 않아서 유로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뉴스를 전해 들었다.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매력이 있는 거리 Schwabing이다. 처음 그곳에 내리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용한 동네 거리였다. 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안정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책의 작가 전혜린이 갔다는 슈바빙 카페도 찾아가보았다.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그곳에서 발견한 동네슈퍼에서 필요한 것들을 값싸게 살 수 있었다. 레오폴드가로 옮기니, 겨울에도 단정하게 거리를 꾸미고 있는 가로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이 가로수가 대로변에 두길로 심어져 있어서, 사진 찍기에도 걷기에도 참 아름다웠다. 넓은 도로임에도 따뜻함과 안락함이 있었다. 뮌헨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고, 지하철로 향했다. Marie Platz 광장에서 나왔다. 벌써 시간은 5시를 흐르고 있었다. 바쁜 사람들의 모습과 상업화되어있는 도시의 거리가 나왔다. 흡사 우리나라 명동/강남과 같았다. 서울에서는 값비싼 H&M 매장에서 아주 저렴한 옷을 구매하고 나왔다. 노점에서 파는 체리와 산딸기 -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를 들고, 첫날의 시간이 아쉬워서 다시 트램에 올랐다. 찾아간 곳은 님펜부르크성. 이미 해가진 뒤라서 쥐새끼 하나 안보였고, 성의 형태만 겨우 보였지만, 운하와 어우러진 성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아서 사진을 몇 장 건지지는 못했지만, 잘 구경하고, 돌아왔다. 첫날 독일의 모습은 아내의 이야기도 그렇고, 참 여행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는 철도 시스템인지. 스마트폰 어플로 열차시간 및 플랫폼까지 다 확인할 수 있고, 연착정보마저 알 수 있으니. 정말 여행하기 좋았다. 소매치기의 위험도 거의 없고, 영어도 잘 통하는 곳이었다. 겨울의 독일이 여름의 독일보다 조용하고, 경치는 덜 아름다울 수 있겠다. 하지만, 부부의 추억을 마련하는 데는 참 좋은 곳이라 생각하면서 아늑한 숙소에서 잠자리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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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7:15 *.10.226.54

단군일치 11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독일의 둘째 날은 고성가도를 방문하는 계획이다. 처음에는 둘째 날 뉘른베르크, 밤베르크, 셋째 날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크를 방문하는 일정이었지만, 아침 일찍 밤베르크를 도착해서 느낀 점은 성의 아름다움을 계속 보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보자는 의견을 내어서, 무리해서라도 오늘 고성가도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처음 방문한 밤베르크. 도시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으로, 독일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물의 도시였다. 시청사가 강 위에 섬에 만들어져있었고, 강에 잘 어우러져 형성된 도시는 정말 아름다웠다. 물에 비치는 전경은 물론이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이 모습이 참 좋았다. 밤베르크의 이름까지도 친숙해지는 느낌이었다. 밤베르크 언덕에 올라서 도시를 조망하기도 했고, 길을 헤매면서 이런저런 아기자기한 수공예 가게들을 지나치면서 이곳만의 매력에 빠졌다.

 두 번째 간곳은 뷔르츠부르크였다. 대학의 도시답게 밤베르크보다는 훨씬 활기찼다. 이곳에 있는 요새를 가기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트램의 선로를 지나서 이곳의 강가 다리에서 사진을 몇 컷 아름답게 찍은 뒤에 걸어서 도착한 마리앤요새. 성 내부까지 들어가고자 했지만, 지금은 겨울이라 개방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공짜로 요새에서 뷔르츠부르크 도시를 조망할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얼마 전에 미션임파서블4에서 부다페스트를 위에서 조망한 장면이 처음에 나왔을 때 너무 아름다웠다. 그곳 못지않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뷔르츠부르크 도시는 붉은색 지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독일이 하나로 되기 전에 계속 지방분권의 작은 중소도시로 이뤄졌던 독일은 그 도시들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개성이 뚜렷한 도시의 모습. 하나하나 기억 할만 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도시는 독일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관광지 로텐부르크였다. 도시 전체가 둥그렇게 성벽으로 둘러싸여 흡사 중세의 공성전이 벌어지는 성의 모습을 간직했다. 하지만, 조금 무리한 일정 탓에 - 해가 4시30분이면 저기로 사라져버리는 유럽의 겨울 - 성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많이 어두웠다. 성곽을 주욱 돌기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의 외벽을 돌면서 사진도 어렵사리 찍었지만, 낮에 왔을 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트륨 or 네온등으로 노란/주황빛으로 채색된 고성의 모습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내와 사진을 찍고, 성의 작은 관문마다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짧은 시간이나마 로텐부르크를 구경했지만, 참 아기자기한 성의 모습이 기억이 남는다. 무리한 일정으로 조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우리부부는 기차도 30분 연착되는 아쉬움도 멀리한 채 그저 잠에 들었다. 로텐부르크에서 열차를 타려고 했을 때 놀란 것은 오후 6시가 넘으니 역사자체를 아예 걸어 잠근 것이 아닌가. 이곳의 Work & Life Balance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10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 부부, 정신없이 골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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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8:24 *.10.226.54

단군일지 12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일기예보가 심상치 않았다. 뮌헨에서의 셋째 날은 비바람과 함께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또다른 별미 가르미슈(Garmisch)를 가기 위해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 뮌헨에서 있을 날은 이제 고작 이틀. 가르미슈와 오스트리아의 짤츠부르크(Salzburg) 어디를 먼저 가야할지 고민이 앞섰다. 일기예보상 약 일주일간 구름과 눈/비가 계속되었다. 그나마 가르미슈의 정상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흐린 첫날이 낫겠다 싶어 가르미슈행 열차를 선택했다. 전날 오랜 여행 탓에 피곤함을 기차에서 달랬다. 어느 정도 지나니, 가르미슈의 알프스가 눈앞에 펼쳐졌다. 겨울의 알프스는 흰눈이 필수품이었다. 여기저기 하얀색으로 뒤덮힌 것이 참 아름다웠다. 아무리 예쁘지 않은 곳이라도 이 눈이 다 치유해주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종착역에 내렸다. 한산한 분위기, 조금은 불안했다. 가르미슈 산향을 하기 위한 산악열차 매표소가 어딘지 찾질 못하겠다. 분명히 사람들이 많아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겨우 친절한 동네사람같은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매표소에 갔더니, 열차가 서있었고, 참 한산했다. 매표를 하기 위해 물어보니, 산 정상은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산 정상까지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는 운행할 수 없었다. 정상까지는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그 근처의 Eiblee 호수까지만 열차가 운행했다. 많이 아쉬웠지만, 이곳에서 다른 곳을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호수에서의 자연을 만끽하기로 결정하고 산악열차에 올랐다. 재미있던 것은 갑자기 열차에서 사람들이 대부분 내리는 것이 아닌가. 호수까지 가기 전이어서 아내와 나는

 “오늘은 사람들이 호수에 갈 생각이 별로 없나봐” 라고 단정짓고 열차에 머물렀다. 하지만 갑자기 열차가 수리센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가. 설명서를 잘 살펴보니, 호수까지 가는 열차는 다른 열차로, 아까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서 같이 내려 갈아타야하는 것이었다. 멋쩍은 순간이었다. 친절하게도 다시 열차를 뒤로 돌려주고, 사람들이 먼저 탑승했던 호수행 열차는 우리를 기다려주었다. 더욱더 멋쩍은 순간이었다. 뭐. 실수는 있는 법이니까. 라고 생각하고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이제 호수근처 역에 내렸다.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호수도 대부분 얼어있었다. 호수의 수면에 반사되는 경치가 평상시보다는 아름답지 못했지만, 겨울산이 가지고 있는 정취와 호수가 가진 하얀 풍경은 그것만으로 참 아름다웠다. 원형인 호수를 따라 한바퀴 주욱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중간중간 호숫가의 벤치는 그야말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이었다. 360도의 호수를 돌면서 너무나도 멋진 광경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동안 며칠을 도시를 돌아보고, 사람들을, 문명을 즐기는데 활용했다면 오늘은 알프스의 전면에서 산과 물과 바람과 눈을 느끼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숨을 조금이라도 깊이 쉬면 들어오는 청량한 바람은 꼭 이 여행 뒤에 먹을 매운 김치찌개 같은 달콤함을 가져다주었다. 어찌나 코와 입이 시원한지 계속 복식호흡을 해가면서 알프스의 정기를 받았다. 호수 둘레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그들와 인사도 주고 받고,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사진을 찍어줄 때마다 만약 인물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자연과 인물의 조화보다는 인물을 위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강의에서 들었던 대로 이들은 사람과 인물이 중요하고, 주변은 나중이라는 우선순위를 가볍게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몇 장을 계속 찍어주었어도, 남는 사진이 많지는 않았다. 사진도 많이 찍고 구경도 하다가 훌쩍 3시간이 흘렀다. 360도를 돌면서 수많은 장면을 찍을 수 있었고, 직접 오를 수는 없었지만,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가르미슈, 그리고 그의 많은 형제봉우리들을 사진과 마음에 담았다. 남은 오후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네이버 여행카페의 도움을 받아서, Marieplatz 광장 주변의 유명 맥주집을 가기로 결정했다. 많이 간다는 Brauhaus말고 현지 사람들이 더욱 좋아한다는 Augi를 찾아갔다. 들어서자마자 안락한 백열등 불빛과 브라운톤의 건물 내부가 조화롭게 자리했다. 맥주통 모양 등 여러 가지 형태의 테이블이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있었다. 신문을 보며 여유롭게 맥주를 한잔마시는 사람들부터 약간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면서 서로 Cheers를 외치며 맥주잔을 두드리는 사람들까지 여러 가지 삶의 모습들이 자리했다.

 무엇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일단 맥주 2잔부터 시켰다. 대표맥주가 나오겠거니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맥주를 먹고 있었다. 아내와 한잔 딱 들이켰다. 아..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맥주스타일이었다. 목 넘김이 이렇게 깔끔할 줄이야. 이곳의 후한 인심은 맥주잔에서도 나타났다. 500m잔은 거품 데코레이션을 위해 500m 보다 더 깊게 만들어져서 손해볼일이 없었고,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정감이 있는 하이디 치마를 입은 Waitress가 참 좋았다. 안주 시킬 사이도 없이 한잔을 거뜬히 들이켰다. 이제는 안주를 시켜야할 타이밍이다. 무엇을 먹어야하는가. 먼저 추천을 받기로 했다. 하나를 시키고 나서, 구글 번역에서 쳐보았더니, 거대 구운 돼지 요리를 시켰다. 기대가 된다. 두 번째 맥주는 옆의 맥주통 모양 테이블에서 한가롭게 맥주를 마시고 있는 아저씨 것으로 주문했다. 무언지도 모르겠으나, 그냥 매력 있어 보이는 맥주색깔이었다. 참 400여종의 맥주와 400여종의 소세지가 모여 있다는 이 맥주와 소세지의 천국. 독일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꾸밈없으면서도 따뜻한 공간이었고, 수 백년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들의 맛이 동양에서 까지 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일을 관통하는 튼튼한 철도처럼 신속하면서도 안락한 공간. 한 가지 기술력을 끝까지 파고든 그들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나온 안주는 생각보다 더욱 입맛에 맞았다. 짭짜름하면서도 바삭바삭한 튀김옷과 “거대”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하게 잘 차려나온 돼지고기, 뼈까지 싶어먹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안주였다. 더욱 맥주를 추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맥주통 테이블 아저씨를 따라 시켰던 맥주는 약간 민트맛이 가미되어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시원하고 깊은 맛은 여전했다. 다음 잔에서 아내는 흑맥주를 나는 원래 본 맥주로 돌아갔다. 흑맥주는 빛깔이 정말 심해의 까만색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색깔이었다. 카페모카의 커피상단부와 휘핑크림의 하단부가 만난 것 같은 거품의 빛깔은 참 맛깔나게 보였다. 어느새 안주하나를 다 비웠다.

 독일이니 소세지를 아니 먹을 수 없어, 또한 물어물어 소세지 메뉴를 시켰다. 조금은 탄 느낌도 있었지만, 몇 줄의 소세지와 무채를 볶은 따뜻한 음식이 나왔다. 무채가 매우 짜긴 했지만, 참 맛있는 안주였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건장한 이유가 있다. 처음에 하이디 치마 일하는 아주머니가 “거대 구운 돼지”를 시키려고 하니 두개를 주문하는 거냐고 물어봤을 때 깜짝 놀랐다. 안주를 두개나 동일한 것을 시키다니. 개인 안주를 보호하는 측면도 있겠으나, 어떻게 그 안주를 하나씩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튼 소세지와 함께 다시 기본 맥주 한잔을 추가했다. 독일 맥주와 소세지, 참 멋스러운 조합이었다. 같이 나온 으깬 감자도 깔끔하게 드셔 주셨다.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맥주집 탐방이었다.

 이제 여행도 며칠이 남지 않았는가. 벌써 8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는 훨씬 생업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온다. 그럴수록 이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는다는 귀중한 마음을 가지고 여행을 꾸려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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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9:41 *.10.226.54

단군일지 13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뮌헨에서의 4일째, 오늘은 짤츠부르크(Salzburg)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정신없이 나온 열차에서 갑자기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새벽에 메모리카드가 조금 이상이 있어, 며칠간 저장했던 메모리카드를 빼고 새것으로 바꿔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아침식사자리에 놓고 왔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시간이 참으로 아까웠다. 이를 어찌하나.. 짤즈부르크까지 돌아가서 다시 차편을 알아보니, 다행히 바로 뮌헨으로 돌아가는 차가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아내와 농담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먹었던 것들이 소화가 안 되고 정체되는 기분이었다. 애써 아내는 그래도 메모리카드를 바꾼 게 참 다행이다라며 나를 위로했었고, 열차에서 잃어버린 짐들도 찾을 수 있는 독일이라는 예를 들어가면서,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없을 때 대안으로, 카메라를 하나 구입하던지 아니면 핸드폰 카메라를 그대로 쓰던지 등의 생각 등 여러 가지가 스쳐갔다.

 서둘러 숙소에 들어와서 카운터에 카메라를 식당에 놓고 왔다고 했더니, 태연하게 식당으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전혀 의심의 눈초리 없이 얘기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식당으로 걸어가는 문에서 바로 아침에 서빙을 해주던 부드러운 미소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던 손길을 멈추고 빙긋이 웃음을 보이며 식당문을 열어주었다. 손을 눈가로 올리며 검지로 셔터를 누르는 행동을 보였다. 카메라라고 바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천만다행이었다. 잃어버린 몇 시간 때문만도 아니고, 이래저래 여행을 잘 마무리하는데 오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Danke Schon, Thank you를 연발했다. Bitte schon이라고 간단히 대응하면서 엷은 미소를 짓는 아주머니. 정감어리면서도 든든했다.

 시간이 지나서 짤츠부르크에 내리니 벌써 시간이 1시였다. 네이버카페에 의하면 하루를 족히 써야 볼 수 있는 짤츠부르크라고 해서, 중요한 지점만 정해서 보는 게 낫겠구나 생각했다. 짤츠부르크 자유이용권을 구입하고(비수기 1일 22 Euro) 친절한 설명을 들은 뒤에 눈이 내리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처음 찾은 곳은 마리앤정원.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이 드문드문 흰눈과 겨울에도 피는 노랗고 보랏빛 나팔꽃 종류 때문에 아름다웠다. 겨울이라서 갈 수 없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사진찍기나 소소하게 돌아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바로크 미술품이 전시된 박물관도 잠시 들려 그림도 감상하고, 거리를 나왔다. 그리 버스를 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주위를 배회하다가 들어간 곳은 Worn in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생가? 인가 하고 들어가보았다. UNESCO에서 짤츠부르크를 문화/예술의 도시로 선정했다고 했는데, 가장 큰 역할은 모차르트가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차르트 생가로 생각되는 곳을 들어갔을 때, 솔직히 특별한 그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옛날 악기 몇 점과 악보 몇 점, 음악 감상시설. 그 집을 나와 찾아간 또 다른 모차르트의 생가. 그곳에서도 조금은 더 많은 모차르트의 이야기들과 노래들, 유품들이 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기념할만한 장소였다.

 두 번째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하기 전에 짤짜흐강을 건너서 찾아간 Billa라는 상점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큰 슈퍼마켓이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사람들의 수요와 가격의 연관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면으로, 아마도 서양에서는 치즈가 김치나 다름없을 것이다. 또한 수 만가지 종류의 소세지와 햄 종류들도 즐비하게 놓여져, 그 엄청난 소비량에 맞춰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눈발이 조금씩 짙어지는 거리를 통과해서 찾아간 Hohenplatz Feniqula(케이블카)가 겨울이라서 작동을 하지 않아 낑낑대면서 올라간 언덕의 성은 그 위용이 멀리서도 알 수 있었고, 지난번 뷔르츠부르크에서 봤었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경치의 유혹 때문에라도 빨리 가서 보고 싶었다. 수 백년간 포격을 위한 성으로 건축된 이곳은 궂은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을 만큼 이곳의 볼거리였다. 건축물의 단단함도 느껴졌고, 중간 중간 발견되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눈으로 약간 질퍽해진 거리였지만, 그 눈으로 인해 오롯이 덧입혀진 흰색은 참 좋은 볼거리,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수많은 전망대 중에서 가장 높은 탑에 올라 구경하는 곳이 있는데, 짤츠부르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도리어 촬영을 하기가 힘들기는 했지만,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가 잘 어우러졌다. 20세기 초(1차대전)까지 전쟁 무기와 그 시절의 고문도구들도 사실적으로 전시한 박물관도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들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은, 이들은 우리보다 더 짧은 역사와 문명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보존에 충실하여 시간이 갈수록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창조하였다. 어떤 건축이나 현재 인구를 보정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옛날 가옥이나 생활 모습의 보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에 대한 보호와 개선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우리도 서양에게는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는 관광상품으로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몇몇 도시들을 돌며, 왜 서양은 동양보다 먼저 무기를 발달시키고, 식민지 건설을 하고, 잦은 전쟁을 치루었는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경제/문명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서양적 사관에서 봤을 때의 발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이나 포탄의 발명 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훨씬 먼저 발전을 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외부에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럽이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발달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도 못지않은 침략전쟁을 겪었고, 동양의 중심이라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중국 또한 많은 왕조의 변천과 많은 나라와 전투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역시 문명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의 차원에서의 접근이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 총,균,쇠의 책을 보게 되면, 남북아메리카의 발전이 더디고, 이미 서양은 총으로 무장했는데, 화살/검으로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던 사람들의 예를 제외해야하는 것은 지리적인 문명발달의 속도를 차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했을 때, 자신이 최고라는 의식이 아닌, 동도서기 혹은 비판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의 수용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마련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수 천년 앞서 문명을 꽃피웠던 장소 중에 세계를 소위 주름잡는 다는 곳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물론 그 주름잡는 다는 것이 정치/경제적인 가치가 주요가 되어서, 종교의 가치 등을 계승하지 않는 단점이 발견되나, 현생인류에게는 가장 타당성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가치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킨 유럽이 가치척도의 기준으로 자신들의 문명을 삼았다는 것이 참 지혜롭다고 볼 수 있겠다.

 성을 보고 내려오니,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해외에서 아내와 맞는 눈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덕에 카메라를 배속에 감춰서 보호해야하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기는 했지만, 겨울여행의 큰 묘미이고, 우리 부부에게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짤츠부르크 마지막 관광지는 바로 Augistner Brauhaus였다. 네이버 까페에서 강력 추천된 유럽최고의 맥주집. 눈발이 날리는 오후 5시30분의 깜깜한 밤중이었지만, 아내의 열망과 나의 맥주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길을 물어물어 Muller다리를 건너 - 역을 기준으로 건넘 - 오른쪽으로 꺽은 뒤에 걸어가다가 왼편으로 꺽어 계단을 올라가서, 다시 오른편으로 걷다가, 아치를 통과해서, 오른쪽에 고개를 20도 정도 들어 보이는 맥주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무슨 큰 공연장을 보는 듯, 지하로 넓게 열려진 통로가 있었다. 까페 여행기에서처럼 정말 가족적이고, 밝은 분위기 엄청난 규모의 맥주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일단 맥주를 먹어야 하지 않는가? 여기 맥주는 다른 것을 시킬 여력이 없다. 무조건, 사기로 된 회색빛 불투명 맥주잔을 들고, 맥주를 구매해서 달라고 하면, 무뚝뚝한 맥주통 지킴이 아저씨가 거품 넘치는 것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맥주를 내어준다. 주사위 게임을 하는 착하게 생긴(?) 고등학생과 테이블에 같이 앉았다. 첫잔을 들이키자, 음. 알싸하고 매우 시원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시원하고 좋았다. 아내도 가게를 찾았다는 기쁨과 시원한 맥주를 먹는다는 기쁨에 얼굴이 밝아졌다. 첫잔을 여지없이 10분만에 다 먹어버리고, 이번에는 안주를 사러 나갔다. 이 맥주집은 맥주를 파는 것과 안주를 파는 것이 각각 셀프서비스로 맘에 드는 값싼 안주를 사서 먹을 수 있다. 참 간편하면서도 서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전혀 서민스럽고 간편하지 않게 많은 양을 시켜주었다. 큰 소세지 종류별로 하나씩, 돼지뒷다리 구이도 추가해서. 매우 맛있는 안주였다. 배가 부름에도 안주와 맥주를 또 시켜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특히 돼지뒷다리 구이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어느 정도 맥주를 정리하고, 아내와 나는 다시 짤츠부르크 떠날 채비를 했다. 이제 남아있는 이틀이라는 시간. 그리고, 평생 언제다시 올지 모를 오스트리아라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했던 올망졸망한 추억들이 외국에서 맞는 더 따뜻한 눈이 입은 패딩잠바 사이로 스며들 듯이 나와 아내의 추억의 샘 속에 들어와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고, 기억할 수는 없어도 공유할 수 있는 꺼리가 되었다.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 오백여장이다. 어느 사진작가의 조언처럼 지난번 다녀왔던 몇 번의 여행사진을 전부 출력했다. 정확히 모두가 어딘지를 다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속에 웃고 있는 그대와 나, 지금은 조금 빛깔이 달라져서 그 누군가의 추억거리가 되었을 세계의 어느 곳에 독특한 추억이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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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39:41 *.10.226.54

단군일지 13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뮌헨에서의 4일째, 오늘은 짤츠부르크(Salzburg)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정신없이 나온 열차에서 갑자기 카메라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새벽에 메모리카드가 조금 이상이 있어, 며칠간 저장했던 메모리카드를 빼고 새것으로 바꿔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아침식사자리에 놓고 왔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시간이 참으로 아까웠다. 이를 어찌하나.. 짤즈부르크까지 돌아가서 다시 차편을 알아보니, 다행히 바로 뮌헨으로 돌아가는 차가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아내와 농담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먹었던 것들이 소화가 안 되고 정체되는 기분이었다. 애써 아내는 그래도 메모리카드를 바꾼 게 참 다행이다라며 나를 위로했었고, 열차에서 잃어버린 짐들도 찾을 수 있는 독일이라는 예를 들어가면서,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없을 때 대안으로, 카메라를 하나 구입하던지 아니면 핸드폰 카메라를 그대로 쓰던지 등의 생각 등 여러 가지가 스쳐갔다.

 서둘러 숙소에 들어와서 카운터에 카메라를 식당에 놓고 왔다고 했더니, 태연하게 식당으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전혀 의심의 눈초리 없이 얘기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식당으로 걸어가는 문에서 바로 아침에 서빙을 해주던 부드러운 미소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던 손길을 멈추고 빙긋이 웃음을 보이며 식당문을 열어주었다. 손을 눈가로 올리며 검지로 셔터를 누르는 행동을 보였다. 카메라라고 바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천만다행이었다. 잃어버린 몇 시간 때문만도 아니고, 이래저래 여행을 잘 마무리하는데 오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Danke Schon, Thank you를 연발했다. Bitte schon이라고 간단히 대응하면서 엷은 미소를 짓는 아주머니. 정감어리면서도 든든했다.

 시간이 지나서 짤츠부르크에 내리니 벌써 시간이 1시였다. 네이버카페에 의하면 하루를 족히 써야 볼 수 있는 짤츠부르크라고 해서, 중요한 지점만 정해서 보는 게 낫겠구나 생각했다. 짤츠부르크 자유이용권을 구입하고(비수기 1일 22 Euro) 친절한 설명을 들은 뒤에 눈이 내리는 버스정거장에서 버스에 올랐다. 처음 찾은 곳은 마리앤정원.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정원이 드문드문 흰눈과 겨울에도 피는 노랗고 보랏빛 나팔꽃 종류 때문에 아름다웠다. 겨울이라서 갈 수 없는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사진찍기나 소소하게 돌아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바로크 미술품이 전시된 박물관도 잠시 들려 그림도 감상하고, 거리를 나왔다. 그리 버스를 탈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주위를 배회하다가 들어간 곳은 Worn in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생가? 인가 하고 들어가보았다. UNESCO에서 짤츠부르크를 문화/예술의 도시로 선정했다고 했는데, 가장 큰 역할은 모차르트가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차르트 생가로 생각되는 곳을 들어갔을 때, 솔직히 특별한 그 무언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저 옛날 악기 몇 점과 악보 몇 점, 음악 감상시설. 그 집을 나와 찾아간 또 다른 모차르트의 생가. 그곳에서도 조금은 더 많은 모차르트의 이야기들과 노래들, 유품들이 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저 사진 몇 장으로 기념할만한 장소였다.

 두 번째 모차르트 생가를 방문하기 전에 짤짜흐강을 건너서 찾아간 Billa라는 상점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큰 슈퍼마켓이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사람들의 수요와 가격의 연관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면으로, 아마도 서양에서는 치즈가 김치나 다름없을 것이다. 또한 수 만가지 종류의 소세지와 햄 종류들도 즐비하게 놓여져, 그 엄청난 소비량에 맞춰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었다.

 눈발이 조금씩 짙어지는 거리를 통과해서 찾아간 Hohenplatz Feniqula(케이블카)가 겨울이라서 작동을 하지 않아 낑낑대면서 올라간 언덕의 성은 그 위용이 멀리서도 알 수 있었고, 지난번 뷔르츠부르크에서 봤었던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경치의 유혹 때문에라도 빨리 가서 보고 싶었다. 수 백년간 포격을 위한 성으로 건축된 이곳은 궂은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을 만큼 이곳의 볼거리였다. 건축물의 단단함도 느껴졌고, 중간 중간 발견되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눈으로 약간 질퍽해진 거리였지만, 그 눈으로 인해 오롯이 덧입혀진 흰색은 참 좋은 볼거리,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수많은 전망대 중에서 가장 높은 탑에 올라 구경하는 곳이 있는데, 짤츠부르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도리어 촬영을 하기가 힘들기는 했지만, 시원한 바람과 멋진 경치가 잘 어우러졌다. 20세기 초(1차대전)까지 전쟁 무기와 그 시절의 고문도구들도 사실적으로 전시한 박물관도 괜찮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이러한 유럽의 고풍스런 도시들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 든 생각은, 이들은 우리보다 더 짧은 역사와 문명을 가졌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보존에 충실하여 시간이 갈수록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를 창조하였다. 어떤 건축이나 현재 인구를 보정하였을 때, 우리나라의 옛날 가옥이나 생활 모습의 보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것에 대한 보호와 개선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우리도 서양에게는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는 관광상품으로 널리 쓰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몇몇 도시들을 돌며, 왜 서양은 동양보다 먼저 무기를 발달시키고, 식민지 건설을 하고, 잦은 전쟁을 치루었는가, 그리고 소위 말하는 경제/문명을 더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서양적 사관에서 봤을 때의 발전 정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이나 포탄의 발명 등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 훨씬 먼저 발전을 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외부에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유럽이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발달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우리도 못지않은 침략전쟁을 겪었고, 동양의 중심이라고 자기들이 생각하는 중국 또한 많은 왕조의 변천과 많은 나라와 전투를 진행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역시 문명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의 차원에서의 접근이 맞지 않는가 생각한다. 총,균,쇠의 책을 보게 되면, 남북아메리카의 발전이 더디고, 이미 서양은 총으로 무장했는데, 화살/검으로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했던 사람들의 예를 제외해야하는 것은 지리적인 문명발달의 속도를 차지해야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비교했을 때, 자신이 최고라는 의식이 아닌, 동도서기 혹은 비판적이고 개방적인 문화의 수용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마련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수 천년 앞서 문명을 꽃피웠던 장소 중에 세계를 소위 주름잡는 다는 곳은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물론 그 주름잡는 다는 것이 정치/경제적인 가치가 주요가 되어서, 종교의 가치 등을 계승하지 않는 단점이 발견되나, 현생인류에게는 가장 타당성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가치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킨 유럽이 가치척도의 기준으로 자신들의 문명을 삼았다는 것이 참 지혜롭다고 볼 수 있겠다.

 성을 보고 내려오니, 눈발이 더욱 거세졌다. 해외에서 아내와 맞는 눈은 어쩐지 따뜻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덕에 카메라를 배속에 감춰서 보호해야하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기는 했지만, 겨울여행의 큰 묘미이고, 우리 부부에게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짤츠부르크 마지막 관광지는 바로 Augistner Brauhaus였다. 네이버 까페에서 강력 추천된 유럽최고의 맥주집. 눈발이 날리는 오후 5시30분의 깜깜한 밤중이었지만, 아내의 열망과 나의 맥주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길을 물어물어 Muller다리를 건너 - 역을 기준으로 건넘 - 오른쪽으로 꺽은 뒤에 걸어가다가 왼편으로 꺽어 계단을 올라가서, 다시 오른편으로 걷다가, 아치를 통과해서, 오른쪽에 고개를 20도 정도 들어 보이는 맥주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무슨 큰 공연장을 보는 듯, 지하로 넓게 열려진 통로가 있었다. 까페 여행기에서처럼 정말 가족적이고, 밝은 분위기 엄청난 규모의 맥주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일단 맥주를 먹어야 하지 않는가? 여기 맥주는 다른 것을 시킬 여력이 없다. 무조건, 사기로 된 회색빛 불투명 맥주잔을 들고, 맥주를 구매해서 달라고 하면, 무뚝뚝한 맥주통 지킴이 아저씨가 거품 넘치는 것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맥주를 내어준다. 주사위 게임을 하는 착하게 생긴(?) 고등학생과 테이블에 같이 앉았다. 첫잔을 들이키자, 음. 알싸하고 매우 시원한 맛이 입안을 감돌았다. 시원하고 좋았다. 아내도 가게를 찾았다는 기쁨과 시원한 맥주를 먹는다는 기쁨에 얼굴이 밝아졌다. 첫잔을 여지없이 10분만에 다 먹어버리고, 이번에는 안주를 사러 나갔다. 이 맥주집은 맥주를 파는 것과 안주를 파는 것이 각각 셀프서비스로 맘에 드는 값싼 안주를 사서 먹을 수 있다. 참 간편하면서도 서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전혀 서민스럽고 간편하지 않게 많은 양을 시켜주었다. 큰 소세지 종류별로 하나씩, 돼지뒷다리 구이도 추가해서. 매우 맛있는 안주였다. 배가 부름에도 안주와 맥주를 또 시켜먹었다. 너무 맛있었다. 특히 돼지뒷다리 구이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어느 정도 맥주를 정리하고, 아내와 나는 다시 짤츠부르크 떠날 채비를 했다. 이제 남아있는 이틀이라는 시간. 그리고, 평생 언제다시 올지 모를 오스트리아라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했던 올망졸망한 추억들이 외국에서 맞는 더 따뜻한 눈이 입은 패딩잠바 사이로 스며들 듯이 나와 아내의 추억의 샘 속에 들어와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꺼낼 수 있고, 기억할 수는 없어도 공유할 수 있는 꺼리가 되었다. 행복한 시간 중에 하나이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만 오백여장이다. 어느 사진작가의 조언처럼 지난번 다녀왔던 몇 번의 여행사진을 전부 출력했다. 정확히 모두가 어딘지를 다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속에 웃고 있는 그대와 나, 지금은 조금 빛깔이 달라져서 그 누군가의 추억거리가 되었을 세계의 어느 곳에 독특한 추억이 있다는 사실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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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41:05 *.10.226.54

단군일지 14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참 정들었던 Alfa Hotel에서 짐을 싸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어제 카메라를 잘 찾아준 식당아주머니에게 무어라도 보답을 해야 할까. 아침에 만나면 무어라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도 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아쉽게도 아주머니는 오늘 근무가 아니신지 다른 분이 우리에게 Kaffee? 라고 동일한 질문을 했다.

 독일의 전체를 결코 보지 못했고, 음지를 가볼 수 없었지만, 이 뮌헨에서의 4일은 내가 했던 여행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속정 깊게 친절한 사람들과 쉬운 의사소통으로 인해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다. 숙소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 드는데, 19세기 근대 독일의 가정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니, 참 그 빛깔조차 아름답고, 고즈넉했다. 강력히 추천하고, 다시 온다면 아내와 머물렀던 215호를 꼭 예약하고 싶다. 첫발길이 설레고, 어색했던 것만큼 나오는 발걸음, 이곳에서 백 년전에 만들어졌을 엘리베이터를 처음 사용했을 때 “과연 작동할까?”라는 의구심이 확실함이 되었던 것과 같이 신뢰가 가득되는 곳이었다. 어제 계속 왔던 눈은 우리에게 그나마 마지막 뮌헨의 추억거리로, 보행자에게 편하게 하기 위해 지하계단마저 없이 바로 1층의 연결통로가 되어 간편한 뮌핸 중앙역(Munchen Hauptbahnhof)에서 마지막 독일패스의 날짜를 손수 적으면서 아쉽게 보낸다. 뮌헨에서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는 길 유난히도 멋지게 떠오르는 아침햇살이 연신 카메라셔터를 누르게 했다. 열차의 스피드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잠시잠깐 내 수정체를 관통해 망막에 맺히는 연속 상의 감동을 없앨 수는 없었다. 하얗게 변한 독일의 높지 않은 구릉과 그와 어울려 색색깔을 가졌던 소소한 가정집들의 배열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이델베르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다는 그곳, 헤겔, 야스퍼스 등 세계 철학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태어난 곳,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다 받아들이고, 새롭게 주창된 독일의 관념주의 철학, 그 깊이를 전혀 모르고 학부 교양 “서양철학사”수업에 칸트의 미학에 대한 판단력비판을 내가 비판해서 철학과 교수에게 혼쭐이 났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런 깊이를 가진 도시의 모습은 어떨까. 숙소를 프랑크푸르트에 잡았기 때문에 짐은 편리하게 만들어진 중앙역의 코인라커에 맡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일단 밖으로 나갔다. 조금은 비에 젖어있는 도시는 붉은색 계통의 도시색깔로 첫눈에도 비 오는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주요 관광지는 철학자의 길과 폭격이 맞은 그대로 있다는 하이델베르크 성이였다. 먼저 아내가 나에게 어울리겠다며 꼭 가자고 했던, 철학자의 길. 지금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하며, 그 옛날 헤겔 등의 유수의 철학자들이 상념과 고뇌를 했던 그 길이라고 한다. 조금 헉헉거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오르막길 자체가 철학이었다. 시간이라는 절대량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시간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인류 문명의 발달에 시간이라는 자원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이 있었겠는가?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오르막길 돌들의 나이였다. 어느 때부터 비바람을 맞고, 손때가 ane어 누구의 손금인지도, 누구의 체취인지도 알 수 없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금기가 맺혀있는 돌인지 모른다. 지구 연평균 기온을 유지시켜주는 물의 이동으로 대한민국 조상의 어떤 땀방울이 이곳에 맺혀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틈에 붉은 돌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끼. 계단을 오르며 이 이끼와 바위틈에 비어난 생명체들이 가치를 더욱 올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끼론”을 펼쳐보고자 했다. 만약 그냥 나무가 자라고, 돌이 있으면 어떠한 차별성도 자리하지 못한다. 총 천연 수 백만 가지의 녹색을 빛의 세기와 각도에 따라서 다양하게 빛을 반사하고 자신의 색을 가진 이끼와 여러 가지 풀들, 그리고 담쟁이 덩굴 같은 상부상조하는 생명체들, 이것이 바로 시간의 가치와 더불어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가시적인 그 무엇이 아닌가 확신이 들었다. 어떤 일도 정성을 들이고, 몰입하면 다른 가치를 뽐낼 수 있다는 것, 차별화된다는 것을 이 계단을 오르면서 강하게 느꼈다.

 오르막 뒤에는 멋진 광경과 달콤한 노력의 댓가가 있다고 했나. 하이델베르크가 한눈에 들어왔다. 빗방울을 가진 하이델베르크는 중간에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너무나도 정말 아름다웠다. 몇 개의 도시를 방문했었지만, 비온 뒤에 방문하기 너무나도 좋은 곳이었다. 수만 가지 붉은색과 녹색의 보색대비 정말 멋진 조화였다. 내 눈에 담고 머릿속에 다 넣었다. 포토샵으로 색을 고르라고 해도 절대로 이것을 흉내 낼 수는 없다. 카메라 화소가 아무리 높더라도, 창조된 인간의 눈만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바라보는 아내와 지나치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토론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서, 참 의미가 있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참 고맙기도 했다. 어렵사리 온 이곳에서 이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다니. 궂은 날씨라는 것의 ‘궂다’라기 보다는 굳이 이렇게 좋은 날씨를 주는 것에 감사했다. 잠시 사진을 찍더라도 도시의 굴곡에 생긴 1cm의 수면에라도 비친 모습까지 덤으로 촬영이 되어서 참 좋았다. 철학자의 거리를 내려와 이곳의 철학과 교수들과 선생님들이 산다는 안락한 주거공간을 지나 - 참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떠올려봤다. -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을 건넜다. 약간 날씨도 춥고, 아내의 흥도 돋우어 주고 싶어, H&M 매장으로 들어갔다. 아.. 싸다.. 우리나라에서 과연 얼마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괜찮은 옷들이 참 저렴했다. 1층, 2층을 탐사해서 예닐곱벌의 옷을 가득 들었다. 아내가 한 벌씩 입어보면서 탈의실에서 나와 나에게 보여준다. 참 사랑스럽다. 대부분이 다 잘 어울려서, 그냥 샀다. 옷 Tag를 떼지 않아서 다시 상점을 찾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여튼 괜찮은 쇼핑이었다. 그리고 젊음의 거리를 거닐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어서 그런지 혹은, 토요일주말 활기참을 빌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거리는 굉장히 활발했다. 거리의 악사들도, 몇몇 걸인들도 있었지만, 안락하고 활기찬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역시 쇼핑까지 하면 가장 기본욕구, 식욕을 채우고 싶어하는 것 같다. 어디를 가야하나 거리를 돌아보니, 사람이 가득 들어있는 Cafe ExtraBlatt가 있었다. 겨우 문 앞에 자리를 얻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어느 정도 reasonable 가격으로 더욱 구미가 당겼다. 메뉴판을 보고 피자와 햄버거를 시켰다. 맥주도 시원하게 한잔 곁들여. Fajita Pizza와 Caesar Burger를 시켰는데, 이번 여행 중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은 편임에도 버거와 같이 나온 감자튀김까지 다 먹어버리는 센스를 발휘했다. 정말 친절한 종업원들과 계속되는 손님의 유입, 어찌 이렇게 맛있고도 친절할까. 감탄을 연발했다. 몸과 마음이 워낙에 두터워지셨다. 그리고 찾아간 하이델베르크성입구. 이번에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겠지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기대와는 달리 주말관광객 덕에 겨울에 비 오는 날씨에도 깔끔한 시설의 케이블카 - 라기 보다는 비탈길을 오르는 열차(푸니쿨라) -를 탑승하고 걸어서는 20분의 고된 시간을 5분 만에 도착했다. 대표적인 붉은색 돌을 사용한 탓에 너무나도 비오는 날과 잘 어울렸고, 격동의 전쟁시기를 잘 표현해주는 포탄의 흔적, 성벽은 허물어지고, 직격탄을 맞는 벽돌들의 그을음과 이음새의 부서짐이 세월의 무게와 더불어 강하게 남아있었다. 멋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강변을 나와 걸었다. 이제 다른 건물들은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몇몇 중요하다는 건물도 그냥 스킵하고 지나갔다. 동양에서 한국/중국/일본의 기와 및 건축양식이 이것이 다르고 저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서양 사람들이 그것을 잘 알기나 하는가? 마찬가지로, 지식의 부족함도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고딕, 바로크, 로코코, 로마네스크 등등의 양식들, 첨탑, 돔성당들이 즐비하게 자신만의 무엇을 뽐내고 있지만, 그저 성당과 좋은 건물들일 뿐이었다.

 여튼 중간에 흐르는 강을 다시 한번 건넜다. Alte - 오래된 이라는 독일어 - 다리를 건너면서, 여행책자에서 소개된 하이델베르크성과 베스트샷을 연신 찍었다. 이 여행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아쉬운 마음이 들고, 더욱 즐길 곳은, 감동 받을 것은 없는가, 여행 도중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는 사고하고 행동한다. 행동이라는 것은 사고의 지평선들이 수평합을 통해 수면 상으로 드러나는 구현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대를 이루는 지식과 경험을 과연 책이라는 독립적인 세계 - 물론, 작가와 소통하면서 무형의 세계를 건축할 수 있다. -와 간접경험의 세계를 위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과 귀와 코와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여행과 직접경험을 통해 할 것인가. 인생의 배움은 끝이없고, 항상 배우지만, 두 가지 직접/간접 경험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가는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런 추억의 편지들을 써본다.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의 깃털에 붉은 잉크를 뭍혀서. 다시 한번 하이델베르크를 도보로 방황했다. 강변에는 차가운 바람도 많이 불어, 추운 날씨였었지만, 잘 견디는 아내와 함께 다시 다리를 건너보고, 비에 반사되는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멋진 사진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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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42:23 *.10.226.54

단군일지 15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 쓰기

 

 이제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마지막의 독일열차를 타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 찾아갔다. 몇 시간 우리의 짐을 소중하게 맡아준 Locker에 감사표시를 하면서, 또다시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어둠을 뚫고, 붉은색의 단단하고 신뢰성있는 독일 열차가 도착했다. 아.. 이제 다시 언제 타볼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이제 다 저녁이 되어서 - 5시만 되어도 깜깜해지는 시간을 고려해보면 더욱 - 밖의 경치가 인공적인 조명밖에 없었지만,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중간 중간 들르는 깔끔하게 정리된 역들을 보면서, 몇 해간 안녕이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마지막 날, 그리고 지금 비행기를 타는 오늘, 프랑크푸르트에서의 관광을 시작했다. 미리 짐을 다 챙겼다. 세관 신고할 것들, Tax refund를 받아야할 것들 등등, 지혜를 다해 짐 정리하고, 맡겼다. 일요일의 프랑크푸르트는 인구공동화현상이 심한 것인지, 9시쯤에는 어떤 상점도 문을 열지 않았고, 도시에는 시원한 바람만 연신 불어댔다. 이곳의 랜드마크라는 뢰머광장에 가서 만난 대부분 동양관광객들 - 랜드마크 방문을 엄청 좋아하는 -이 그나마 많이 본 사람들이었다. 스타벅스 한군데 정도만 열렸고, 10시가 넘도록 여는 상점들은 거의 없었다. 조용하고 시원했지만, 볼거리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곳의 Alte 다리를 건너서, Sachsenhaus를 갔다. 여행책의 말로는 작센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독일에서도 맛있는 음식이 많고, 소박한 사람들을 잘 볼 수 있다고 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는 잔뜩 기대를 하긴 했지만, 역시 이곳도, 각 가정에서만 사람 냄새가 나는가 싶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거리. 일찍 연 Cafe에 가서 가볍게 커피한잔씩 했다. 잠시 비춰온 햇살은 너무나도 반가웠고, 선그라스를 호텔에 맡겨놓은 짐에 놓고 온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 햇살은 10여분 뒤에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독일의 마지막 따사로운 햇살, 참 청명했다. 그렇게 작센하우스의 조용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고, 지하철표를 어떻게 끊는지 몰라, 다시 걸어서 그 유명한 Goethe haus를 찾아갔다. 걸어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고, 많은 박물관이 있었지만, 그다지 박물관 많은 물건을 볼 수 있는 그곳에 흥미는 나지 않아서, 바로 괴테하우스를 방문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의 저자. 수백 년이 지나도 읽힌다는 이 책의 힘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싶었다. 요사이 그런 삶의 고민조차 배부른 소리라고 하면서 치이는 우리네 20~30대를 보면서, 더욱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대의 조류를 좇음이 아니라, 자신의 ID를 찾고, 길을 만들어가는 도전과 극복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다. 독일의 상류사회에서 자랐던 괴테의 그러한 수준 높은 문학, 인간본성의 기저를 건드리는 깊은 내용은 그의 여유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으나, 순간순간 삶을 쉽게 생각하지 않았던 자세가 주요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다. 물론 그 시절에는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았던 계급도, 자유롭지 못한 직업의 이동도, 궁핍한 삶도 지금보다 훨씬 크게 작용했겠지만, 역사에 길이 남는다는 어떤 사람들은 - 전혀 생전의 자신 그림을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를 비롯 -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는 교훈을 마음속에 다시 한 번 새겨보았다.

 그 역사적인 곳과 더불어 자리한 넓은 쇼핑센터는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전혀 열지 않았다. 그래서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시원한 높은 빌딩숲과 중간중간의 휴식장소를 따라서 다시 Frankfurt 중앙역으로 도착했다. 이제 짐을 들고 한발한발 나선다. 공항행 열차에 다시 몸을 맡긴다. 이런저런 비행탑승처리를 했다. 아내와 여유시간에 공항에서 독일소세지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이번 유럽여행에서의 마지막 만찬.

 이미 붉게 충혈 되었을 나의 눈과 앞에서 처음 비행기 여행인지 연신울어대는 귀여운 아이와 어쩔줄 모르는 어미의 아이 달램이 다들 동일한 무언가를 원하는지 모른다. 즐거웠던 여행, 추억 속에 남겨서 더욱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것. 이제 서울까지 남은 시간은 약 4시간. 참 삶의 Database가 대단한 것이 나도 이렇게 여기서 나만의 장면을 만들어 가고 있고, 앞날이 더욱 창창한 저 꼬맹이에게도 자신의 무의식속에 이런 장면을 만들고, 자신의 성격의 기초를 마련하겠지, 60억의 인구, 그 1초라도 낭비할 수 없고,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시간과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 그 자리에서 각자의 행동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기억한다는 것, 자신의 소중함과 환경의 진중함, 서로의 귀중함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금 11일간의 여행에 많이 피곤한 나의 아내가 누워있는 여유 있는 비행기 안에서 그 행복한 꿈을 더욱 이어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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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4:55:15 *.10.226.54

단군일지 16일차, 활동내역 : 여행기정리, 영화보기

 

 16일차는 비행기 안에서 보내게 되었다. 여행기의 막바지를 정리하기 위해

여독을 어느정도 해소하기위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으나,

이런저런 욕심이 많이 나서 인지, 여유있는 비행기 자리에 아내는 누워서 자고 왔는데

나는 영화도 보고, 딴짓도 많이 하느라고 10시간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서 왔다.

 

11일간의 여행

다시 장시간 비행과 더불어 동일하게 추웠던 쌀쌀한 겨울날씨임에도

나에게 충분한 외지의 감동과 따스함을 안겨다 주었다.

 

 

 1. 서른이 지나서도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스무살의 패기와 마흔의 불혹 중간에 장단점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스포츠카의 비애" 처럼, 스포츠카가 어울릴 시기에는 경제력이 되지 않아 살 수 없고

   경제력이 될 시기에는 스포츠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나도 이제 집 장만을 해야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할 시기라고 한다면

   이미 경제적으로 힘들게 시작했고, 남들이 가는 출혈경쟁의 길로 가서 안락을 사회에 맡기고

   남의 시선이 맡겨 봐짜, 그 가랭이가 더욱 찢어지기 쉬울 것이고,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항상 미래만 준비하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쩌면 그 조차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아이의 발버둥일 수도 있겠지만, 그 서른의 행복이 여행에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2. 결혼한 뒤에도 여행을 해야하는 이유

   나의 짝이 확정되지 않았을 때, 여행시에서 숱하게 맘에드는 이성이 있으면, 추억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만 느낄 수 있는 여행의 아름다움을 이성을 위해 바치는 경우가 있었다. 이제 결혼뒤

  내가 아닌 우리의 추억을 만들면서 더욱 두터운 삶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음에, 서로 공유하고

  함께하는 공간이 있기에 결혼 뒤 여행은 결혼생활을 더욱 행복하게 할 수 있다.

 

3. 서른의 피곤함/화성에서온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어떻게 하는가?

   어제 설 명절에 본가에 있으면서도 정신을 못차렸다. 20대 중반에 미국에 갔을때 대비해서 왠 시차부적응이

  이리도 심한지.. 그 자연스러운 몸의 부족함을 받아드림도 있어야겠고, 내 수준에서 최선의 노력도 해야함을

  알겠다.

   아내가 쇼핑을 할때 무한 긍정을 베풀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그러기도 더욱 싶다. - 아내와 함께해서

  행복한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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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5 05:02:34 *.10.226.54

단군일지 17일차, 활동내역: 단군일지 정리, 단군일지 쓰기, 책보기(이외수 글쓰기 공중부양)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봤던 영화, 내용이야 뻔하고 따분한 이야기 였지만,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소중한 영화였다.

 우리할머니 세대 - 1920~30년대에 출생한 분들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인 것 같다.

10대때 대동아 전쟁 - 2차대전 - 으로 징용에 끌려간 숫한 사람들과 현실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던 사람들

20대때 6.25전쟁 - 모든 것을 수포로 만들어가게 했던, 시기에 좌/우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할 수 밖에 없던 사람들

 

영화얘기를 하다가 할머니의 옛날얘기를 잠깐 들었다.

낙동강 전투에서 "간호원 동무, 나 고향에 가야되요, 꼭 살려주시라우" 라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린다는 할머니 말씀.

 

68혁명때 나왔던 이야기 "이만하면 먹고살만한데, 무엇을 더 바라는 것이냐?" 라는 것.

충분히 그 세대에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 이다.

 

 왕정의 시대, 민중들은 모든 국가의 경제활동, 군사활동의 중심에서 실행하는 역할이었다.

나라가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상 오늘까지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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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04:45:45 *.10.226.24

단군일지 18일차 활동사항: 책읽기, 일지쓰기

 

아직 쌀쌀한 날씨, 안방에 있던 전기 스토브를 가져다가 일지를 쓴다.

스토브를 "약"으로 할려다가 "강"으로 튼다. 한쪽만 열받으면 더울까 싶어

"강, 회전"을 선택한다.

 

옆에서 "아날로그 회전"을 위해 가끔 모터 낑낑대는 소리가 난다.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가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 고은 " 순간의 꽃"

 

새벽부터 전기스토브는 나를 위해 전기선에 꼽히고, 따뜻한 기운을 살포시 안겨준다.

빛처럼 밝고 빠른 전기에너지가 나의 피부와 공존한다.

전기에너지는 저기 어딘가, 어느때인가의 태양 빛과 공존한다.

태양 빛은 수많은 세월의 아들과 바람의 딸들을 낳았다.

 

 연말정산에 이제는 부모님이 인적공제에 들어오실 때가 되었다.

그동안 그리도 쪽쪽 부모님의 단물을 빨아먹었다.

용돈도 쥐꼬리 만큼 드리면서, 그저 고맙다 하시는 눈시울을 받는다.

이제는 어머니도 그녀의 어머니가 했던 말을 이해하시겠단다.

 

태양빛은 지금 나에게 노랑/주황 찬란한 밝음과 온기로 나에게 다가온다.

신발한켤레 목청높이 팔고, 페달을 밟아 한땀한땀 나를 들쳐업고 옷수선을 해서 돈을 벌었다.

그렇게 낯을 가리고,  어미젖과 맨밥만 먹던 자그마한 아이는

이제 누군가의 앞에서서 말하기를 하는 - 두려운지 아닌지, 적성인지 아닌지 - 하는 사람이

그만 먹으라는 술은 며칠을 먹고, 보약같은 음식은 마다하는 청개구리 같은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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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6 18:27:59 *.90.31.75

행복한 세계 여행 듣고 싶어요~ ^^

좋은 경험, 멋진 공부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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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7 06:51:47 *.10.226.59

ㅎㅎ네승건님 부끄럽사옵니다만

세미나때 만나서 더 얘기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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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7 06:57:19 *.10.226.59

단군일지 19일차, 기상 못함, 활동사항: 없음

 

여행갔다온 며칠, 역시 시간에 순응하는 인간의 몸인지. 시차 부적응과 여독을 풀지못한탓에

이틀전부터 몸에 열이 났었다. 어제 오후되니 몸이 너무 안좋았다.

친구녀석이 고민있다고 술한잔 먹자고 한다.

만났더니, 얼굴이 안좋아보인다면서, 적당히 먹자고 한다.

2차 까지 먹고 와이프랑 같이 집에 들어왔다.

 

너무 추워서 머리도 못감고 잤다.

약을 하나먹고, 소화도 안된상태에서 돌침대 난방을 켜고 잠이 들었다.

4시 20분 알람이 다시 울렸다.

아내가 "단군의 후예 안올려?" 라고 물어봤다.

그때쯤 잠이 깨진나는 다행히도 코만 찔찔거리고, 기침만 조금해서

열이 좀 내렸다.

새벽활동도 못할 것 같아서 오늘은 좀더 자기로 마음먹었다.

 

몸, 맘,

모두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통 걸리지도 않던 감기, 오한등이 걸리고 보니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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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04:41:23 *.10.226.10

단군일지 20일차 활동사항: 없음.

 

 며칠째 열이나고, 아프다니.. 일생에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 사건이다.

아내가 아침부터 이마에 찬수건을 올려놓는다. 몇해 결혼생활했는데도 이런 기억이 없어서인지

 

아내 수건덕에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열이 좀 내렸다. 그런데 영 몸이 나을줄을 몰라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는 염증인데 감기는 아니니 약만 먹으면 된다고 한다.

아내의 수훈덕인지 열은 나지 않는다면서,

 

집에서 응석받이처럼 있다가 결혼식과 모임에 나갔다. 모임에서 나의 핵심가치와 직업가치.

★ 핵심가치

  [몇해전 집안 내 책상앞 벽에 붙여놓았던 내용과 이리도 같은]

 1. 열정: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한 정신적인 에너지, 어떤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는 최고의 자존감

 2. 신앙: 세상을 바르게 살 수 있는 기준.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에 대한 해결책

 3. 건강: 끊임없이 성장하기 위한 육체적인 에너지, 지행합일 하기 위한 중요한 밑거름.

 

★ 직업가치

 발전성, 도전, 전문성, 영향력, 사회적 공헌

 

★ 실제 직업

 - 잘 아는 직업 : 강사, 여행가, 작가

 - 하고 싶은 직업 : 가수, 작가, 여행가

 - 잘할 수 있는 직업 : 강사, 여행가, 작가

 

★ 그래서 추가로 해야할일

 - 프로필 작성하기(현재 Rev.0)

 - 주마다 정해놓고 글쓰기(게시판, 블로그니티)

 

집에오다가 이런저런 생각과 아이디어가 나온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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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05:27:50 *.88.228.75

노래하는 강사! 좋습니다~

챔피언을 함께 부르는 강의, 저도 꿈꾸는 장면인데, 생음악으로는 힘들어요! ㅠㅠ

노래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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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9 20:48:56 *.206.196.94

ㅎㅎ네 승건임.

챔피언 노래 좋네요. 어제 조언주신 것처럼 매일 글쓰기 실행에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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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0 04:27:31 *.206.196.94

단군일지 21일차, 활동사항: 무한도전 보기, 책보기

 

"영상"이란 것의 위력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인터넷상을 달구는 무한도전을 다운받아보고,

뉴스타파라는 해직기자들이 만든 현재의 뉴스들을 타파한다는 내용의 것을 보고

와이프랑 돌잔치 갔다가 오는길에 "부러진화살"을 보고

Kpop 스타를 보고, 덧붙여 소위 "쩐다"는 영상을 보고

마지막으로 광개토 대왕을 봐주시고.

 

정말 올만에 오지게 컴퓨터 계속 틀어놓고 봐주셨더니

지금 보통때보다 좋지 않는 컨디션이 몰려온다.  자중할 일이구나.

 

 토요일에 들었던 가치의 발견.

 그리고, 3년전부터 말로만 떠들고 가끔씩 끄적이던 작가가 되려는 부족한 노력

 무엇으로 세상에게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생산할 수 있으려나.

 

"무채색 광채"라는 제목을 생각해보았다.

 "빛나는 무채색"

 무채색이라는 직장인,

 공감하기는 좋으나

 어떻게 하면 차별화되는 ID를 가지고, 나의 언어로 어필할 수있을까?

 

 목표 역시, 이번주까지 첫 글을 올려보자.  2편을 글을 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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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05:09:40 *.10.226.54

단군일지 22일차 활동사항 : 단군일지 쓰기

 

 하루의 시간을 보냄,

 아내가 약속으로 늦는 집에서

 짜파게티 2개를 끓여 먹음,

 

 알타리김치를 가위로 잘라먹지 않았다면

 입안이 헌 피곤함이 이빨로 알타리를 처치하는 절단면마다

 붉은색 미소가 처연할 뻔했다.

 

 역시 라면두개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 시도해 본다.

 

 버스에서 내린 아내를 마중나갔다. 별것도 아닌 카톡하나에

 쌀국수 집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을 정도로 까르르 웃었다고 하는 아내과 그 일당들

 

라면두개가 점점 불어오르는 것 같다.

책을 피려고 한다. 이미 몸은 노곤해져 있다.

 

며칠 몸이 좋지않아 술을 먹지 않았더니, 일상이 이리도

붙박이 장처럼 아름답게 조화가 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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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1 05:18:38 *.10.226.54

단군일지 23일차 활동사항 : 블로그 재정비하기, 새로 시작하기

 

숙원사업들이 하나둘씩 시작되고 있다. - 어이쿠, 시작을 잘못드면 사직이 되버린다. 이런 적절한 오타같으니 -

첫번째는 블로그 재정비하고 Full 가동하기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역량이 높지 못한 나는

블로그 기능을 어떻게 개편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블로그를 들어가 보았다.

 

휑하니, 김동률의 노래 - 한 때, 세계일주를 꿈꾸던 나의 배터리 충전기 같은 찌릿한 노래 -

만 들리고 있었고, 정리되지 않는 글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제목만 창대하게 적은 개수대 찌꺼기 마냥 남아있었다.

 

몇개의 블로그를 들어가서 형태등을 몰래 봤다.

별다른 참고함 없이, 일단 심플하고, 명시성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글, 사람이 뭍어나는 폴더로 재정비 했다.

특별히 다른 거금을 투여하지 않았다. - Gold Painting 처럼 투자도 분명히 요청된다. -

 

이번 유럽여행기를 날짜마다 겅성드뭇하게 올렸다. 어허,,, 이래서는 거의 낚시질이나 마찬가지인데..

관련 Tag를 난사했다.

 

어머,, 저녁에 조회수를 보니, 50이 넘은게 아닌가..

사람들 많이도 실망했겠다. 이런..쩝...

다시금 블로그를 정성드려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너와 나의 시간은 그만큼 소중하고,

무수히도 많은 컨텐츠가 세상어디에나 있다.

정신 똑바로 차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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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04:09:29 *.10.226.57

단군일지 36일차 활동사항 : 책보기, 밥하기

 

어쩌면 시간이 이리도 상대적일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함을 한번더 느끼는 요 며칠

 

많은 책들이 펼쳐저 있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무언가 벌려놓은 것들은 더욱 많이지고 있고,

회사일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있으나, 정리되기는 소원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딱 한번, 티핑포인트를 잘 못 가져가고 있기때문이다.

일을 벌리며 마음으로는 새가슴 같은 생각이 저미어 들고 있음에도

갯벌에서 조개잡다가 밀려오는 밀물 바람에 간담이 서늘했던 어린날 추억과도 비슷한 경험이다.

 

그나마 정신차린 지금.

단군일지는 며칠이 꾸욱 밀려있고, 단군의 후예는 겨우겨우 연명만 하고 있었다.

새벽 기상이란 분위기가 그저 좋았던 앞의 며칠을 두고,

이제 편하게 진행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이 한량 기질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다시 뭉뚝해졌지만, 날을 바로 세울 수 있게 해주려는

삶이 가진 넉넉함.

그래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많은 선배들과 주위의 날 아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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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04:35:29 *.10.226.57

단군일지 37일차 활동 : 뒤척이다 글쓰기

 

11시 쯤 잠이들었는데 3시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생각함이 피곤함을 이기는지 한시간 남은 기상시간이 두려웠던 것인지 쪽잠에 실패한 나는 컴퓨터에 앉는다.

동시에 무언가를 많이 진행한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것은 "Management"이다.

 참 그 매니지먼트, 관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나에게

주문처럼, 혹은 마약처럼 나의 생각속에 주사기를 꾸욱 눌러담은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어짜피 연습할 부분이고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움켜쥐어야 할 가치이다.

 

20년을 넘게 그런 회사를 다녔던 나의 싸부와 금요일 저녁에 만났다.

어쩐지 모르게 조금은 약해지고, 느슨해진 것 같은 싸부의 모습이 남사스런 남녀관계를 만나듯이

맥주잔을 기울이는데, 눈을 맞추기가 어렵다. 이미 흰머리가 많이 보이고,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아.저.씨"

답지 않은, 보통때 뵈지 않던 모양새 였다.

 

"의미부여"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작년 이맘때 혹은 몇달 지났을 때쯤이

싸부님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났던 때였다. 2박 3일중에 몇시간을 제외하고 상가집을 지켰던 나는

남자라는 동물의 더욱이 나약함과 외로움을 직시할 수 있었고, 짝 잃은 외기러기가 울부짓듯이

혹은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울먹이며 엄마를 부르듯이 깊은 감정에 사무쳐 있는

싸부의 글귀를 보았다.

 

납골당에 모시고 49제가 지났을 때, 갑자기 비둘기 때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 그것이 하늘이 어머니를

받아드렸다는 - "의미부여" 였다.

 

싸부의 후배, 나에게는 선배가 10시가 넘은 시간 맥주집에 잠바떼기를 입고 납셨다.

오늘이 아버지 49제라고 한다. 덤덤하게, 아직은 그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선배.

단한번도 가족 앞에서 울어본적이 없다고 솔직 담백하고 대담하게 말하는 사람.

그렇지만, 그것만큼 불행한 삶도 없다. 내가 무너지면 가족이 무너지잔냐.

 - 내가 무너지지 않는 척 하고 있다가, 진짜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주저 앉아버리면 어떠케 하시려구요.

   가족은 부양하고 내가 썰매끄는 개마냥 계속 끄는게 아니라구요. 가끔씩 힘들다고도 하고, 고민도 얘기해야

  사람인줄 알아요. - 그런 말을 조금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내가 무어라

설명할 사례는 많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던 부친상

49제를 마치자 마자 내리는 하얀눈에 대한 "의미부여"

 

자연은 참 조용하다.

헌화화는 것 같은 사람들은 그속에 의미부여를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Frame은 다양하다. 그래서 해석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작가주의, 어떤 텍스트도

그 텍스트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

 

자연은 조용히 흘러가고,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님에도

우리는 우연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며 안락함과 근원적 공포에 대해 잠시나마

마음을 쓸어 내릴 수 있다.

 

50대가 다되가는 중년의 거칠것 없던 아저씨

4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머리속이 복잡할 때로 복잡한 선배

30대 중반으로 가고 있고, 아직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고민하며 채찍질 하고

 부족함에 후회하고 다시 끈을 조이는 나

 

시간의 굴레를 어찌하면 이겨낼 수 있고,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조류속에 조금이나마 나만이 가진 행복의 잣대를 길게

늘어뜨릴 수 있을까.

 

나만의 최면인 "의미부여"

버트런드 러셀과 같은 무신론자 - 그저 신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상징, 말하자면, 집단적 의미부여 -가 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난 이미 어릴 때부터 기독교라는 종교속에서 의미부여를 찾아왔고,

그 속에서 눈물도 흘리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부족함도 많이 채워졌다고 믿는다.

그만큼의 지식,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삶의 진짜가 무엇이냐를 다 알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두려운 그런 사람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런 삶속에서 찾게되는 "관리"

나의 신앙, 열정, 건강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는 관리

그것으로 찾을 수 있는 나의 가고자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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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4:28:47 *.10.226.93

단군일지 38일차 : 활동내용 - 서양철학사 읽기

 

다시금 읽기를 시도한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초반에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도 나왔다 하지만,

작가가 진술하려는 방식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동조를 한다.

"나는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철학자를 자신이 몸담았던 사회/문화적 환경의 산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공유되지만 모호하거나 산만하게 흩어진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며 집중하는 한 인간으로 조명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 처럼, 인간은 아무런 한 것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주어진 것들을 선택해왔다. - 그것은 사회/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와 같은 이야기이다.

 

철학의 이론과 흐름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때의 환경, 한 인간으로서의 삶, 한 집단으로서의 역사 등도 알고 있어야 할것이다.

 

공부할 것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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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4:33:18 *.10.226.93

단군일지 39일차, 활동사항 :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데스크 보기, 빈곤관련 책 사기

 

고 리영희 선생의 뉴스타파 인트로 화면

내가 숭앙하고 지키려고 했던 것은 소위 말하는 국가가 아니고, 애국이 아니며

"진실"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진실이란 것의 판단기준이 어떤 것인줄 모른다. 사실과 진실

나에게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실제로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냐?"

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요사이 이런저런 업무들로 쌓여가는 나의 부족한 마음과 치열함 없는 여유에

다시한번 반성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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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4:36:53 *.10.226.93

단군일지 40일차, 활동사항 : 일어났다가 잠들기

 

며칠 회식과 같은 술자리가 지나갔다. 다행히도 취하지 않고 깔끔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너무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도 필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모임을 이끌어 가야한다는 이상하리 만침 어색한 소명의식이 생겼는가?

좋은 리더는 더 많이 듣는 사람이다. 공감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꼭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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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4:41:34 *.10.226.93

단군일지 41일차 , 활동사항 : 새벽까지 놀기

 

대학원사람들과 MT를 왔다. 오랜만에 밤새 놀았다. 헉;;

하루를 같이 보낸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이제는 배가 나오고, 사회에 찌들어 가는 직장인들이 되었다.

그나마 대학원이라는 탈출구 혹은 격려자를 만나려는 이 사람들은

지나치는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의욕과 그 열정이 아름답다.

 

술을 가지고 게임도 하고, 이래저래 요리도 한다.

새해 소망도 함께 이야기 한다. 재미있지만, 진솔해지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인연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을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 이곳 대학원을 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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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4:53:42 *.10.226.93

단군일지 42일차, 활동사항 : 못일어남.

 

역시 전날 밤샘과 저녁에 먹던 친구와의 연애상담자리가 타격이 있었다.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지 못했다. 어제 빈곤에 관련된 책이 20권정도 배송되었다.

영국유학을 알아보고, 나의 미래의 신호탄을 어떻게 쏠까 고민하던 터에

누구도 정해주지 않은 나의 길을 만들고자, 어느정도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가장 처음에 내 눈에 밟힌 책이 부와 빈곤의 역사

제도주의 경제학과는 사뭇다른, 권력이동에 의한 부와 빈곤의 역사였다.

책의 초반이지만, 너무나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나의 키워드를 "빈곤"이라고 잡았다. 관련된 구호/빈곤정책등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평생에 잊혀지지 않는 방향이 되고자 한다.

그것을 하면 무엇이 좋아지냐? 라고 했을 때,

그다지 많은 것을 좋아진다고 할 수는 없다.

좋은 집에 살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가족에게 꼬박꼬박 벌이를 해주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저 인생이라는 것이 다들 가려는 길을 가서 아파트 평수를 몇평늘리고

아이들을 8학군, 좋은 학원에 보내어 다시금 그 다들 가는 길 속에서 1등 2등 꼴찌를

가리면서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져 본적이 없기에

나혼자만의 독단과 독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정말 증가하는 이때에, 40대 중후반 회사를 나와서

할 것없이 멍하니 있는 고 연봉의 실직자들, 회사이름과 직함을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세상에 내놓을 것이 없는 우리네 형님들.

 

지금까지야 그런 평범한 삶이 소소한 벌이로 연결되었지만, 평생 기본적인 소득도

보장되어 있지 않는 현 상황에서, 그렇게 어느 한 곳에 의미없이 All-in 하는 것도

정말 어리석은 일일수 밖에 없다. 그 10여년 임원이되는데, 자신이 원하는 일도 아닌

그저 줄서서 조금더 올인더하고, 더러워도 이 악물고 충성하며, 높은 자리를 얻으면서

살아가는, 생의 에너지 사용의 잘못된 방향,  그것이 평생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나의 아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그럼에도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진정성과 치열함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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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04:59:25 *.10.226.13

단군일지 43일차 활동사항 : 부와 빈곤의 역사 읽기, 일지쓰기

 

페이스 라는거, 버릇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몸이 긴장된다.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되는데..

그랬을 때,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없다는 것도 알게되었다.

 

주위에 여러가지 흐름이 있다. 현재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필수적인 흐름.

나의 존재가치에 대해 계속된 혼돈은 있으나, Trial & Error를 통해 무언가 발견해가고 있는

평생의 흐름

자기만의 시간, 타인과의 시간에 대한 배분의 흐름

책도 읽고 싶지만, 이야기도 해야하는 또 다른 배분의 흐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지하철이나 택시에서 내려 집에 걸어올 때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갈 때, 추운겨울 탓인듯 바람이 강하게 불어온다.

잠이 깬다.

머리속에 정리 작업이 일어난다. 오늘은 이것을 진행하지 못했구나.

오늘은 이것은 했구나. 사방에서 겹쳐 진행되는 모든 일들이,

이 어찌 아쉽기만 할 수 있는가. 나의 바램대로 모든 체크리스트를 채울 정도의

일들로만 쌓여나가겠는가.

 

부와 빈곤의 역사라는 책은 사회의 발전이 권력확산에 의해 일어난다고 정의한다.

사회제도라는 것은 권력확산 혹은 권력다툼에 의해서 통계적으로, 균형적으로 일어나는

행동양식이라고 한다.

시소를 떠올려본다. 무거운 사람일 수록 시소의 중심에 가까이 있어야하고, 가벼울 수록

시소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야한다. 권력도 이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경제발전의 인적, 물적 자원(Human Resource, Capital Resource)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에 대한 권력이 넓게 펴질수록,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가정이다.

자원이 매우 빈약한 일본이나 유럽국가에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논리이다.

 

책을 더욱 깊이 파고 들어야하겠지만, 한 인간의 인생과도 결부시켜본다.

수만가지 사람의 선택중에 나는 지금 어떤 선택, 혹은 내자신의 권력확산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가.

무엇이 나만의 제도와 습관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내 시간, 에너지 자원을 어디에 쏟고 있고, 현재 에너지 Extinguisher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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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3:55:18 *.10.226.91

단군일지 44일차 활동사항 : 없음.

 

 요즈음, 일과 삶의 균형에서 일이 많아 지면, 정신차리기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들이다.

 

 일에 뭍히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 내가 충분히 그러지 않아도 됨에

휩슬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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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3:59:30 *.10.226.91

\단군일지 45일차 활동사항 : 부와 빈곤의 역사 읽기

 

 두꺼운 책 이면서, 내용이 이어지는 책은 읽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 시간이 걸리고

책이 넘어가는 성과가 잘 나지 않는다. 양은냄비 같은 나의 성향도 한몫하고 있다. 꾸준함의 매력

 

미래에 내가 어찌 나갈 것인가. 다시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영국으로의 유학, 지금과는 다른 길,

언젠가는 꿈꿔왔던 길이다. 그러기에 나의 주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서는 안되는 것으로 가야한다.

 

참 재미있는 책을 하나 읽고 있다. 그정도 노력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다. 뚝배기 그릇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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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4:04:27 *.10.226.91

단군일지 46일차 활동사항 : 회사에서 일하기

 

 오랜만에 새벽에 출근했다. 정리된 것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큰 그림이

잘 이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이 어쩜 그리 태평한 것인지

새벽부터 조금의 준비를 시작한다. 행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변화도 심하다.

 신경질적으로 사람은 변한다. 누가 알하서 하겠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저렇게 살고 있는가.

 

간과 쓸개를 빼고 살아야하는 직장생활

누군가를 이끌어서 같이 진행을 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

큰 일이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건배제의가 오간다.

 중요한 것은 결과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지만, 반성과 질책의 말을 할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보도 없다. 생각해 본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가?

 감사하다는 건배구호로 시간을 닫는다.

 

2차까지 술을 오가며 마시며, 마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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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4:09:02 *.10.226.91

단군일지 47일차, 활동사항 : 없음.

 

전날의 피로가 함께했다. 오전에는 다른 행사의 마무리를 진행했다.

며칠 일을 할 시간이 없구나 생각되었다. 오후에 일하려고 앉았는데

회사 선배의 대학원 졸업식에 꽃돌이를 해달란다. '주말에 출근하고, 축하해줘야지, 그래도 한번있는 일인데.'

 

금요일 차는 오지게 막힌데다가, 사고까지 났다. 경미한 사고 였지만,

적반하장으로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주먹을 한번 날리고 싶었지만,

조용히 넘어가주었다.

 

 졸업을 한다는거, 참 의미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다시 간 곳은 대학원 동기 원우의

부친상. 끝나고 술자리가 정말 너무나도 길어졌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아내가많이 화가 나 있다.

 나도 왜그런지 정신이 없어진다. 분명히 요새 심신이 정신없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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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4:14:52 *.10.226.91

단군일지 48일차, 활동사항 : 없음.

 

 주말이다. 주말에 출근해야지 마음을 먹고 있다가, 집에 들어온 시간이 새벽3시라서

마음을 주욱 놓았다. 다시 회사근처 대학교로, MBA를 졸업하는 선후배 축하를 위해

꽃을 사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는 아닌데 했지만, 선택과 집중은 항상 필요하다.

 나의 사부가 "아버지학교"를 졸업한다고 한다. 갈 수록 자리를 일어가는 아버지,

감성은 억누르고, 이성과 조직의 무게로만 살아온 그들의 세대.

나도 조금만 있으면 그런 길을 걸을 줄도 모른다. 감정이입에, 그렇게 살지 않으려는

아버지가 되기위해 애쓰는 사람들, 마지막날은 아내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이 진행된다고 한다. 참. 의미있는 일이다.

  '아버지 학교 졸업 축하드립니다.' 메신저를 보낸다.

 

오랜만에 진행되는 세미나, 늦게 갔지만, 참 참석하기 잘했다 라는 생각이다.

이런 자극이 없으면, 참, 어려운 삶이 될 수 밖에 없으리라.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

같은 부족,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로와 평안, 도전을 주게 한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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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04:19:36 *.10.226.91

단군일지 49일차, 활동사항 : 책보기

 

 주말이 그냥 지나간다. 잠자다. 뒹굴거리다. 결국 출근하지 못해서

월요일 새벽에 나가야지. 생각하고 일정을 접는다.

 벌써 49일차, 몇번이나 빠졌을까. 계산해보니 더욱 정신이 없어지는 구나.

 

다시 신발끈을 묶고, 달랠 때이다. 지금 아니면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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